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한울타리서 ‘자본-사회주의 상생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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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한울타리서 ‘자본-사회주의 상생실험’
  • 통일일보 기자 이민호
  • 승인 2006.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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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존의 경제특구 ‘개성공단’을 가다

생각보다 개성은 너무나도 가까웠다. 자동차로 1시간 거리다. 서울에서 북서쪽 60㎞ 남짓하니, 가깝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한 사실. 이렇게 가까운데 그토록 멀었다니! 56년의 세월동안 쌓이고 쌓인 감정을 푸는 데는 이색적인 절차가 대기중 이었다.

우선 평소 아무 생각없이 갖고 다녔던 문화관련 소지품들은 잠시 내려놔야 했다. 휴대폰과 노트북,MP3, 심지어 읽다만 신문까지 남쪽 관문인 도라산 CIQ(출입사무소)에 맡겨두고, 인천공항에서처럼 출국심사대에 선다. 이어 DMZ 넘어 5분도 안거리는 북측 CIQ에서의 입국심사, 군인들이 일일이 손으로 소지품을 검사한다.

취재필수품인 카메라는 예외, 며칠전 남한 당국을 통해 신고 받았기 때문에... 하지만 이 또한 촬영데이터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에 한해서였다. 드디어 주황색 깃발(비무장표식)을 꽂은 버스는 맘 놓고 북쪽을 향한다. 그러나 이 역시 잠시, 질주가 시작되나 싶은 순간 초록색 울타리로 둘러싸인 개성공단에 도착해 있었다.

▲ 개성공단 한 봉제업체에서 일하는 북한의 여성 근로자들, 입주업체는 이들의 월급울 개별지급하지 않고 북한당국이 지정한 자에게 지불하고 있다. ‘중국보다 나은 개성’ 역설본격적인 일정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GIC)의 공단설명회로부터 시작됐다. 총괄 브리핑은 북측 여성직원이 영어로 진행하고 일문일답은 남쪽 관리자가 맡는 식의 남북공조 형태를 띄었다. GIC관계자들은 개성공단의 경쟁력과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들은 “한국기업들은 더 이상 중국과 동남아로 갈 이유가 없어졌다”고 확신에 찬 표정들이었다. 중국의 절반밖에 안되는 값싼 노동력과 같은 언어를 쓰는 원활한 의사소통 등... 북측 근로자의 기본 월급은 세금을 포함해 1인당 57.5달러(5만7000원 가량)로 중국의 40%수준. 무엇보다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기술 전수 과정이 단축된다는 것은 개성만의 특징. 게다가 근로자 10명중 2명은 전문대졸이상의 엘리트들이다. 북 인구의 3% 73만명 고용 2004년말 한국토지공사와 현대아산이 착공한 개성공단, 작년 봄부터 공장가동이 시작돼 지금은 11개 기업에 4300여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내년까지 300개 기업을 입주시킨다는 1단계 목표를 설정해 뒀다. 2억2천만 달러(약 2200억원)이 투입되는 프로젝트. 김동근 GIC위원장은 “개성공단의 투자환경은 중국, 베트남 보다 훨씬 우수하다”면서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는 2012년에는 2000여개사 73만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는 명실상부한 경제특구가 될 것”이라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메이드인코리아 성패의 변수 북측 관리인 ‘한철’ 씨도 “이곳은 장군님(김정일)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중”이라면서 “남쪽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원하는 기업가라면 누구든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며 자유무역지대임을 역설했다. GIC가 고용목표로 삼은 73만 명은 북한인구(2300만명 기준)의 3%가 넘은 것으로 시나리오대로라면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가동중인 11개 기업만을 놓고 보면 이는 한낮 꿈에 머물러 있다. 신발과 의류 등 주요제품의 95%이상이 내수용(한국소비용)이기 때문이다. 입주기업중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곳은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태성하타’가 유일한 데, 이곳 제품의 60%도 내수용이다. 따라서 개성공단 제품이 메이드인코리아(한국산)로 국제공인을 받느냐 여부는 공단성패의 중요 변수임에 틀림없다. 의류업체인 신원 에벤에셀의 황우승 사장은 “1개월에 2만벌씩 생산하지만 아직 전량 내수용”이라면서 “앞으로 메이드인코리아로 인정되면 중국보다 훨씬 큰 경쟁력을 갖겠지만, 반대의 경우 외국수출은 불가능해진다”고 토로했다. 원산지 표시문제는 최근 2가지 사건에서 개성공단에 희비를 안겨줬다. 3월2일 발효된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개성산도 한국산으로 인정키로 한 반면, 올해 한국과의 FTA협상이 예정된 미국은 “한국과 미국내에서 생산되는 것만 협상대상이다. 개성이슈가 걸림돌이 안됐으면 좋겠다”(주한미국대사관 관리)며 부정적 반응이 나왔다. 경제초강국이자 한국의 최대 무역국인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혀버린다면, 개성제품의 판로는 크게 줄어들 것이며 자연히 투자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최근의 북핵 위기와 위폐문제, 6자회담 답보와 같은 대외적인 악재와 남북당국간 마찰 등의 정치적 리스크는 언제든지 공단의 존폐를 위협할 잠재 변수다. ▲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GIQ) 건물 모습
적극적인 북측 ...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 개성공단의 현장에서는 희망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북쪽의 자세가 부드럽고 적극적이라고 기업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전했다.

