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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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8.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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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 원장)

혹시 속은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원래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하여도 곧이듣지 않는다.’는 속담 표현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아무리 사실대로 말하여도 믿지 아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해석이 나와 있고, ‘소금으로 장을 담근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나 ‘콩 가지고 두부 만든대도 곧이 안 듣는다.’와 유사한 속담으로 설명되어 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말이 더 익숙한 속담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메주’를 설명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는 ‘콩과 두부’의 속담이 더 널리 쓰일 수도 있겠다. 

보통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믿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어쩌다 믿지 못하게 되었을까? 아마 이 속담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신뢰’일 것이다. 어떤 사람이 평상시에 늘 거짓을 말하여 신뢰를 잃는다면 진실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양치기 소년’의 한국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사람을 믿는 게 정상이지 의심하는 게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된 것은 서로의 믿음이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이 속담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옳은 소리를 하면 귀 기울여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잘못이 있다고 늘 그 사람은 잘못할 것이라고 고정관념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맞는 일일까? 나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면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입견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도 옳은 일은 아니다. 늘 거짓말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생각도 문제가 있다. 

그동안 거짓을 했다는 이유로, 나쁜 짓을 했다는 이유로 늘 의심받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어쩌면 우리가 죄인을 대하는 태도는 늘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 태도였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죄인이 아닌데도 단지 전에 나를 실망시켰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믿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레짐작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쉽게 그 사람의 수준을 아는 듯이 이야기한다. 내 판단의 가벼움이 아프다. 나의 과거는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지만 다른 사람의 과거는 현재의 수준을 보여주는 낙인(烙印)이 된다. 얼마나 가벼운 판단인가?

사람의 관계는 믿음이 중요하다. 속고 속이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래 사람은 서로 믿고 사는 게 답이다. 어쩔 수 없이 속이게 되었더라도 사정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사람이다. 또한 의도치 않게 나와 세상을 속이게 되었다면 더 더욱 그 마음만은 믿어주려고 하여야 한다. 왜 그랬을까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가족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의 말도 의심한다. 특히 자식을 의심하는 부모도 많다. 믿지 않는다는 말은 과거를 믿지 않는다는 말이고, 현재도 믿지 않는다는 말이며, 미래도 믿지 못한다는 말이다. 나를 믿지 않는 사람 앞에서는 못 믿을 만한 행동을 골라한다. 제일 무서운 사람은 나를 못 믿는 사람이 아니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다. 

우리는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속담을 바꿔서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하여도 믿겠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신뢰가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틀린 말을 해도 ‘설마 나를 속이려고 하는 말이겠어?’라고 생각하며 믿는다. 뭔가 생각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로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갖는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 갑자기 팥으로 쑤면 무엇이 될까 궁금해진다. 이렇게 서로 믿다보면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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