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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자로 본 탐진치(貪瞋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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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한자로 본 탐진치(貪瞋痴) 세상
  • 조현용 교수
  • 승인 2023.01.2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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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한자는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고맙습니다. 한자를 사용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특히 한자에 담긴 생각이나 지혜, 깨달음을 찾아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생각의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불교에 관한 책을 보다가 깨달음을 방해하는 삼독(三毒)에 대해서 살피게 되었습니다. 늘 접하는 부분이지만 저에게는 느낌이 잘 안 다가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삼독은 바로 ‘탐진치(貪瞋痴)’입니다. 욕심을 내고, 성을 내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은 간단해 보이나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무엇에 대한 것인가 생각해 보면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무엇에 대한 욕심인지, 왜 화를 내는 것인지, 어째서 어리석다고 하는 것인지 생각할 점이 많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탐진치의 한자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자를 가만히 나누어 보니 옛사람의 생각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제가 찾아낸 것과 불교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한자를 만들고 썼던 사람들의 감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자는 옛 생각의 보물창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늘 새롭습니다.

탐(貪)이라는 말은 이제 금(今)과 조개 패(貝)가 합쳐진 말입니다. 한자의 구성을 보고 저는 무릎을 쳤습니다. 패는 돈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지금 눈앞에 있는 돈에 마음이 가 있는 게 욕심입니다. 여기에서 돈은 다른 것으로도 바꿀 수 있습니다. 눈앞에 갖고 싶은 것, 취하고 싶은 것에 얽매여 앞을 보지 못한다면 깨달음은 이미 끝난 겁니다. 나는 무엇을 그리 손에 꼭 쥐고, 놓고 싶지 않은지 살펴봅니다. 그것을 남들은 모를 거라 생각하고 때로 늘 초조해 하며 때로는 미소 지으며 말입니다.

성냄의 진(瞋)이라는 말은 목(目)과 진(眞)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이 구성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참된 것을 바라보는 게 화를 내는 것이라는 게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봐도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불교에 관한 책을 읽다가 글의 한 부분이 여기에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은 어떤 경우라도 올바르다고 보는 마음이 성냄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언제나 참이라는 생각은 다른 이를 함부로 재단(裁斷)하고 평가하고 무시하고 차별합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이 없는 것이니 참을 보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내가 참이라고, 나만 참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진’입니다. 이 글자는 눈 목(目) 대신에 입 구(口)를 써서 진(嗔)으로 쓰기도 합니다. 나만 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어리석음의 치(痴)는 알다(知)와 병들어 기대다(疒)가 합쳐진 말입니다. 이 글자도 묘합니다. 의미는 다르지만 아는 것이 병이라는 격언이 떠오르는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아는 게 어리석다는 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그렇게 아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게 아닙니다. 알았다고,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오히려 병이 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며 안다고 하는 사람만큼 위험한 일이 없습니다. 부처께서도 깨달은 척하는 사람의 위험함을 이야기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모르면 배우면 됩니다. 모르는 게 많아서 즐거우면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병은 치유가 되고 밝아집니다. 그게 바로 ‘지(智)’입니다. 밝은 깨달음, 지혜입니다.

저는 탐진치(貪瞋痴) 삼독의 한자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지금 눈앞에 갖고 싶은 것에 얽매지 말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르는 것이 많음을 기뻐하고 열심히 배운다면 이미 깨달음의 길에 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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