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아’와 ‘어’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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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아’와 ‘어’의 표정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7.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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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학교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나는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은 모음조화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알타이어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한국어에서 모음조화는 매우 매력적이다. 우리는 이 매력적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한국어의 특징으로 모음조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왜 모음조화가 중요한지, 왜 모음조화가 생겼는지에 대해서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모음조화는 몇 가지 측면에서 설명되고, 강조된다.

먼저 모음조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의성어와 의태어이다. 의성어와 의태어의 경우에 밝은 모음인지 어두운 모음인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현상이다. 특히 의성어는 모음조화가 왜 생겼는지를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 소리를 흉내 낼 때 느낌까지 담은 말이 의성어이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웃음소리를 보면 모음의 세밀한 느낌을 잘 보여 준다. 한국어의 웃음은 히읗 계통과 쌍기역 계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하, 허허, 호호, 후후, 헤헤, 흐흐, 히히’ 등을 보면서 누가 어떤 느낌으로 웃는 것인지 추측이 가능하다. ‘깔깔, 껄껄, 낄낄’ 등을 보면서도 우리는 어떤 느낌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그야말로 아 다르고 어 다른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앙앙, 엉엉, 잉잉’의 느낌도 전혀 다르다. 모음조화는 이렇게 우리의 세밀한 감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의태어의 경우는 소리를 흉내 낸 말이 아니고 모양을 흉내 낸 말이기 때문에 창의력이 첨가된다. 즉 들리는 소리를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모양에 느낌은 더했다는 의미이다. ‘깡총, 껑충’의 느낌, ‘출렁, 찰랑, 철렁’의 느낌을 비교해 보면 모음조화가 모습에도 느낌을 담으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모음조화는 왜 생겼을까? 난 그 답을 다시 의성어에서 찾고 싶다. 즉 그렇게 들리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밝은 느낌으로 들리기 때문에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고, 어두운 느낌으로 들렸기 때문에 그렇게 묘사한 것이다. 그럼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보자. 왜 밝은 느낌으로 들리고, 어두운 느낌으로 들렸을까?

우리는 놀라는 감탄사도 자연스럽게 아와 어를 구별한다. ‘아!, 어!’의 느낌이 다르다. 아는 보통 기분 좋은 놀라움이라면 어는 예상치 못한 당황스러움을 표현한다. 물론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감탄사조차 느낌을 담고 있다는 것은 모음의 느낌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아’라고 말하면 표정도 밝아진다. ‘아’라고 발음하는 순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감을 느끼게 된다. ‘어’는 턱을 내리며 발음하게 되는데 아무래도 인상을 쓰게 된다. 발음을 정확히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아보다는 어가 저음(低音)으로 느껴진다. 저음은 위엄을 나타낸다. 보통 윗사람의 말투가 저음인 것도 이러한 점과 관련이 있다. ‘오’와 ‘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의 표정과 우의 표정이 다르다. ‘우’가 야유의 소리임은 느낌과 연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는 이런 모음의 느낌을 잘 기억하고 단어에도 반영하였다.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밝다와 어둡다’의 경우를 봐도 ‘밝다’에는 ‘아’가 ‘어둡다’에는 ‘어’가 들어 있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는 발음 속의 느낌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조금 더 구체적인 느낌이 있는 단어를 보자. ‘맑다와 묽다’, ‘밝다, 붉다’는 어떤가? 한국어에서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다양한 단어를 만들어 냈다.

모음의 교체가 단어의 분화를 가져온 것이다. 나와 너, 낡다와 늙다. 핥다와 훑다 등의 느낌을 모음의 느낌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재미있는 연구가 될 수 있다. 아침과 저녁, 가다와 서다는 우리에게 모음의 느낌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한국인의 의식도 엿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단어는 ‘살다, 죽다’이다.

세종대왕도 한국어의 가장 큰 특징을 모음조화로 본 듯하다. 그래서 모음의 글자에 매우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비밀도 숨겨 놓았다. ‘아’나 ‘오’는 글자 모양만 봐도 밝은 느낌이 나게, ‘어’나 ‘우’는 글자 모양만 봐도 어두운 느낌이 나게 하였다. ‘아’나 ‘오’는 태양이 사람의 동쪽에서 떠오르거나 땅 위에서 뜨는 모습으로, ‘어’나 ‘우’는 해가 서쪽으로 지거나 땅 아래로 지는 모습을 상형하고 있다. 모음조화를 글자로 그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모음조화는 한국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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