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 안국동 농협 종로지점 (구(舊) 조선중앙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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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통신 - 안국동 농협 종로지점 (구(舊) 조선중앙일보사)
  • 김지태 기자
  • 승인 2016.02.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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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보수공사 거쳐 옛 모습 그대로 복원
▲ 낡았지만 고즈넉한 옛 정취를 간직하고 있던, 복원공사 전의 구 조선중앙일보사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초입 버스정류장 앞에는 유서깊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가 있던 건물이다. <조선중앙일보>는 원래 <중앙일보> 였던 것을 여운형 선생이 인수하면서 제호를 바꾼 것인데 현재의 <조선일보>나 <중앙일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재의 <중앙일보>는 해방 이후 1965년 삼성 이병철 회장이 새롭게 창간한 일간지다. <조선중앙일보>의 전신 <중앙일보>는 1926년에 창간됐다가 1931년에 폐간된 <중외일보>를 전신으로 한다. <중외일보>는 <시대일보>를 전신으로 한다. <시대일보>는 1924년 육당 최남선이 창간하여 사장 겸 주간을 맡았던 신문이다. 한국 정기간행물의 역사에서 육당 최남선의 독보적인 위치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대일보>는 이미 발행되고 있던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와 달리 1면을 정치면으로 채우지 않고 사회면으로 했다고 한다. 당시 사회부장에 염상섭, 정치부장에는 안재홍이 있었고, 한때 벽초 홍명희가 사장을 맡기도 했다.  
 
 계보를 잠깐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시대일보(1924년 창간. 사장 겸 주간 최남선)>, <중외일보(1926년 창간. 사장 이상협)>, <중앙일보(1931년 창간. 사장 노정일)>, <조선중앙일보(1933년 창간. 사장 여운형, 발행인 겸 편집인 최선익)>.
 
 <조선중앙일보>는 <중외일보>부터만 전신으로 삼아 <중외일보> 제1호를 이어받아 1872호부터 3059호까지 발행했다. 창간 당시 최선익 등이 자본금 50만원을 투자했다고 한다. 당시 시세로 큰 돈이었는지 경비행기를 도입해 백두산탐험비행을 시도할 정도였다고 한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땄을 때 <동아일보> 보도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러나 <조선중앙일보> 역시 1936년 8월 13일자에서 손기정 선수 사진의 일장기를 말소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사건 이후 같은 해 9월 5일부터 <조선중앙일보>는 휴간계를 내고 발행을 중단해야 했다. 그 뒤 조선총독부에 의해 여운형이 사장직을 퇴임당하면서 1937년 폐간하고 말았으니 참 기구한 운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유서깊은 건물은 2013년 말에서 2014년에 걸쳐 보수공사를 했다. 다행이도 괴상하게 깨꼬롬한 모습으로 변하지 않고 고즈넉하게 옛 모습을 복원하는 수준으로 공사가 이루어졌다. 깔끔하게 복원된 사진 대신 복원 전 낡은 상태였을 때의 사진을 찾아 올린다. 이 건물 혹은 공평동과 관련된 사연이 있는 독자들이 추억의 한 편린을 음미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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