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개성은 너무나도 가까웠다.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서울에서 북서쪽 60㎞ 남짓하니, 가깝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한 사실. 이렇게 가까운데 그토록 멀었다니! 56년의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을 푸는 데는 이색적인 절차가 대기중 이었다.
우선 평소 아무 생각없이 갖고 다녔던 문화관련 소지품들은 잠시 내려놔야 했다. 휴대폰과 노트북,MP3, 심지어 읽다만 신문까지 남쪽 관문인 도라산 CIQ(출입사무소)에 맡겨두고, 인천공항에서처럼 출국심사대에 선다. 이어 DMZ 넘어 5분도 안거리는 북측 CIQ에서의 입국심사, 군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소지품을 검사한다.
취재필수품인 카메라는 예외, 며칠전 남한 당국을 통해 신고 받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또한 촬영데이터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에 한해서였다. 드디어 주황색 깃발(비무장표식)을 꽂은 버스는 맘 놓고 북쪽을 향한다. 그러나 이 역시 잠시, 질주가 시작되나 싶은 순간 초록색 울타리로 둘러싸인 개성공단에 도착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개성공단의 현장에서는 희망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쪽의 자세가 부드럽고 적극적이라고 기업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전했다.
태성하타의 手島勇次 부사장(60세)은 “처음부터 북쪽의 반응은 적극적 이었다”면서 “생산성은 처음의 2배이상, 불량률도 대폭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자금 10%가 투자된 이 회사의 일본인 기술자, 작년말부터는 NHK방송을 보고 국제전화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을 주생산라인으로 삼은 기업도 생겨났다. 스포츠화-아동화 업체인 삼덕통상은 개성에만 3개라인, 입주기업중 가장 많은 1200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기존 중국의 청도공장 증축대신 개성을 택했다고 한다.
로맨스 금지된 통제구역
흔히 개성공단을 두고 남북 사람들이 한 울타리에서 공존한다는 점에서 ‘미래
통일한국의 시험장’이라고 말한다. 북 4300명 남 400여명이 자연스레 어울리다보면 어쩌면 ‘남남북녀’간의 로맨스가 나오지 않을까? 이런
기자의 기대는 몇 명과의 인터뷰에서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남쪽의 한 관리직원(33?미혼)은 “근무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북쪽 아가씨들에게 ‘밥 먹었냐’는 식의 가벼운 이야기도 해 본 기억이
없다”면서 “업무외의 접촉과 사적인 대화는 금기사항으로 늘 조심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실에도 2인 1조로 가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그러니 눈길을 마주치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그의 말을 들어서였을까, 실제 현장에서 본 여공들의 시선은 대부분 아래로 고정돼 있었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20대 후반의 북쪽
남자직원은 ‘서울에서 왔다’는 말에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같은 장소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남과북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는 통제받고 있는
것이다.
월급 당국에 백지위임
북이 사회주의 통제 국가란 걸 절감한 대목은 다름아닌 월급이었다. 1인당
기본월급으로 책정된 57.5달러 중 7.5달러의 명목은 북한 당국이 거두는 세금. 그럼 남는 50달러는 개인에게 지불되는 것이 상식,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월급 전체를 북한당국이 위임한 브로커에게 준다. 개인별 분배방법과 실제 개인이 받는 월급의 금액에 대해선 한결같이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관계자가 “20%일 것”이라고 말했다가 서둘러 “잘 모르겠다”고 수습했을 뿐이다.
공단밖 풍경과 귀로
100만평의 개성공단과 북한 주민의 생활지구를 구분짓는 표식은 초록색 철망으로
연결된 울타리. 울타리 안은 첨단공장이 여러개 들어서면서 어느새 공단의 품새가 물씬 뭍어났다.
그러나 울타리 바깥 풍경은 완전히 다른 세계, 부서져버린 건물잔해가 곳곳에 널려있고 몇 채 안남은 민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낡아
있었다. 땅집(단독주택)뜰에서 마른풀을 뜯는 야윈 염소 2마리, 철망을 부둥켜 쥐고 쳐다보는 빨간 내복차림의 아이, 그 뒤편 언덕길로 소달구지를
끄는 노인...... 이것이 버스속에서 본 개성 주민의 모든 모습이었다.
귀로 차창밖 시선은 DMZ이북의 경의선 철로로 고정됐다. ‘10㎞남짓한 단선 철길을 만드는 데 3년이나 걸리다니...’ 개성공단앞 역사인
판문역은 아직도 공사중 이었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가 동거하는 곳, 절묘한 궁합이 없으면 언제든 작은 오해로도 깨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마주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남북을 막론하고 ‘희망’을 찾겠다는 열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