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알고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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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알고 보니
  • 조현용 교수
  • 승인 2016.05.17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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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국제교육원 원장)

‘보다’라는 말은 ‘알다’라는 의미도 된다.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언어가 영어다. 영어에서는 ‘I see.(나는 본다.)’라는 말이 ‘나는 알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는 것을 자기가 아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보는 것의 허점을 느낀다. 보기만 해서는 모두 알 수는 없다.

어떤 경우에는 듣기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먹어보기도 해야 하고, 겪어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 가면 더 잘 볼 수 있다. 이럴 때 우리말에서는 ‘알고 보니’라는 표현을 한다. 나는 이 표현을 들을 때마다 반성을 한다. 그냥 보면 안 된다. 알고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알고 본다는 말에는 ‘감정’이 담겨 있다. 단순히 지식의 차원이 아니다. 알고 본다는 말은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면 그동안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우리의 감정이 움직인다. 물론 그냥 볼 때도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알려고 하는 마음에 이미 감정으로 보려는 마음이 함께 한다. 앞모습만 보지 않고, 옆모습도 뒷모습도 바라보게 된다. 물론 서로의 마음도 보게 된다.

사람들 사이를 생각해 보자. 그냥 보면 오해가 생길 때가 있다. 감정은 빼고 그냥 겉모습으로 쉽게 ‘나쁜 놈!’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하지만 그냥 봤을 때는 평면적으로 판단했는데, 속사정을 듣고 보니 입체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무릇 우리가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에 이런 때가 너무나 많아서 당황스럽다. 알고 보면,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고, 함부로 판단한 스스로가 부끄러울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사람은 감정으로 제대로 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산다. 그리고 그 미움과 원망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서로가 속사정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알면 조금은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 도둑질을 하고 강도질을 하는 천하에 나쁜 놈이 있는데, 알고 보니 집에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있어서 병원비를 구하려고 그랬다면 다 용서는 안 되겠지만 이해는 된다. 

학교에서 온갖 말썽을 피우고, 친구를 괴롭히는 아이를 보면 저런 놈은 학교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 아이도 집에서 어려서부터 늘 가정 폭력에 시달렸고, 동네에서는 형들에게 온갖 괴롭힘과 모욕을 당해왔다는 것을 듣고 나면 생각이 또 달라진다. 그 아이도 역시 피해자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더 잘 해줘야겠구나 하는 마음도 든다. 

주변 사람을 만나면서 늘 이해가 안 된다. 왜 저러고 살까? 왜 저렇게 생각이 없을까? 남을 괴롭히는 게 취미일까? 정말 미워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원망이 마음속에 가득 쌓여있다. 어떤 이는 부모를 원망하고, 형제를 원망한다. 어떤 이는 선생을 원망하고, 친구를 원망한다. 나를 낳아주신 것부터가 원망의 대상이다. 나를 바로 잡아주지 않은 것도 원망이 아닐 수 없다. 

태어남이 원망일 수 없다. 모든 태어남은 축복이다. 어떤 속사정이 있었을지는 모르나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축복이 아닌 탄생은 없다. 잠깐 잘못 생각해서 생긴 일인 경우는 있으나 생명의 탄생에 ‘악’이 낄 자리는 없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종종은 내가 원망했던 부모가 불쌍한 경우가 있다. 속사정을 알고 보면 원망보다는 연민이 깊어진다.

내가 그냥 보고 있는 것은 무얼까? 함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무얼까? 특히 사람을 볼 때는 알고 봐야겠다. 그냥 본 것을 함부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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