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운동의 주체성 무시는 용납할 수 없다"
상태바
"해외운동의 주체성 무시는 용납할 수 없다"
  • 민중의소리
  • 승인 2005.03.1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005.3.14 (월) 10:22 민중의소리 기사보기


지난 4일 밤,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 결성 소식에 해외 대표단이 머문 호텔은 눈물바다가 됐다. 공동행사준비위 결성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객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해외측 준비단의 마음고생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해외측 준비단의 일원으로 참가한 미주지역 노길남 공동위원장은 역사적인 순간, 산고 끝에 태어난 '옥동자'를 잘 키워가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결성식 과정에서 생긴 논란에 대해서는 "해외 운동의 주체성을 무시한 처사이며 이는 명백한 내정 간섭"이라고 잘라 말했다.

해외운동에 관심을 갖고 애정어린 비판을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해외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구성한 준비위에 대해 문제 삼는 것은 운동의 원칙에도 있을 수 없다는 것.

노길남 공동위원장은 향후 6.15 정신에 더 걸맞도록 해외준비위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해외측의 존엄과 주체성을 무시하는 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겠다고 전했다.

다음은 노길남 미주지역 공동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미주지역 노길남 공동의장 ⓒ민중의소리

-전반적으로 미주지역 동포사회의 성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도 많은 것 같다. 우선 미주동포 사회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미주동포사회는 150만~200만명의 이주민들로 형성되어 있고, 그 중 75만명 정도가 캘리포니아에 집중되어 살고 있다.

이민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3가지 요인이 있는데 언론, 종교, 영사관이다. 교포 현지의 독자적 언론이 거의 없고, 중앙일보,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 한국 남쪽 언론 재벌들이 와서 돈을 쓰면서 영향력을 크게 미친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민사회는 한국의 여론, 관의 여론이 지배적인 사회다. 또 미주동포사회에서의 기독교 인구는 75~80%로 압도적인데, 여전히 보수적인 기독교가 이민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 들어와서 민주화의 영향을 받아 영사관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인주류사회에 영사관이 이러저러한 면에 관여 하는 부분도 많다.

때문에 미주동포사회는 아직까지 언론, 교회, 영사관 등에 의한 보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주지역에서는 통일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소수이겠다.

남쪽도 통일운동세력, 민주운동세력이 다수가 아니듯, 미주지역도 통일운동 민주화 운동하는 사람들 소수이다. 대게 중간층이 많은데 중간층은 아까 얘기한 세가지 원인에 의해 보수의 울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미주지역에서 민주화운동이나 통일운동을 전개하는데 어려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주지역 준비위 결성과정에 대해서 설명해달라. 재미 한인회와도 접촉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에서는 재미 한인회, 민단등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논란인데 어떤 노력을 했는가

미주지역은 현재 40여개 단체로 구성됐다. 과거 범민련 시절에는 3~4개 정도의 단체로 15년을 걸어왔다. 그런 면으로 봤을 때 이번에 미주지역 준비위 결성에 40여개 단체가 힘을 모았다는 것은 대단히 넓은 폭으로 결성됐다고 긍지높게 얘기할 수 있다.

미주 중남부, 동부, 서부지역이 결성과정에서 똑같이 재미한인회랑 접촉을 했다. 많은 지역의 한인회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다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한인회를 이끄셨던 신필영 선생도 참여했다. 시카고에서는 한인회 역할을 하고있는 분이 참여의사를 밝혔는데 마지막에 참여를 안했고, LA에서는 새로 들어온 한인회가 통일운동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이라 성공하지는 못했다.

덧붙여 일본지역을 소개한다면 총련, 한통련, 민단, 시민단체 4개로 구성되어 있다. 한통련과 총련이 민단하고 같이 하려고 5번이나 접촉해서 호소하다시피 간청했다. 원래 25일 결성식을 하루 늦춰가면서까지 참여를 호소했으나 끝내 거부한 것은 민단이었다.

호주에서는 한인회 이사가 처음으로 왔었고, 유럽에서도 각 지역, 여러 단체들이 참여했다.

7개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그 지역의 특수성, 지역의 조건이 다르면서도 광범하게 묶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그만큼 꾸려진 것이 오늘날 해외운동의 현주소다. 그러나 해외운동의 현상황은 과거 범민련 시대 운동했던 것과는 굉장히 다르다. 이러한 해외지역상황에 대한 이해를 남측이나 북측이나 먼저 해야 한다.

절대로 민단, 한인회를 배제 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본인이 준비 안되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억지로 끌고 올 수 있는가. 그들의 준비정도가 안됐기 때문에 안된것이지, 일부러 해외동포운동이 그렇게 구성한 것이 아니다.

난관은 있었지만 결성식 마치고나서 각 지역 대표들은 돌아가서 한인회, 종교계, 사회단체 등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했다.

