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아이들의 활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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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아이들의 활유법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9.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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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자연은 살아있다. 온 우주 만물은 살아 숨 쉰다. 우리가 이렇게 말은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자연이 정말 살아있다고 생각한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도 많이 한다. 인간 위주의 삶을 살면서 마치 자연을 엄청 아끼는 것처럼 말하는 모순이 드러나기도 한다.  

자연을 살아있는 것으로 묘사하는 수사법이 바로 활유법이다. 활유법(活喩法)은 살아있지 않은 대상을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비유법이다. 즉, 무정물(無情物)을 유정물(有情物)로 표현하는 수사법이라고도 하고, 무생물을 동물이나 생물로 표현하는 수사법이라고도 한다.

비슷한 수사법으로 의인법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묘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활유법은 정의를 할 때 보면 좀 애매할 때가 있다. 식물을 유정물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지만 살아있는 것으로는 보아야하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촛불이 눈물을 흘린다든지, 파도가 소리친다든지, 바위가 꿈틀거린다든지 하는 표현이 모두 활유법의 예이다. 이상의 날개를 편다든지, 산천이 숨을 쉰다든지 하는 표현도 예들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활유법이 무척 자연스럽다. 입 밖으로 나오는 표현들이 거의 활유법이다. 주변의 가구부터 시작해서 자연까지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표현한다는 말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어리면 어릴수록 주변의 모든 대상을 살아있는 생명으로 느낀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게 살아있지 않다는 말이 더 이상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활유법을 삶으로 생각하지 않고 비유법으로 본다. 나와 동떨어진 언어표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활유법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골머리를 짜낸다. 활유법은 아가들도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말이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어려운 표현도 나온다. 자신의 감정에도 맞지 않는 꼬이고 꼬인 표현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자연은 나와 상관없는 남이 아니다. 자연을 단순히 우리의 생명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인간을 위해 쓰이는 물건 정도로만 생각하는 현대인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산을 파헤치고, 물을 가두고, 땅을 함부로 바꾸는 행위를 보고 아이들은 자연을 죽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많은 종교에서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아이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나무에 영혼이 있다고 믿고, 나무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고 믿었던 인디언들에게 활유법은 비유가 아니라 생활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산에 나무를 모두 베었더니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도 죽게 되었다. 나무와 사람은 연결되어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지구온난화, 미세먼지의 습격 등을 보면서 뭐가 미신인지 헷갈린다. 우리가 자연과 연결되어있다고 믿는 게 미신인가, 아니면 자연은 우리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미신인가? 자연을 망가뜨리면 우리도 망가진다.

우리말 어휘를 보면 활유법은 일상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살다와 죽다’라는 단어가 쓰이는 상황을 살펴보면 생물에게만 쓰이는 게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머리카락도 살리고 죽이지 않는가? 종종은 시간도 죽인다. 죽은 분위기도 살려야 하고, 청년들의 기도 살려야 한다. ‘가다와 오다’도 생물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시간도 오고 가고, 비도 온다. 기차도 달리고, 책상도 다리가 있다. 

수많은 활유법이 사실은 나와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활유법을 보면서 세상에 대한 나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을 정말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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