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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나를 예쁘게 여기는 사람
조현용 교수  |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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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3  11: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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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어엿비 여기다’라는 말은 훈민정음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종께서 훈민정음을 왜 창제하였는지 설명하면서 어리석은 백성을 어엿비 여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엿비’라는 말은 당시에는 불쌍하다, 가엽다 정도의 의미로 쓰였던 말입니다. 따라서 백성을 불쌍하고 가엽게 생각해서 한글을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동기를 애민(愛民) 정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어엿브다’라는 말이 ‘예쁘다’로 바뀌었습니다. 뜻도 ‘불쌍하다’와는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예쁘다는 말은 ‘아름답다’와는 좀 다른 느낌의 단어입니다. 예쁘다의 느낌을 생각할 때 옛 의미를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엽게 생각한다는 말이죠. 가엽게 생각한다는 말은 보호하고 싶다, 돕고 싶다, 돌보고 싶다는 말과 통합니다. 보통 아기를 예쁘다고 하는 것은 그런 느낌 때문일 겁니다. 아기는 예쁘고, 그래서 돌봐주어야 하는 거죠.

예전에 할머니들을 보면 아가에게 ‘아이고 가여워라!’라는 표현을 자주 하였습니다. 뭐가 가엽다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예쁘다’의 느낌을 알고 나서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가가 우는 모습을 보고 주로 하는 말씀인데, 아기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빨리 뛰고 싶지만 할 수 없고,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안타깝기도 한 겁니다. 이런 감정을 저는 예쁘다의 느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바라보고 있으면 좋으면서도 혹시 다치지는 않을까,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도 함께 들어있는 감정입니다.

저에게는 예쁘다는 말이 가슴 절절히 다가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사별(死別)한 할머니께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는지 묻는 장면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잠시 떠올리시더니 눈가가 젖어들면서 “나를 참 많이도 예뻐 하셨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움과 행복이 얼굴에 가득했습니다. 저는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부러웠습니다. 어여쁘게 생각했다는 것은 늘 아껴주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늘 걱정하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내를 두고 먼저 떠난 남편의 마음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저는 예쁘다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를 예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지도 떠올려 봅니다. 나를 예뻐하셨을 부모님이 생각이 나네요. 무슨 말로도 다할 수 없는 감정으로 벅차오릅니다. 나이를 먹었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저를 예뻐하십니다. 자식은 늘 아기 같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자식은 늘 예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도 걱정이 되죠. ‘차 조심해라, 길 조심해라, 감기 조심해라’라는 말은 예쁜 말입니다.

내가 예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물론 저도 아이들이 떠오릅니다. 이미 저보다 키도 더 크고 다 성장한 아이들이지만 여전히 예쁩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함께 나누는 대화가 모두 예쁩니다. 믿으면서도 걱정하고, 아무 일 없이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쁜 감정입니다. 그리고 예쁜 사람은 아무래도 같이 살아가는 아내이겠지요. 아까 할머니가 하셨던 말을 아내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쁜 감정은 가족에게만 한정되는 게 아닙니다. 벗에게도 예쁜 마음은 전해집니다. 저의 경우에는 같이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예쁜 마음이 생깁니다. 서로를 예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걱정하고, 행복하게 하려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예쁘게 살아야겠습니다. 예뻐하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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