-향후 더 폭을 넓혀 조직하겠다고 했는데, 조직확대가 된다면 '자리' 문제도 연연하지 않고 할 것인가?

자리문제에 연연하는 일은 없다. 곽동의 의장같은 경우도 본인이 원해서 의장을 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권유로 한 것이다. 고통의 온 생애를 살아온 분이다. 범민련 15년을 돌이켜 봐도 해외운동의 기둥역할을 해온 것이 한통련이고 그곳의 지도자다. 이런 분한테 이러쿵저러쿵 한다는건 해외 민주운동사와 해외 통일운동사를 모독하는 일이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운동해 온 사람인데도 자신있게 얘기 할 수 있다.

-심양회의에서는 어떤 내용이 논의 됐나?

해외에는 직위들도 많고 사람들도 많지 않나. 명예 위원장을 한 지역에서 2~3명으로 해달라는 등의 부탁이 왔었다. 지역에서 토론해서 추천했고 그 취합을 일본에서 한 것이다.

한가지 미흡했던 점은 1~2 직책에 대해서 사전 충분한 논의가 없어서 현지에서 모여 논의한 것이 있다. 위원장문제와 사무국장 문제이다. 오신 분들이 복안을 제안해왔고 거의 9:1 정도로 가져온 복안에 대해 동의를 했다. 그 중 극소수가 남측에서 제기한 것과 같은 문제를 이야기했던 게 있지만, 전체적 의견대로 지금의 곽동의 의장과 사무국장이 선임된 것이다. 형식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다 거쳤다. 극소수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들어가길 원했지만 9:1정도의 압도적인 의견이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정당한 절차를 안밟았다고 하는건 있을 수 없다. 절차가 잘못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그렇게 얘기한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해외 측 공동의장으로 문동환 목사가 선임된 과정은 어떤가?

심양에서 회의를 하고 금강산에 도착한 날, 곽동의 의장이 전체회의를 소집했다.

곽의장이 하는 말이 “내가 여러분들이 선정을 해서 위원장이 됐지만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건강문제도 있지만 지구촌 7개 지역을 혼자 담당하기가 버겁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한 분을 더 공동의장으로 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토론을 해서 문동환 목사가 좋겠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문목사는 건강 상 참석을 못했는데 곽의장이 직접 문목사랑 통화해서 수락을 한 것이다. 전체 결의에 의해 문목사가 공동의장으로 추대가 됐다.

-얼마전 김종수 신부는 “공동의장제를 해도 돌아가서 다시 논의해야 되는거 아니냐 왜 거기 모인 사람들끼리만 논의하느냐"란 제기를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이 ‘당신들이 가서 그렇게 해라 마라'할 권리도 없고 자격도 없다. 내가 백낙청 의장이 나긋나긋하고 투쟁성 적은 면이 맘에 안든다고 해서 그 사람 내리고 다른 사람하자고 얘기한다면 그게 말이 되는가.

또 안경호 위원장 키가 작다고 키 큰사람 뽑으라고 한다면 그게 말이 되겠는가. 그건 분명한 내적 간섭이고 운동의 '운’자도 모르는 것이다. 아직까지 통일운동한다는 사람들 중에서도 개념이 없고 상식없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에 결성식에서 난관이 조성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남쪽에서 이번처럼 해외운동에 대해 관심가졌던 것 내가 처음 느꼈고, 또 해외운동에 대해서 이번처럼 이러쿵 저러쿵, 심지어 간섭까지 하는 지경으로까지 간 것도 처음이었다.

좌우지간 관심가져준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감사드린다. 그러나 관심가지는 것과 비판적으로 제언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구체적으로 문제삼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다. 그건 아량을 가지기 이전에 몰상식의 태도라고 단호하게 얘기할 수 있다.

해외운동은 주체적으로 해야 한다. 남쪽이 뭐라해서, 북쪽이 뭐라해서 끌려가는게 아니라 해외운동은 해외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조건에 기초해서 자주적으로 해야 한다. 북에도 남에도 휩쓸려가서는 안된다.

과거에도 남측과 북측에서 하지 못한 걸 해외에서는 해왔다. 피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 나름대로 자주성을 가지고 운동을 지금까지 전개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공준위 구성에 있어서도 해외운동의 주체는 누가 뭐래도 해외라는 것, 거기에는 어떠한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통일 후 조국의 발전을 위해서도 해외동포사회는 조국발전의 한 주체라는 신념을 가지고 노력할 것이다.

비온 후에 땅이 굳어진다고 아픔과 고민속에서 더 강한 신념이 생겼다.

