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사회 가볼만한 명소-①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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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사회 가볼만한 명소-①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 김승력
  • 승인 2005.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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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촌 기념비와 서울거리

민족의 최고 가치는 자유와 독립이다. 이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은 민족적 성전이며 청사에 빛난다. 신한촌은 그 성전의 요람으로 선열들의 얼과 넋이 깃들고 한민족의 피와 땀이 어려 있는 곳이다. 1910년 일본에 의하여 국권이 침탈당하자 국내외 지사들은 신한촌에 결집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필사의 결의를 다졌다. 성명회와 권업회 결성, 한민학교 설립, 신문 발간, 13도의군 창설 등으로 민족역량을 배양하고 1919년에는 망명정부(대한국민의회)를 수립하여 대일 항쟁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한민족은 1937년 불행하게도 중앙아시아에 흩어지게 되고 신한촌은 폐허가 되었다.’          
- 신한촌 기념비문 중에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시내 중심가 언덕에 러시아 사람들에겐 낯선 기념비가 하나 서있다.

선명한 한글로 쓰여진 비문엔 이곳이 한민족의 긍지와 회한이 서린 독립운동의 성지였음을 나타내는 글귀가 누군가에게 웅변이라도 하듯 비장한 어조로 새겨져 있다. 신한촌 기념비가 바로 그 것이다. 연해주는 만주와 더불어 근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가진 곳이다. 두만강 접경의 함경도 농민들이 기근을 피해 농사지를 땅을 찾아 간 곳이 연해주였다.

빈 황무지였던 연해주는 거의 한인들의 피와 땀으로 개척된 땅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러시아 탐험가 페소츠키는 그의 저서에서 “집 없이 떠도는 가축과 같이 한인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나도 끔찍하지만 사실상 탐사가 이루어진 전 지역, 심지어는 삼림지까지 한인들의 노력으로 개간된 것이다”라고 그 당시 연해주 한인사회를 소개하고 있다.  

신한촌은 이러한 연해주 한인사회가 어렵게 정착하고 성장해 이룩해 놓은 정칟경제·문화의 중심지였다. 한인들은 이곳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절치부심 독립의 꿈을 키워 나갔고, 우리 역사의 장을 반도에서 대륙으로 다시 넓혀 놓고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리 공부를 조금 하고 찾아가면 여러 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의미있는 곳이다. 

자 이제 신한촌 기념비를 보았으면 아무르만 쪽으로 약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자. 세울스까야 2 (서울거리 2번지)란 노란 주소표지판을 달아 놓은 집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강제이주로 폐허가 된 신한촌에서 기특하게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집이다. 재미있는 것은 세월이 오래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행정구역상의 주소가 살아 있어 이 집에 편지를 쓰려면 ‘서울거리 2번지’라고 써야 한다고 한다.

러시아 대륙 블라디보스토크에 아직까지 서울거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집주인은 러시아 사람이지만 그 옛날 이곳이 신한촌이었다는 사실을 주소 표지판 하나가 외롭게 남아 증언하고 있는 듯하여 고맙고 쓸쓸한 감상을 자아내는 곳이기도하다. 마지막 한 채 남은 귀중한 이 집을 뜻있는 단체에서 구입해 신한촌 박물관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겠다.

앞으로 하나하나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이제 블라디보스토크에 가면 신한촌 기념비를 한 번쯤 둘러보아야 할 이유가 생겼으리라. 그리고 조금 걸어내려가 서울거리 2번지 집을 찾아보고 살아 있는 역사의 숨결을 음미해 본다면 분명 훌륭한 여행이 될 것이다.

관련기관 및 편의시설 
대한민국총영사관 402222      
현대호텔 402233           
블라디보스토크호텔 412808
김승력기자 humanks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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