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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란과 미국, 전쟁과 협상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장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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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21  12: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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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일주 중동아프리카 연구소장

걸프 지역의 위기

걸프 지역의 위기는 갑자기 훅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다. 이란과 주변 아랍국가들 간에 더 심각한 위기가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이란 국내 문제는 물론 역내 문제와 국제 문제와 연결돼 있다. 미국과 이란 중 어느 한쪽이 전쟁으로 치달을 것 같지 않을 것 같다는 말로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걸프지역의 위기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란(시아)과 순니 아랍 국가 간의 적대감

지금의 이란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란은 가끔 이웃 아랍 국가들에게 평화롭게 지내겠다고 말해 왔지만 그간 이란의 영향이 너무 컸다. 이라크의 시아, 시리아의 시아, 레바논의 시아, 예멘의 시아, 바레인의 시아 무슬림들이 아랍인들이다. 이런 시아 이슬람의 확산에 순니 아랍 국가들은 불만이 크다.

1979년 호메이니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이 중동 역내 국가에 시아 이슬람을 확산시켰다. 아랍인들은 이란의 호메이니 혁명을 ‘대변동(inqilab)’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아랍인들은 이 혁명은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이란 ‘대국(다울라 쿠브라)’을 지향하는 대변동(역내 헤게모니)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란에게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장애가 있었다. 첫째는 중동 지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이고, 둘째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의 전쟁이 이어졌고 셋째는 아랍과 이슬람과 걸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비중이 걸림돌이 됐다.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체제가 붕괴된 이후에 이란은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입지를 갉아먹을 기회를 찾고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여러 방향에서 에워싸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프로젝트에는 이데올로기와 무기와 금품이 제공됐다.

그리고 시아파에 속하는 소수 인종을 기존 인종 그룹에서 빼내어 이란의 ‘윌라야 알파끼흐(Guardianship of the Islamic Jurists)’에 속하도록 헸다. ‘윌라야 알파끼흐’는 현대 이란의 정치사상의 중심축이다. 윌라야 알파끼흐는 법학자(파끼흐)가 (무오한 이맘의 부재 시) 정부의 리더십을 떠맡는 제도이다. 윌라야 알파끼흐의 이론은 1979년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일으킨 이슬람 혁명 때 처음 등장했는데, 이슬람 법학자(파끼흐)에게 국가나 사회의 이슬람 법을 합법적으로 장악하도록 했다.

전통적인 시아 이데올로기에서는 무오한 12번째 이맘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허용했으나 지금은 12번째 이맘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윌라야 알피끼흐의 이론을 도입한 것이다. 이란은 이런 제도가 이슬람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윌라야 알파끼흐 제도 이외에 민병대, 기동대, 로켓, 드론 등을 이용해 이란의 타깃이 된 국가들의 전략적 중요성을 약화시키는 데 사용했다. 예를 들면 예멘의 후시(일부 언론에서는 후티라고 하나 아랍어 본래 발음은 후시) 민병대는 이란 혁명 수비대의 지시를 따랐다고 아랍 칼럼니스트 갓산 샤르빌이 주장한다.

또 이란의 허락 없이는 이라크 정부 구성이 어려웠다. 그리고 레바논에서 정치 세력으로 커져버린 히즈불라가 이란의 도움으로 1980년대 시작됐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는 현지 상황에 따라 이란이 러시아의 파트너가 되기도 했고 또 경쟁자가 되기도 했다. 아랍 국가들은 예멘이 예멘인들에게, 시리아가 시리아인들에게, 레바논이 레바논인들에 의해 통치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이란의 대사가 대통령보다 세고 이란의 혁명 수비대의 까심 술라이마니 장군이 이들 아랍 국가들(시아파)의 장성들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는다.
 
1979년 이후 이란의 야망

1979년 이란의 혁명 이후 혁명 엘리트들은 이슬람 혁명을 해외로 수출하고자 했다. 1982년 초 레바논에서 시아 커뮤니티를 모집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시아파가 레바논에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2000년 초 이란은 ‘역내 헤게모니(regional hegemony)’를 갖고자 시도했고 이런 야망은 시리아 내전 이후에 시리아에서 잘 드러났다. 그리고 이란의 ‘역내 드라이브(regional drive)’는 2003년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시작됐다. 20세기 이란과 터키는 중동에서 제한된 역할만 했으나 터키의 이슬람주의자 에르도안의 등장으로 두 나라 사이는 친구도 적도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에서는 하마스의 도움으로 친 시아 세력들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란은 이런 시아 공동체의 종교적 리더십은 순수한 이란 태생을 내세운다. 따라서 아랍 국가의 시아 무슬림들에게 종교적 리더는 이란인이다.

제1차 아랍의 봄은 이란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는데 시아파 다수를 순니가 지배하는 바레인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사우디아라비아가 진압을 했다. 그러나 예멘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이란의 도움을 받은 후시들이 총부리를 겨누면서 지금까지도 혼란한 정국이 이어지고 있다.

이란과 미국, 변화무쌍

이란과 미국과의 관계는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란의 정책과 야망 때문에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가졌다. 이란은 페르시아 왕들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페르시아의 거만함이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고 아랍 무슬림들은 주장한다. 미국과 이란과의 관계가 좋았던 때는 팔레비(Reza pahlavi, 아랍어로는 리다 파흘라위) 왕 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협정에서 탈퇴하고 나서 이란의 파일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란의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란과 가진 문제들은 이란의 역내 헤게모니 정책과 연관돼 있지만 사실 미국으로서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에 영향을 끼칠 이란의 핵 위협을 차단하고자 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이란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에 우려를 하고 있었다. 아랍국가도 이란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미국은 이란의 혁명 수비대를 알카에다, 무슬림형제단과 같은 테러 그룹 리스트에 올려놓았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걸프 국가들은 미군이 걸프 해역과 일부 국가에 재배치되는 것을 허용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 걸프, 이슬람 국가의 정상들에게 메카로 모여서 이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확인하고 이란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주자고 한다. 아랍은 이란이 미사일이나 민병대나 드론을 사용해 공격하는 것을 당장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미국은 이란의 혁명 수비대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란, 항복이냐? 파국이냐?

이란의 혁명 수비대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 동맹국들은 이란이 국제법을 지켜주기를 주문한다. 아랍 정치 평론가들은 미국과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를 기대한다. 이란 정부는 미국과의 전쟁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나은 협상 결과를 얻기 위해 이란은 미국이 이란의 덫에 걸려들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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