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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 3.1절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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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27  14: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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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고종의 근대화 작업

조선 25대 고종 임금은 1852년에 태어나 1863년 12월, 12세 나이로 즉위했다. 1년 동안 조대비가 섭정했고, 이후 9년 동안 흥선대원군이 섭정했다. 1863년부터 1907년 퇴위할 때까지 고종의 재위기간은 44년이다.

고종황제는 국제정세를 깊이 이해했고, 22세 되던 1873년 친정을 시작하자 곧바로 일본과 수교하고 적극적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했다. 청, 일의 침략정책을 간파하고, 미국을 신뢰하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맺어 안보전략으로 삼고자 했다.

1881년 별기군을 창설했다. 고종은 상비군 3~5만을 육성해서 국방을 강화하고 국제적으로 ‘영세중립국’으로 공인받고자 추진했다. 1901년 주일 러시아 공사가 ‘열국 공동보장으로 한국중립국화’를 제안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한국은 대한제국의 약자)

특히 1897년부터 1907년까지 ‘광무개혁’을 추진하여 근대화 작업에 괄목할 성과를 이뤘다. 1896년 서울도시개조사업, 1899년 대한천일은행 설립, 서대문~동대문 전차 개통, ‘대한제국’ 국제 선포, 중국과 대등한 ‘한청조약’ 체결, 1900년 만국우편연맹 가입, 경인철도 개통, 경인 시외전화 개통, 1901년 신식화폐조례 공포(금본위제 채택), 1903년 중앙은행조례 공포 등으로 신속하게 근대화에 박차를 가했다.
 

일본 제국주의, 노골적 침략

‘조선의 신속한 근대화 작업’으로 일본은 조선침략이 어려워질 것을 두려워하여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일본군 5만 명이 한반도에 머무는 것을 기회로 온갖 강압 수단으로 침탈을 시작했다.

미국 클리브랜드 대통령은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반대하고 고종에게 우호적이었으나, 후임 ‘씨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1905년 6월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조선 침략을 양해함으로 1905년 11월17일 ‘을사조약’ 강압을 방조하여 조선과의 조약을 배신했다.

일본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7월 22일 강제로 고종의 퇴위를 결정했다. 퇴위의 빌미는 1907년 6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호머 헐버트와 3인의 밀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보내어,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고 일본의 침략야욕에 대한 대한제국의 입장을 국제적으로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일본은 속전속결 1910년 7월 29일 ‘한국병합조약’ 조인을 강압했고, 순종황제는 '병합 인준과 양국 조칙'에 서명하기를 끝까지 거부했다.
 

태황제 독살 추진

“2009년 일본 국회 헌정자료실에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지시로 친일파 대신들이 약을 탔다는 주장이 적혀 있는 일본 궁내성 관리 구라토미 일기의 사본이 발견되었다.”(위키백과)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3대 조선통감이며, 1910년부터 1대 조선총독을 지내고 1916년 일본총리가 되었다. 데라우치는 1대 통감 ‘이또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배후를 고종황제라고 ‘수사결론’을 내렸던 자였다. 1918년 미국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선언’을 발표하자 태황제(고종)가 다시 움직일 것을 우려하여 독살을 추진했고, 1919년 1월 21일 고종황제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1919년 3월 1일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대여’가 떠나는 날, 경운궁 대한문 앞에 모인 백성들은 태황제의 죽음을 슬퍼했을 뿐만 아니라, 44년 재위기간과 퇴위한 이후 12년 동안 불굴의 투지로 애국 애민한 태황제에게 충성을 표하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가는 디딤돌 - 3.1절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손병희 선생을 위시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가 선포되는 것을 시작으로, 만세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조선 8도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고종황제가 죽고 대한제국이 패망한 자리에 백성들이 나라의 주인으로 ‘독립의 기치’를 높이 들고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한 날이 ‘3.1절’이다.

1919년 4월 10일 저녁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준비위원회는 국호를 조선공화국(초안)에서 대한민국으로 변경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1919년 3.1 만세 함성의 힘으로 임시정부를 세운다. -(대한독립) 만세함성은 독살된 고종황제에 대한 애도와 충성의 소리 - (국호는) 대한제국을 계승하는 민국으로서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강제 합방 9년 후 대한제국의 2천만 민중은 ‘3.1만세’로 독립을 외쳤고, 그로부터 26년 후 선열들의 피어린 항쟁과 하늘의 도우심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다. 그리고 3년 후, ‘대한민국’으로 다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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