마지막으로 운동은 기본적인 원칙에 입각해서 해야한다는 것을 느꼈다. 원칙 위에 대중성이 있는 것이지 원칙에 대한 기초가 없는 가운데 대중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다. 통일운동의 원칙이란 뭔가. 자주적, 평화적, 민족 대단결적 측면에서 해야 한다. 6.15에 찬성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친북도 친남도 있을 수 없다. 이념, 정견을 뛰어넘어서 서로 보듬어 주면서 손잡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통일은 남과 북을 합치는 문제이지만 통일운동이라는 것은 남북해외 3주체가 결합되서 만들어내는 것이 통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운동의 일환으로써 남북해외가 각자의 준비위를 꾸리고 금강산에서 모인것이다. 해외에 관심두고 비판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문제시 하는건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막바지에 백낙청 교수와 곽동의 의장이 독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고 있는가?

백낙청 의장이 곽동의 의장하고 얘기하고 싶다고 해서 곽의장, 한통련 송세일 사무총장, 나 이렇게 세사람 갔다. 그 쪽에도 네사람이 있었다.

백낙청 의장은 계속 “한발 좀 늦게 가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2~3번 강조했다. 곽의장이 심양에서부터 걸어온 길을 설명했는데 같은 얘기가 계속 맴돌았다.

민화협 이승환씨가 옆에서 "해외측에서 그렇게 계속 그러시면 남측이 분열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운동이 분열되는지 안되는지, 위기가 조성되는지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백교수님은 남측 대표단에서 오신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 백교수님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무산될 수도 있고 결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결성이 안된다면 선생님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고 모든 책임은 백교수님이 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외측이 주체적으로 해온 구성에 대해 내정간섭을 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곽의장이“백교수님 그것땜에 결성이 안된다면 우리 모두 자결합시다”라고 눈물을 글썽이더라. 우리는 “백교수님의 결정을 기다리겠습니다”하고 나왔다.

역사적인 장소에 와서 이런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해외를 공석에 두고 결성이 된다면 그 다음에 무슨 꼴이 되겠는가? 우리를 해외운동의 한 주체로 보겠는가? 그렇게 됐다면 앞으로도 아무것도 안됐을 거다. 왜냐면 원칙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원칙의 기초에서 대중성이 담보되는거지, 원칙 없이 대중성만을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에 금강산에서 남측이 제기한 문제를 해외측에서 받아들였을 때, 현실적으로 돌아가서 재논의 할 수 있는 것인가?

원점에서 논의할 수 없다. 과거에도 이런일이 있었다. '결성'이라는 것, 그 순간에 매몰되서 원칙을 져버리는 것이다. 남측 민화협이 아니더라도 소위 운동권 사람들 중에서도 계속 양보하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 앞으로도 지난번과 같은 경우는 운동의 기초를 아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민중의소리
-금강산 현지에서 남측의 의견 조율이 늦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북과 해외가 논의과정에서 소외된 결과를 빚어졌다. 과정에서 소외감을 느꼈을 텐데 어땠나?

이번에 처음으로 오신 분들, 해외의 대중사회 활동을 하던 분들은 마음에 상처 많이 받으셨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다른 지역이 왜 이래저래 말이 많은가라며 한숨을 쉬기도 했다.

운동을 해왔던 분들은 6.15 5주년이 됐지만 여전히 민족 대단결을 저해하는 일부 극소수세력들은 이런 대세의 흐름에 방해를 조성하는구나 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면서 이것을 우리가 인내하지 않고서 우리가 자주통일원년 안아올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고 조금의 흔들림없이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일단, 해외준비위를 인정하고 추후 미진한 부분을 공동행사준비위가 보완해 나가기로 했는데, 향후 이를 위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우선, 남과 북에서 해외를 도와주고 해외에서 남과 북을 도와주는 상호도와줄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원칙에 서서 운동을 대중화시키는 것이다. 해외지역의 미진한 부분들을 보완해 가는 건 해외에서 열심히 해야 될 문제이다.

방법의 문제는 지역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특성에 맞게 광범위하게 615에 지지 하는 사람은 누구도 배제시키지 않고 모두 참여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것이다. 미주에서는 기독교계 한인회 사회각계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다시한번 적극적으로 만나서 이야기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충하고 싶은 말?

지역으로 돌아가게 되면 난관이 조성됐던 것에 대해 부곽시키기 보다는 지역별 큰 폭으로 참여한 성과에 대해 크게 홍보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역사적인 일인가. 아직 미흡한 것이 있을 수 있으나 성과에 대한 것이 국내외에 크게 알려져야 한다. 이런 저런 난관에 대한 것은 각 지역 별로 각성하고, 또 이러한 민족대단결에 위배되는 발언이나 행동이 나왔을 때는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난관은 하나의 교훈으로 삼아서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계속 불필요한 일에 대해 왈가왈부 한다면 그 틈바구니를 통해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세력들이 비집고 들어올 빌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확고한 신념 원칙하에 할 수 있도록 남북해외전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배혜정 기자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