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실을 '고대사'와 연결시켜 보는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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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실을 '고대사'와 연결시켜 보는 기회를
  • 이종태
  • 승인 2007.03.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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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치우 천황이시여~”

이세민의 50만 대군에 에워싸인 위기의 안시성.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삼족오 문양을 배경으로 설치된 제상 앞에서 치우를 호명하며 ‘오랑캐 타도’를 결의한다. SBS 역사드라마 「연개소문」의 한 장면이다. 치우는 아시다시피 중국의 황제(黃帝) 헌원과 아시아 대륙의 패권을 놓고 일전을 치렀다는 고대의 영웅. 그런데 이 장면, 지나치게 대담하다.

치우는 이른바 배달한국의 14대 천황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배달한국은 고조선(단군조선)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되는 황제국이다. 한국 역사학계가 기원전 200년경에 건국된 위만조선(기원전 2300년의 단군조선이 아니라)을 사실상 한민족 최초의 국가로 간주함으로써 민족사를 왜소화시키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적어도 수백만 명이 시청하는 공중파 드라마가 충분한 근거 없이 배달한국의 실체를 유포하는 것도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닐까.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말이다. 구입을 권유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종류의 재미를 주는 읽을거리는 꽤 많다.

1960년대에 발표된 북한 역사학자 김석형의 「초기 조일관계사 연구」에 따르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은 각자 일본에 분국을 설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일본서기가 전체 분량 중 30% 이상을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 할당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란 것이다.

「대륙에서 8600년, 반도에서 600년」(이병화-한국방송출판)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경천동지할 주장이 제기된다. 심지어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지역도 중국 산동성인데 명나라와의 충돌 때문에 한반도로 천도했으며 지명까지 그대로 옮겨왔다고 한다.

이뿐이랴. 「노래하는 역사」(이영희-조선일보)는 일본 역사학자의 입을 빌려 ‘일본’이라는 국호를 만든 천지왕(38대)이 백제 무왕의 아들 교기이며, 천지 정권에 쿠데타를 일으킨 천무왕(40대)의 정체가 연개소문이라고 한다. 점입가경으로 42대 문무왕은 대왕암으로 유명한 신라의 문무왕 그 사람이다.

더욱이 문무왕은 연개소문의 아들이란다. 연개소문이 천하를 주유할 당시 김유신의 동생 보희와의 관계로 문무왕을 낳은 뒤 김춘추(태종 무열왕)에게 입적시켰다는 것이다.(하긴 일본엔 헤이케 가문을 멸망시킨 미나모토 요시츠네가 몽고로 가서 칭기즈칸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소설도 있다.)

민족적 자부심(?)이 펄펄 끓어오르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들의 정반대 편엔 ‘민족’이란 개념에 거의 알레르기 증세를 나타내는 분들도 있다. 예컨대 김한규 서강대 사학과 교수의 「요동사」(문학과지성)는 한국사의 범주를 대동강 이남의 삼한(三韓)으로 국한시킨다.

고조선-고구려(-발해-금․요-청)는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요동지역의 역사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 관련, 임지현 한양대 교수 등은 아예 ‘국사’를 해체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비봉출판사)를 참조할 만 하다. 신채호는 고대 아시아의 종족을 우랄 어족과 중국 어족으로 나눈 뒤 전자에 조선족을 포함시키고, 조선족이 조선, 선비, 여진, 몽고, 퉁구스 등으로 갈라졌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민족 개념을 내세운다.

한편 김운회 동양대학교 교수의 「대쥬신을 찾아서」(해냄)는 동북공정에 맞서기 위한 대안으로 한민족 개념을 확장한다. 그가 말하는 ‘쥬신’은 ‘범한국인’을 일컫는 말로, 태양을 숭배하고 금속을 잘 다루는 민족 집단을 의미하며 지리적으로는 몽골ㆍ만주ㆍ한반도ㆍ일본 열도 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고대사 부문에서 주목할만한 업적으로는 대중적 역사학자 이덕일씨의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가 있다. 이 책은 현장답사와 사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단군조선의 실재를 확인하고 있는데, 한국 사학계가 고조선을 폄하한 논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들이 특히 재미있다.

최근 동북공정, 독도분쟁 등으로 알 수 있듯이 동북아시아에서 고대사는 국제정치적 투쟁의 뜨거운 무대로 부상하고 있다. 재외동포 여러분도 이 같은 각양각색의 책들을 읽으면서 한국의 현실을 ‘고대사 분쟁’과 연결시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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