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꽃이 피는 계절, 산유화
상태바
[우리말로 깨닫다] 꽃이 피는 계절, 산유화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2.12.06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추위가 다 지나면 드디어 꽃이 핍니다. 꽃샘추위는 꽃 피는 계절까지 추위가 남는 특별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봄인데도 추운 거죠. 꽃 피는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고 세상이 밝아집니다. 아마도 당연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 겁니다. 예상이 되면 진부한 글이지요. 

꽃은 이렇게 봄의 상징입니다만, 우리는 뜻밖에도 당연한 사실의 반대쪽을 놓치고 삽니다. 그것은 꽃은 종류에 따라 피는 시기를 달리한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봄이 되기 전에도 피는 꽃이 있습니다. 겨울 속에서 이르게 피는 동백이나 매화가 있습니다. 그래도 봄에 가까운 거 아니냐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네요.

아예 서리를 이겨내며 가을에 피는 국화도 있습니다. 가을바람에 하늘하늘 어울리는 코스모스도 있지요. 그 뿐이 아닙니다. 한여름에 피는 해당화나 배롱나무도 있습니다. 여름에는 한번 피면 오랫동안 피어 있기도 합니다. 산에 오르다보면 꽃이 없는 계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름 모를 꽃이 연이어 피기도 합니다.

이렇게 보면 사시사철 꽃이 핍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꽃이 핍니다. 이런 깨달음은 이미 김소월의 산유화라는 시에도 나타납니다. ‘산에는 꽃 피네/꽃이 피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피네’ 여기에서 ‘갈’이 가을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있습니다만, 늘 피고 지는 꽃을 의미한다고 본다면 가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월은 ‘산에는 꽃 지네/꽃이 지네/갈 봄 여름 없이/꽃이 지네’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피는 꽃은 지게 마련이지요. 늘 피어 있다면 조화일 겁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조화도 살아있는 꽃의 향기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꽃은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합니다. 사시사철 계절을 바꾸며, 종류를 달리 하며 새 꽃이 핍니다.

계절을 좇아 피는 꽃은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꽃이 종류에 따라 피기를 달리한다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입니다. 봄에 꽃이 피지 않았다고 서러울 이유도, 초조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여름에 피었다고, 한겨울에 피었다고 못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홀로 피었기에 더 귀합니다. 더 반갑습니다. 다 알고 있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속에 녹아들지 않은 내용입니다. 

봄에는 봄꽃이, 가을에는 가을꽃이 어울립니다. 그래서일까요? 소월은 산유화에서 ‘산에/산에/피는 꽃은/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고 노래합니다. 남을 따라 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꽃을 간절히 피우는 것입니다. 저만치 혼자 피었다고 외로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꽃의 친구가 꽃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꽃은 세상과 함께 살아갑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 삶을 삽니다.

그래서 산유화에서는 ‘산에서 우는 작은 새요/꽃이 좋아/산에서/사노라네’라고 노래합니다. 꽃의 친구는 꽃도 있지만 새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넉넉한 산이 있습니다. 꽃이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피고, 그곳에서 벗을 만나고, 거기에서 집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겁니다. 그걸 꽃에게 무심히 배웁니다.

지금은 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날마다 꽃이 피는 계절입니다. 날마다 꽃이 지는 계절입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특별한 날입니다.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산유화 시를 자세히 보면 시를 배열한 모습이 산을 닮았습니다. 한자 뫼 산(山)의 모습도 보입니다. 소월의 꽃 같은 유머라고나 할까요.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