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완곡어법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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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완곡어법의 매력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9.0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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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우리는 말이 직설적이라는 표현을 한다. 직설적이라는 말은 돌려 말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때로는 직설적인 것이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고 분명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직설적인 말의 태도가 상대에게 심한 상처를 남기고 나에게는 두고두고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말은 잘 사용하면 예술이 되지만 함부로 생각 없이 사용하면 흉기가 되기도 한다. 직설적인 말의 표현은 위험할 때가 많다.

어느 언어든지 말의 표현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수단을 마련하게 된다. 가장 강력한 수단은 금기어나 기휘어(忌諱語) 등을 가려놓아서 사용하지 않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아예 그런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으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활하다보면 그 말을 안 쓸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사용하는데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돌려서 이야기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방법을 완곡어법이라고 한다.

완곡어법(婉曲語法)은 말의 표현을 부드럽게 바꾸어 이야기하는 수사법이다. 보통은 수사법의 차원보다는 어휘 표현의 차원에서 다루어진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이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표현 방법이다. 우리가 표현하기 꺼리는 말들은 완곡하게 말하는 대상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말로는 ‘죽다’가 있다. 죽었다고 말하기가 너무 거칠고 마음이 아파서 우리는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먼 길을 떠났다든지 눈을 감았다든지 영원히 잠들었다는 표현을 쓴다. 세상을 떠났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아마 가장 완곡한 표현이 많이 쓰이는 상황이 아닐까 한다.

완곡어는 이와 같이 금기와 관련이 깊다. 한 언어 사회에는 금기 시 되는 표현이 있다.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말들을 주로 피하게 된다. 어떤 말들이 주로 피하고 싶은 말인가? 많은 언어에서 성적인 신체 부위나 행위는 대부분 금기어가 된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다. ‘거기, 거시기’ 등과 같이 불분명한 대명사 표현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다.

또한 더러운 것이 연상되는 경우도 일단 피하게 된다. 화장실과 관련된 어휘들은 대부분 완곡하게 표현한다. 사실 ‘화장실’이라는 말도 완곡 표현의 산물이다. 예전에는 뒷간이나 측간과 같이 위치로 표현하기도 했다. 영어의 표현도 대부분 완곡하게 화장실을 이야기한다. ‘쉬는 곳, 손을 씻는 곳, 위생적인 곳’ 등은 세계 각 언어에서 둘러대는 표현으로 쓰이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런 표현 중에서 가장 멋진 표현은 ‘해우소(解憂所)’가 아닐까 한다. 근심걱정을 덜어내는 곳이라니 얼마나 멋들어지는가? 

사람의 외모를 표현할 때도 완곡어법이 이용된다. 어떤 말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나는 완곡어법에서 배려와 관심을 본다. 뚱뚱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말랐다, 키 작다, 까맣다, 하얗다, 곱슬머리이다’ 등 사람의 외모를 묘사하는 많은 표현이 듣는 이에 따라서는 매우 기분 나쁜 일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살 찐 사람에게는 뚱뚱하다는 말 대신에 복스럽다, 건강해 보인다는 표현을 쓴다. 이런 사람의 성격을 이야기할 때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편해 보인다’ 등의 말을 한다. 키 작은 사람에게는 야무지다는 말을 한다. 단단해 보인다는 말도 한다. 피부의 색깔도 칭찬이 될 수 있다.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세월과 관점에 따라 늘 변한다. 누구에게 아부하기 위해서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완곡어법을 사용해야 한다.

완곡어는 더러운 것을 피하고, 상처 내는 것을 피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사람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완곡어를 사용하면서 상대가 기분 나쁠 일을 줄인다. 완곡어를 통해 서로에게 줄 상처를 줄이기도 한다.

반대로는 상대가 기뻐할 표현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래도 상대가 기분 나빠한다면 아예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완곡어법은 관심과 배려, 칭찬을 위한 것이다. 오늘은 글보다 말로 설명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곡어법은 글쓰기도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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