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형의 꿈, LA 출판기념회 대성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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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형의 꿈, LA 출판기념회 대성황
  • 심흥근 기자 (유정신보)
  • 승인 2017.10.0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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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기뻐한 “LA코리아타운과 한국의 날 축제-인간 김진형의 꿈” 출판기념회

▲ “LA코리아타운과 한국의 날 축제-인간 김진형의 꿈”의 출판기념회 단체사진 (사진 유정신보)

저서 “LA코리아타운과 한국의 날 축제-인간 김진형의 꿈”의 출판기념회가 9월 2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가든스윗 호텔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300 여 명의 재미동포사회 각계각층과 함께 자리를 하며 대성황을 이루었다.

축하객 명사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막내아들인 랄프 안 (91세, 1926년생) 박사가 건강한 모습과 목소리로 “1930년대 당시 남가주의 재미한인은 불과 300명에 불과 했으나 오늘날의 한인사회의 발전과 번영을 이루어 낸 우리 한인들의 성실한 노력들과 질적 양적 성과를 보면 정말 감격스럽다,

일제 강점기시절 해외의 우리 선조들은 ‘대한인국민회의’를 결성하여 나라를 되찾자며 자발적으로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는 등 투철하게 분투해 왔다”라면서 “한인들이 구심점을 갖는 코리아타운 형성에 크게 기여한 김진형 박사의 헌신과 노력에 감사하며 참으로 기쁘다”는 축사를 해 주었다.

▲ 랄프 안 박사 축사 (사진 유정신보)

LA카운티 노인복지 커미셔너를 18년, LA경찰국 인허가위원회 커미셔너로 13년간 역임한바 있는 김진형씨의 코리아타운 만드는 꿈을 여러모로 도와온 허브 웻슨 (Herb Wesson) 제 10지구 시의원이며 LA시의회 의장의 감사장이 전달됐다. 김박사의 절친인 김홍기 국제변호사협회 회장은 같은날 (29일) 84세 생일을 맞은 김진형 박사의 생일케이크 자르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했다.

‘한인역사박물관’에서 발간한 “LA코리아타운과 한국의 날 축제-인간 김진형의 꿈”은 언론인 출신 민병용 관장이 14개월에 걸쳐 완성한 저서이다. 자료수집만 5개월 걸렸고 집필하는데 7개월 그리고 편집을 꼬박 2개월에 걸쳐 완성했다는 전언이다. 저자 민병용 한인 역사박물관 관장은 1974년부터 한국일보 기자로 코리아타운 형성과 한인축제의 시작을 현장에서 직접 취재를 한 바 있다. 80년대 LA시의 코리아 타운 통과 전후의 시의원 및 정치인등 주요 인사를 인터뷰하여 책을 완성했다. 코리아타운 만들기는 “코리아타운 번영회”를 창립한 1972년부터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1980년 12월 8일 LA시의회가 코리아타운 명명의 동의안을 통과 시키며 공식적인 한인타운으로 인정받은 것이며 이를 위한 주역이 바로 김진형씨로 그는 LA의 “코리안 퍼레이드”로 유명한 ‘한국의 날’ 축제를 창시한 창시자이기도 하다.
 
▲ 김진형 박사 (사진 유정신보)

사회는 현지 LA언론인 출신 정진철 Glin-인터넷 TV사 대표가 맡아 진행했다. 책의 서평은 남가주대학교 (USC) 한국학전통도서관 Joy Kim 관장이 해주었다. “이 책을 통해 LA한인타운 형성에 관한 구체적이며 자세한 내막을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되어 기쁘고 역사적인 학술서로서 본 USC대학에서 보존하겠다”라고 말한다. 이어 축하연주는 김진형 박사의 서울대 동문인 백옥자씨의 가야금이 기품을 더했다. 이어서 "김진형 박사는 문화과 예술을 존중했던 기품있는 인문주의자로서 코리아타운 형성에 큰 이바지를 한 노고에 감사하며 같은동문으로서 기쁘다" 라며 서울대 동문인 강신용 회계사 대표의 출판기념회의 의미가 소개되었다. 축사는 LA한인축제재단의 지미리 회장, 김기천 한인커미셔너협회 회장, 그리고 성주경 서울대 남가주총동창회장으로 이어졌다.

