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인터뷰 > 재일동포 유미리 "머물 곳없어 소설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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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인터뷰 > 재일동포 유미리 "머물 곳없어 소설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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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8.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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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08:13 송고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현실의 세계에 머물 곳이 없기 때문에 허구
의 이야기인 소설을 씁니다. 하지만 소설 안에도 나의 거처는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거처를 찾아 소설을 씁니다."

재일동포 소설가 유미리(36)씨가 846쪽 분량의 장편 '8월의 저편'을 한국과 일
본에서 동시에 내놓았다. 이번 작품은 작가가 집요하게 추구해온 '가족 이야기'의
결정판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씨는 마라톤 선수였던 외조부의 이야기를 골격으로
4대의 연대기를 가감없이 써내려갔다.

4명의 박수무당이 외조부의 혼을 불러내는 굿 한판을 벌인다. 손녀인 유미리가
옆에 서서 외조부와 교신을 시작한다. 외조부의 넋이 무녀에게 씌어져 무녀의 입을
통해 할아버지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무녀를 통해 죽은 친족들의 혼백이 차례로 등
장해 유미리에게 말을 걸어오며 일족이 만들어낸 애증의 가족사를 풀어낸다.

1977년 '가족시네마'로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 상을 수상
했던 작가는 줄곧 '부서진 가족'을 보여주는데 골몰해왔다. 자신의 관심인 인간군상
의 위기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생명' '풀하우스' '타일' 등의 대
표작은 그런 작품들이다.

이번 작품도 그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2대에 국한했던 가족의
종적 연대기를 4대로 늘림으로써 일제 식민지치하 등 역사를 개입시켜 가족을 사회
와 국가라는 체제 안에 놓이게 했다.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지난
8일 도쿄 도심의 한 카페에서 만나 들어보았다.

-- 근황은.

▲ 글 쓰는 일이 일과이다. 네살짜리 아이를 아침에 깨워 도시락을 싸고 유치원
에 보낸다.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날은 달린다. 1시간 가량 집 근처에서다. 근처에
산과 바다가 있다. 오르막 내리막을 오가며 약 10㎞ 정도. 1㎞를 6-7분에 돌파한다.
글쓰기가 앉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달리기를 한다.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와 점
심 먹이고 잠재운다. 그리고는 글 쓰는 일. 저녁을 짓기 전까지 쓰고 저녁을 먹은
뒤 또 쓰곤 한다. 혼자 살 때는 며칠씩 글만 쓰기도 했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안된다. 하지만 '8월의 저편'의 막바지에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사흘 내리 잠을 자
지않고 글을 쓰기도 했다.

-- 가족이야기에 집요한 이유는.

▲ 나 자신 무너진 가정에서 자랐다. 가족은 헤어졌고 잘 자라지 못했다(작가의
부모는 별거했고 작가 자신은 여러차례 자살기도를 했다) 완전하고 행복했다면 가족
이야기에 몰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것이 첫째 이유이다. 다른 하나는 소설은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 관련 있다. 가족 이야기를 빼놓고 인간을 그
리는 것은 절대 무리라고 생각한다. 가령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 하늘이 보이고 또
구름도 함께 보인다. 새만 떼어놓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인간을 그리
게 되면 그의 부모와 할머니, 할아버지 등을 함께 묘사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인
간을 묘사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가족에 몰두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가족은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와 국가와 영향을 주고 받는다. '8월의 저편'이
국가의 이야기로 배경을 넓혀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 '8월의 저편'은 어떤 작품인가.

▲ 8월15일 이라면 한국에서 해방 전후를, 일본에서 전쟁전후를 가르는 의미가
있지만 나는 그런 경계짓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전후가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연결됐다는 의미에서, 끝이 없다는 의미를 넣어서 '저편'이라는 말을 제목에
사용했다. 작품의 의미를 한마디로 이야기 하기는 힘들지만 물고 늘어지고 싶었던
것은 역시 '삶과 죽음'이다. 내가 처음 희곡을 썼던 18세부터 무엇을 쓰는가, 다음
작품은 무엇을 쓸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이렇게 답했다. 젊었을 때는 역시 관념
상으로 삶과 죽음을 생각했으나 출산과 출산 3개월후 친구인 히가시라는 분(연극계
대부)이 암으로 숨진 일 등을 겪으며 태어난 생명과 사라진 생명의 사이에 서서 관
념만이 아닌 생과 사를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됐다.(유씨는 미혼모로서 자신의 출
산과 히가시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를 에세이소설 '생명'에서 공개한 바 있다)

-- 이번 소설에서 '마라톤'의 의미는.

▲ 외조부가 마라톤 선수였다. 나는 왜 식민지시대의 상황에서 외조부가 달리기
에 주력하는지 궁금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도쿄올림픽의 유력 후보주자였지만
나가지 못했다. 역시 달리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조부가 분별을 알
때부터 죽을 때까지 달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외조부는 달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2002년 3월 한국에서 열린 마라톤에 직접 참가했다. 그 때부터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 한국인이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소재로 한 소설은 별로 쓰지 않는 것 같은
데.

▲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 밖에 모른다. 아마도 이는 근본과 관련된 문제일 것
이다. 어렸을 때 부모는 한국말로 대화를 주고받고 우리 형제들은 그 대화의 의미도
모른 채 TV에서 일본 만화를 보는 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에 대해 과잉의식이
있었다. 의식안해도 좋지만, 언어가 과연 무엇인가 의문을 가졌고, 언어라는 것은
사람 사람이 잘 소통하기 위한 것 외에 매우 '부자유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
다.(유씨는 이러한 경험 탓에 다른 교포작가 등과는 달리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정체
성과 관련된 문제를 의식적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했다)

-- 소설가는 마음의 상처를 가진 존재라는 말도 있다.

▲ 작가만이 상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 누구에게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다. 어떤 사람도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보다 손에서
빠져나간 것이 커보인다. 또 결국 죽게된다. 역시 살아가는 것은 고통이다. 이를 생
각하면 역시 살아가면서 상처가 쌓이게 된다고 본다. 소설을 통해 내 상처가 독자와
연결되고 교환될 수 있다고 믿는다.

-- 소설 속에서 스스로의 프라이버시까지 적나라하게 모두 털어놓는 이유는.(작
가는 소설과 에세이 등에서 자신이 미혼모이고 모친이 화류계에 관련 있었다는 사실
등을 모두 밝힌 바 있다)

▲ 고통의 소재를 알고 싶다고 해야할까. 역시 알고 싶다는 것. 살아가는 것은
아는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불행해지고 고통이 더해지지만 역시 사
는 것은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왜 소설을 쓰는가.

▲ 현실의 세계에서는 머물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감각은 어렸을 때부터 갖
고 있었다. 머물 곳이 없기 때문에, 머물 곳을 찾기 위해 '허구'인 소설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 나는 들어갈 수 없다. 등장인물들이 거기에 머물
고 있다. 내 장소는 없다. 책이 완성되면 내 것이 아니고 독자의 것이기 때문에 독
자에게 문이 열려 있다. 그래서 소설을 또 써 내 머물 곳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 일본에서 '한류'가 붐이다.

▲ 한국을 아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 택시를 탔
을 경우, 그 때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문제나 북핵문제가 크게 보도되고 있는
시기였는데 택시기사들로부터 "한국인들 전부 일본에서 나갔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일본인들은 한류의 붐과 이런 문제(정치.역사 등 양국 관계사
의 문제)를 완전히 별개로 생각하는 것 같다. < 사진있음 >

shi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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