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 대통령의‘드레스덴 구상’과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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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 대통령의‘드레스덴 구상’과 북한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4.10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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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장 박사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지난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한반도평화통일구상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먼저 독일통일을 예찬하면서 한반도에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북한 아이들이 거리에 방치되어 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다는 외신보도를 접하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토로했다. 또한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① 남북한 간의 인도적 문제 해결, ②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인프라 공동 구축, ③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을 제안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북한은 4월 1일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박근혜가 추구하는 ‘통일’은 우리의 존엄 높은 사상과 제도를 해치기 위한 반민족적인 ‘체제통일’이다. 그런 흉악한 속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통일구상’이니 뭐니 하고 떠들었으니 그야말로 낯가죽이 두꺼워도 보통 두껍지 않다"고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것은 남조선집권자가 ‘경제난’이니, ‘배고픔’이니 하고 우리의 현실을 터무니없이 왜곡하며 임신부와 아이들에 대해 걱정하는 듯이 생색을 내었다"고 박 대통령이 북한의 경제난과 탈북자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보였다.  북한이 현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퍼붓고 있는 비난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북한은 박 대통령의 제안을 궁극적으로 북한을 독일식으로 흡수통일하기 위한 ‘독이 든 사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북한의 격렬하고도 격앙된 반응은 한국 정부에게 흡수통일에 대한 북한의 우려와 불안감을 자극하지 않도록 보다 신중하게 발언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주고 있다.

박 대통령이 독일식 한반도 흡수통일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면 북한은 남한의 제안을 북한체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독이 든 사과’로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남한의 제안에 아무리 긍정적인 내용이 있어도 북한은 송두리째 거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한국 정부는 북한을 흡수 통일할 의사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해 북한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조만간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만약 독일식 흡수통일 의지를 더욱 분명히 한다면 남북한 관계는 이명박 정부 시기처럼 다시 냉전적 대결과 반목의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최악의 경우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남북대화가 실종되고 다시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같은 군사적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내부적으로는 북한 급변사태 시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통일의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수립하더라도 대외적으로는 ‘북한 당국과의 대화와 협력의 확대를 통해 통일을 실현하려고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천명할 필요가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 정부가 내미는 ‘사과’를 받아먹게 하려면 그 ‘사과’가 북한에게 먹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탐이 나는 사과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는 북한이 갈망하는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북한이 보기에는 드레스덴 제안이 아주 먹고 싶은 탐이 나는 ‘사과’가 아닌 것이다.
 
북한은 지난 4월 1일 로동신문을 통해 "남조선 집권자가 ‘경제난’이니 뭐니 하고 우리를 마구 비방한 것은 동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우롱이고 모독이다.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인데 우리에 대해 몰라도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이 놀랍기 그지없다"고 박 대통령에 대해 비난했다. 이 같은 비난은 북한의 경제사정이 상대적으로 호전되고 있는 상황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2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및 2013년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도 불구하고 2013년 식량 사정은 더욱 호전되었고 물가도 현재 전례 없는 안정성을 보이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14년 양곡연도에 북한이 자체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곡물은 503만 톤(정곡 기준)으로 최소 소요량 537만 톤 대비 34만 톤 부족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정도 부족량이면 통상적인 곡물 수입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통해 수급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현재 한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과거보다 훨씬 더 적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조치 해제’ 카드를 제시해야 박 대통령이 3대 제안 중 가장 먼저 언급한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도 가능할 것이다.
 
지난 3월 28일 박 대통령이 ‘3대 제안’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제안했을 때 북한은 크게 실망했을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은 서울과 평양 사무소를 통한 낮은 수준의 실무적인 대화가 아니라 남북 간의 고위급 접촉과 회담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북한 간에 교류협력사무소가 설치되면 그렇지 않은 상황보다는 낫겠지만 그것을 통해 정치적 신뢰 구축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그리고 정치적 신뢰구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군사적 신뢰구축과 북핵 폐기로 나아가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현재는 북한이 박 대통령에 대해 감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의 막말을 해댈 정도로 격앙되어 있는 상태이고, 한국 정부도 북한의 막말로 감정이 매우 상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호 일정 기간의 냉각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4월 중순이면 한미연합군사훈련이 끝나므로 한국 정부는 4월 하순이나 5월 초에 이산가족문제와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남북고위급접촉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접촉이 성사되면 그 자리에서 드레스덴에서의 ‘3대 제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독재적 지도자일지라도 그를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은 원하는 결과를 거둘 수 없다. 북한과의 대화의 방법으로는 ‘남북교류협력사무소’와 같은 낮은 수준의 실무적 대화 차원을 넘어서는 고위급 접촉과 특사파견, 총리회담, 정상회담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의 김정일에 대해 카리스마가 부족하다거나 군부가 김정일을 얼굴마담으로 해서 통치하고 있다는 등 김정일에 대한 과소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일의 리더십과 영향력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은 한국이 북한의 현재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 대해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기초해 적실성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유용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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