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토끼는 토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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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토끼는 토끼다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1.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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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토끼라는 동물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우리와도 매우 친숙한 동물이지요. 토끼 간을 용왕의 병 치료에 쓰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는 토끼 간에 특별한 약효가 있을지 궁금해 하기도 했습니다. 간이 건강에 좋은 것 같기는 한데, 왜 토끼의 간이었을까요? 토끼의 간이 더 특별하였을까요? 

토끼 이야기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거북이와의 경주지요. 결말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교만한 토끼의 패배입니다. 성실성 앞에 재주가 당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런데 때로는 토끼를 보면서 우리는 일탈을 꿈꾸기도 합니다. 늘 성실하게 쉼 없이 살아가는 것에 지쳤다고나 할까요? 성실함을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만, 쉼이 비난 받을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살다가 힘이 들면 빛 가린 나무그늘 아래서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꿈마저 잊은 잠을 자고 싶습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패배도 있을 겁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덕분에 우리는 편한 잠을 누렸으니까요. 

토끼라는 말은 특이한 단어입니다. 이런 말이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참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토끼는 순우리말처럼 보이는데, 순우리말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토끼의 토는 한자어 토(兎)와 같습니다. 한자어를 어원으로 보는 것에도 전혀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호랑이도 비슷한 단어입니다. 호랑이의 호(虎)가 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토끼의 토는 정말 한자일까요?

고구려어에 보면 토끼에 해당하는 단어로 오사함(烏斯含)이 나옵니다. 지금의 독음이니 그 때는 달랐을 겁니다. 이 단어는 일본어 단어 ‘usagi’와 닮아서 주목을 끌었습니다. 왜냐하면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사의 경우는 특히 놀라움을 줍니다. 3, 5, 7, 10의 경우 고구려어와 현대 일본어는 거의 비슷합니다.

어쩌면 우리말에는 토끼가 아니라 다른 단어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고구려에 나타나듯이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그럼 토끼는 한자어일까요? 저는 다른 가능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말에도 토끼가 있고 한자어에도 ‘토’가 있는 겁니다.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달하였거나 원래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것일 수 있습니다. 말과 마(馬)도 이런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말을 마에서 온 말이라고 생각하는 학자는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몽골어에서도 말은 ‘morin’이었습니다. 말과 마는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토끼는 중세국어에서는 ‘톳긔’로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한자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토끼를 몽골어 등을 찾아보면 ‘tulai’로 토끼와 비슷한 발음의 말로 나타납니다.(서정범, 새국어 어원사전) 저는 토끼와 토(兎) 그리고 다른 알타이 제어의 말들이 모두 같은 어원에서 출발하였을 것으로 봅니다. 한편 톳긔에서 ‘돋’을 재구한다면 ‘고슴도치’의 ‘돋’이나 ‘도야지’ 등과도 어원적 관련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원을 밝히는 일이 쉬운 과정은 아닐 겁니다.

한편 토끼라는 말은 은어와 속어에서도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토끼가 잘 도망가는 속성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대표적인 말이 바로 ‘토끼다’입니다. 명사가 그대로 어간이 된 말입니다. 이런 구성은 우리말에 많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빗 – 빗다’, ‘풀 – 푸르다’ 등이 있습니다. 명사가 동사나 형용사의 어간이 되는 현상입니다. 어쩌면 ‘토끼!’라는 말이 암호처럼 사용되었을 수 있습니다. ‘토끼’라고 하면 도망가라는 의미였을 수 있는 겁니다.

올해가 ‘토끼의 해’라는 이유로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고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졌습니다. 토끼가 식용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까무러칠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사구팽의 뜻을 설명해 주면 조금은 이해가 깊어질까요? 아무튼 여러분 모두 토끼의 해에 복 많이 짓고, 기쁨 많이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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