김진형 박사는 다음과 같이 감회를 밝혔다. “1968년 미국의 꿈을 안고 LA에 정착한 저는 당시 차이나타운과 재팬타운을 돌아보고 그들의 자체적인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고 한편 놀라웠습니다. 우리 한인동포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급선무가 코리아타운을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물론 내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누군가가 뛰어들 수도 있을 일이지만, 이를 위해 저는 무작정 앞장섰습니다”라고 말한다.

‘LA코리아타운’을 만들어 낸 전설적 인물로 평가 받는 김진형 박사는 1968년 미국에 온 이후,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발상으로 코리아타운의 건설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1971년 지금의 올림픽 거리의 킹슬리와 하바드 거리 사이에 “한국서적센터”라는 조그마한 한국어 책 전문 서점을 개업하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올림픽가에 우리글 한글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당시만 해도 책방을 여는 것이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우선 먹고 사는 것이 시절이었다. 한인은 문화민족이라는 긍지의 씨앗을 로스앤젤레스 대로에 심은 셈이다.
 
▲ 패트릭 레이미 상원의장 비서관이 축하장 전달에 앞서 축하장을 읽고 있다. (사진 유정신보)

그는 코리아타운 형성을 위한 마중물로서 우선 업소들마다 한글과 영어로 된 이중언어 간판 부착 필요성을 피력하고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전개하고, 직접 상점마다 한글간판을 달아 주는데 앞장섰다. 다시금 그는 한인상가의 번영을 위해 1972년에 ‘코리아타운 번영회’를 창설 하였다. 함께 타운상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리고는 ‘미국 속의 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코리안퍼레이드와 함께한 ‘LA한인축제’ (“한국의 날” 축제)를 최초로 개최하는데 성공하였다.

오늘날 한인타운의 개발열풍이 불기까지 한인상가가 오늘처럼 번영하는데 있어 그가 이룬 가장 중요한 업적은 원래 주거지역이었던 지금의 코리아타운 지역에 조닝을 새로 변경해 상가지역(Commercial Zonning)으로 만든 것이다. 이미 그의 노력으로 코리아타운 지역의 경계를 동서로는 버몬트 거리와 웨스턴 거리 남북으로는 올림픽 블루버드와 8가로 시정부로부터 인준을 받았으나 상가지역 뒤로는 모두 주거지역이라 상점들이 주차장 시설을 운영하려면 주거지역을 상가지역으로 용도변경을 해야 하기에 코리아타운 형성의 발목이 잡혀있었다. 이에 그는 시정부에 “Koreatown Specific Plan”이란 계획서를 제출했고, LA시의회로부터 만장일치로 동의 받아 이들 주거지역을 모두 상가지역으로 용도변경을 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로써 코리아타운 상가발전에 획기적인 조치가 이뤄졌다.

그 다음은 상가발전에서 방범문제였다. 그의 숙원사업은 안심하고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김 박사는 한인들이 미국경찰의 기동순찰 방법보다는 파출소 문화에 익숙하다는 것을 시정부에 주지시켜 LA 경찰국 역사상 최초의 파출소를 코리아타운 8가에 설치하게 하였다.

또한, 미주류사회에 코리아타운을 인지시키기 위해 10번 프리웨이 코리아타운 출입구에는 운전자들이 한인타운 지역이란 것을 알기 쉽게 하기 위해 이란 표지판을 고속도로 상에 세워 줄 것을 요청하였고, 이에 시정부는 안내 표지판을 코리아타운 고속도로 출입구 마다 부착하였다. 그리고 커뮤니티 봉사자로 노인복지를 담당하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정부 커미셔너를 맡아 18년간, LA 경찰국의 경찰허가 심사 커미셔너를 맡아 13년 동안 헌신했다. 이 같은 그의 공헌을 미국 연방의회에서도 인정해 지난 1984년 5월 24일 로스앤젤레스시와 한인 커뮤니티 발전에 큰 공을 세운데 대하여 ‘미국 국회 하원의 의사록’에 그의 공덕을 등재 한바 있다.