태성하타의 手島勇次 부사장(60세)은 “처음부터 북쪽의 반응은 적극적 이었다”면서 “생산성은 처음의 2배이상, 불량률도 대폭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자금 10%가 투자된 이 회사의 일본인 기술자, 작년말부터는 NHK방송을 보고 국제전화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개성공단을 주생산라인으로 삼은 기업도 생겨났다. 스포츠화-아동화 업체인 삼덕통상은 개성에만 3개라인, 입주기업중 가장 많은 1200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다. 기존 중국의 청도공장 증축대신 개성을 택했다고 한다.

로맨스 금지된 통제구역
흔히 개성공단을 두고 남북 사람들이 한 울타리에서 공존한다는 점에서 ‘미래 통일한국의 시험장’이라고 말한다. 북 4300명 남 400여명이 자연스레 어울리다보면 어쩌면 ‘남남북녀’간의 로맨스가 나오지 않을까? 이런 기자의 기대는 몇 명과의 인터뷰에서 여지없이 무너져버렸다.

남쪽의 한 관리직원(33?미혼)은 “근무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북쪽 아가씨들에게 ‘밥 먹었냐’는 식의 가벼운 이야기도 해 본 기억이 없다”면서 “업무외의 접촉과 사적인 대화는 금기사항으로 늘 조심한다”고 말했다. 그는 “화장실에도 2인 1조로 가는 모습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그러니 눈길을 마주치는 건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푸념했다.

그의 말을 들어서였을까, 실제 현장에서 본 여공들의 시선은 대부분 아래로 고정돼 있었다.
어렵사리 인터뷰에 응한 20대 후반의 북쪽 남자직원은 ‘서울에서 왔다’는 말에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같은 장소 같은 공기를 마시지만 남과북 사람들은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는 통제받고 있는 것이다.

월급 당국에 백지위임
북이 사회주의 통제 국가란 걸 절감한 대목은 다름아닌 월급이었다. 1인당 기본월급으로 책정된 57.5달러 중 7.5달러의 명목은 북한 당국이 거두는 세금. 그럼 남는 50달러는 개인에게 지불되는 것이 상식, 그러나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월급 전체를 북한당국이 위임한 브로커에게 준다. 개인별 분배방법과 실제 개인이 받는 월급의 금액에 대해선 한결같이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관계자가 “20%일 것”이라고 말했다가 서둘러 “잘 모르겠다”고 수습했을 뿐이다.

공단밖 풍경과 귀로
100만평의 개성공단과 북한 주민의 생활지구를 구분짓는 표식은 초록색 철망으로 연결된 울타리. 울타리 안은 첨단공장이 여러개 들어서면서 어느새 공단의 품새가 물씬 뭍어났다.

그러나 울타리 바깥 풍경은 완전히 다른 세계, 부서져버린 건물잔해가 곳곳에 널려있고 몇 채 안남은 민가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낡아 있었다. 땅집(단독주택)뜰에서 마른풀을 뜯는 야윈 염소 2마리, 철망을 부둥켜 쥐고 쳐다보는 빨간 내복차림의 아이, 그 뒤편 언덕길로 소달구지를 끄는 노인...... 이것이 버스속에서 본 개성 주민의 모든 모습이었다.

귀로 차창밖 시선은 DMZ이북의 경의선 철로로 고정됐다. ‘10㎞남짓한 단선 철길을 만드는 데 3년이나 걸리다니...’ 개성공단앞 역사인 판문역은 아직도 공사중 이었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가 동거하는 곳, 절묘한 궁합이 없으면 언제든 작은 오해로도 깨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마주했던 사람들의 얼굴에는 남북을 막론하고 ‘희망’을 찾겠다는 열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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