[우리말로 깨닫다] 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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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저를 소개합니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4.02.2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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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사람은 누구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인간의 인생인데, 우리는 생은 이미 지났고 사에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니 로와 병의 세계에 있는 겁니다. 저 역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질구레한 병부터 나를 괴롭히는 병, 그리고 나를 기쁘게 하는 병까지 아주 다양합니다. 병원에서 이야기하는 병이 아닌 병도 많습니다. 제가 기쁘게 앓고 있다고 말하는 병은 병원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학교를 가야하는 병입니다.

예전에 자기소개에서 경희대학교에 입원해 있다고 말하는 일본 노인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에 병원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겠죠. 하지만 그분은 경희의료원이 아니라 경희대학교에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공부하고 싶어서 설레고 마음 아팠는데 그 병을 경희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치료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깨달음을 주는 농담이었습니다. 농담에도 깨달음이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제가 앓고 있는 병도 비슷합니다. 우리말에서 병을 나타낼 때 증을 붙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이 대표적이네요. 그런데 병이 아닌데도 증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짜증이 대표적입니다. 저는 짜증을 자신을 쥐어짜는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짜증은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해로우니 병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지럼증이나 답답증 등 의외로 병 같은 증도 많습니다. 싫증은 보기에 따라 병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싫증은 시간이 지나서 싫어하게 되는 증세인데, 그 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반복적이면 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앓고 있는 병은 알고픈 것이 많은 병, 궁금증입니다. 궁금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 병입니다. 저는 저에게 전공을 물어볼 때 당황스럽습니다. 언어학 중에서 국어학, 국어학 중에서 어휘론, 언어문화를 전공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제 관심사를 다 말하지 않은 듯하여 아쉽습니다. 저는 알고 싶은 것이 많기에 관심 있는 분야도 많습니다. 굳이 전공을 말하자면 문화언어학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화도 언어도 공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참 다행입니다. 언어는 수수께끼 천국입니다. 언어를 공부하면서 문화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문화를 공부하면서 철학과 종교에도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곧 사람이기에 인간에 대한 것은 무엇이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공기처럼, 아니 공기 이상으로 우리의 주변에 있습니다. 아니 내 속에도 맴돌고 있습니다. 사람을 공부하면서 어떻게 살까 늘 괴로워합니다. 공부할 게 많아서 참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학문을 하는 사람입니다. 학문의 한자는 글을 배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학문(學問)은 배우고 묻는 것을 학문이라고 합니다. 배우는 사람은 궁금증을 갖고 물어야 합니다. 수동적으로 배우기만 해서는 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저를 표현할 때 교수(敎授)라는 말보다 학자(學者)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학자는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사실 학생은 누구나 학자가 되는 겁니다. 저는 궁금증을 갖고 학문을 하는 학자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새로 말을 만든다면 학문이 아니라 ‘학문행(學問行)’을 하면 좋겠습니다. 배우고 묻고 깨달은 바를 행하는 겁니다. 깨달음을 자신에서 머무르게 하지 말고 타인에게 밖으로 전하는 겁니다. 학과 문과 행은 별개가 아닙니다. 모두 이어져있습니다. 저는 궁금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고, 학문행을 하고픈 문화언어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