민병용 관장은 발간사에서 “로스앤젤레스에서 40여년 신문기자와 이민역사가의 한길을 걸어오면서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코리아타운을 만든 역사와 45년의 성장역사 그리고 1974년 한국의 날 축제를 시작한 이야기를 책임 있게 써보는 일이었습니다. 이제 그 꿈을 이루었습니다. 초창기 한인사회 및 코리아타운의 역사 기록을 수집하고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로스앤젤레스 시정부가 김진형 ‘코리아타운번영회’ 초대회장과 함께 공식적으로 코리아타운을 건설하는 일을 해온 옛 회의록,그리고 사진,신문기사를 찾으면서 퍼즐이 하나하나 풀려 나갔습니다. 로스앤젤레스 시의회의 1980년 12월8일 코리아타운 구역 결의안 통과 기록을 찾으면서 보람이 가장 컸습니다. 그후 역대 시의원,도시계획국 City Planner, 미국 연방하원의원 비서실장을 차례로 인터뷰 하면서 이 책을 자신있게 펴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코리아타운 건설의 주역이자 코리안 페스티벌 창시자인 김진형 명예회장의 생생한 인터뷰와 증언 그리고 소장해 온 자료가 코리아타운 역사 기록의 중심이 되었습니다.”라고 기록했다.

한편 지난 2014년 LA 코리아타운의 심장부인 올림픽 블러버드와 버몬트 거리 교차로가 코리아타운의 개척자인 김진형 박사의 이름을 딴 “닥터 진킴 스퀘어(Dr. Gene Kim Square)”로 명명되었다.

제41회 LA한인축제가 개막된 2014년 9월 18일 LA 시의회(시장 허브 웨슨)는 코리아타운 올림픽경찰서 (서장 티나 니에토)에서 ‘김진형 광장’ 명명식을 가진 직후 한인타운 중심부 올림픽-버몬트 교차로에서 표지판 공개행사를 진행했다. LA시의회는 이미 지난해 2013년 김진형 박사에 대한 ‘Dr. Gene Kim Square’ 명명 조례안을 웨슨 시의장과 미치오파렐 시의원의 공동발제를 만장일치로 의결한바 있다.

▲ 패트릭 레이미 상원의장 비서관의 축하장 전달 (사진 유정신보)

이날 허브 웨슨 LA 시의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김진형 박사는 LA 한인사회의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LA시 발전에 공헌 위대한 시민”이라며 “특히 LA 한인축제를 창시하고 한인타운 지역이 ‘코리아타운’으로 지정되는데 앞장 서 왔다”며 “매일 수만명의 시민들이 이 교차로를 지나며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진형 박사는 “이런 영예를 준 LA 시의회에 감사드리며 다민족이 어울려 다양성을 이뤄 나가는 미국사회 발전에 계속 기여하고 싶다”고 전했다. 켄차 ‘한미커미셔너협회장’은 “김진형 박사님을 빼놓고 코리아 타운을 감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김진형박사의 출판기념회 다음날 30일, 지난 대선후보 버니센더스를 도운 원로정치인 ‘패트릭 조지프 레이히’ (Patrick Joseph Leahy, 1975년 당선) 현 머몬트주 상원의원(민주당)의 축전이 비서관 인편을 통해 보내왔다. 패트릭 레이히 상원의원의 비서관은 김회장의 작은아들 브라이언 김(김국현) 전 메릴랜드주 판사의 안내로 LA한인타운에 도착하여 김박사에게 출판기념회 축전을 전달했다. LA한인타운 식당인 “박대감”에서의 조촐한 전달식은 29일 김회장의 84세 생일을 맞아 찾아온 김박사의 오랜 지인들과 함께 하며 기쁨과 정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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