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연방 상원의장 마트비엔코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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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연방 상원의장 마트비엔코는 누구일까?
  • 김세인 모스크바뉴스프레스 기자
  • 승인 2013.04.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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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있었던 러시아 언론사 공동 설문조사에 의하면 마트비엔코(발렌티나 이바노브나 마트비엔코) 상원의장이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으로 뽑혔다. 사실 마트비엔코는 작년에 있었던 동일한 조사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여성으로 선출되었고, 올해의 이 같은 결과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놀라운 결과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마트비엔코는 알려진 바와 같이 페테르부르그에서 생활해왔고, 정치적으로 성장해온 이른바 푸틴의 페테르부르그사단의 일원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면 그는 어디서 태어났고 살아왔으며 어떻게 해서 정치인이 되었을까? 마트비엔코는 1949년 4월 7일 생으로 우크라이나의 쉐페토브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다. 두명의 자매가 있고 아버지는 그가 쉬꼴라 2학년때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66년 쉬꼴라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1972년에 레닌그라드스키 화학-약제대학을 졸업하였다. 그리고 대학 5학년 때 남편 블라디미르 마트비엔코와 결혼하였다. 1985년 구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소속 사회과학 아카데미를 마쳤고, 1991년에는 구소련 외무성산하 외교아카데미에서 외교업무지도자 과정을 수료했다. 마트비엔코가 구사 가능한 언어는 러시아어 외에 영어, 독일어, 우크라이나어, 그리스어가 있다. 정치분야의 경력으로는 1972년 이후 소련공산당의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위원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지역공산당 지도자로 성장한다. 그리고 1986년-1989년까지는 레닌그라드 소비에트인민위원회에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으로 1989년-1991년까지는 소련의회에서 의원으로 여성과 아동관련 분야에서 활약했다. 1991년 이후에는 외무부에서 역량을 발휘하여 몰타공화국, 그리스 대사를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는 행정부 쪽으로 자리를 옮겨 러시아연방 행정위원회에서 부위원장으로 그리고 러시아 서북관구 대통령 전권대사로 근무하였다. 2003년 9월에 있었던 페테르부르그 주지사선거에 도전하여 당선되었고 그 후 주지사가 선출직에서 대통령에 의한 임명직으로 바뀐 후에도 푸틴에게 신임 받아 2011년 8월까지 주지사직을 수행하였다. 2011년 8월 22일에 갑작스럽게 러시아정부는 공식적으로 마트비엔코가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주지사직을 사임했고 정부는 이것을 받아들인다고 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 6월에 있었던 페테르부르그지역 지방의회 보궐선거에서 마트비엔코 측의 인사들이 95%가 넘는 득표율을 보여 선거 부정에 대해 많은 의혹과 시비가 있었다. 이로 인해 정치적 부담을 크게 느낀 크레믈린 측이 마트비엔코의 주지사직 사임에 대해 강한 압박을 가했다는 언론 발표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에 대해 그는 “러시아 역사상 이번 페테르부르그 지방의회 보궐선거에서 보다도 더 투명하고 깨끗한 선거는 있은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선거부정시비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마트비엔코가 주지사직을 사임하고 열흘도 채 안된 후에 8월 31일 신임 페테르부르그주지사인 폴다브첸코는 그녀를 러시아연방 상원의회에 페테르부르그의 몫의 상원의원으로 지명했다. 그리고 다시 한 달 정도가 지난 9월 21에 러시아상원은 전체회의를 개최하여 마트비엔코를 러시아연방 상원의장으로 선출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러시아연방 최초의 여성 상원의장이 되었다. 그녀의 가족사항으로는 현재는 페테르부르그 근교에 거주하며 심각한 장애로 인해 바깥출입이 힘든 남편과 은행에 근무하는 백만장자 아들, 성악을 하는 며느리와 손자 한 명이 있다.

마트비엔코의 임기동안 페테르부르그는 경제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 사실이다. 시예산은 몇 배로 증가했고,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중소기업의 수가 41%가 늘었다, 그리고 도시의 주요 산업기반인 관광사업의 발전을 위해 각종 박물관과 도시에 산재한 제정러시아 시대의 건축물들을 보수하고 도시현대화를 정력적으로 추진하여 몇 년 사이에 도시가 현대적 관광도시로 개조되었다. 유네스코는 그의 임기 때에 페테르부르그를 세계문화유적으로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경제적 성과는 상당했으나 도시곳곳에서 영업 중이던 구멍가게형 업소들이 수백개 문을 닫았고, 일반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형 재래시장들도 철거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현대식 백화점들이 차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급속히 추진한 도시현대화는 페테르부르그에 산재해 있던 각종 유적들에도 운명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철거당하고, 그 자리를 오피스건물 혹은 백화점 이용객을 위한 주차장이 차지하게 되었다고 비판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도시 재정비와 개발과정에서 건설업자들과 유착해 막대한 재산을 형성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주거환경 악화에 대해서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재임기간동안 도시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의 공원면적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고, 환경보호용 녹색지대도 많이 축소되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한 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도시 주민의 약 3분의 1 이 환경적으로 열악한 주거조건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보건 관계자는 환경적 요인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페테르부르그 주민의 발병률이 러시아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오늘의 마트비엔코가 있기까지 푸틴대통령과의 깊은 인연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푸틴대통령은 페테르부르크 주지사 재임 시에 마트비엔코와 연관이 있다고 주장되는 각종 비리의혹 그리고 선거 부정의혹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 모스크바로 끌어올려 러시아 권력서열 3위인 연방상원의장이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그렇다면 푸틴과 마트비엔코의 인연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둘이 처음 만난 것은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99년 푸틴이 옐친 대통령에게 발탁되어 총리직을 수행하기 시작할 때였다고 한다. 이때 마트비엔코는 이미 행정부 내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임 총리로 부임한 페테르부르그 동향출신의 신출내기 정치인 푸틴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 업무능력을 발휘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미래의 대통령인 신임총리 푸틴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에 푸틴은 모스크바 정치권 쪽에 별다른 동조세력이 없었다. 반면에 마트비엔코는 이때 이미 과거 공산당과 외무부, 행정부내에 풍부한 업무경험과 상당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정치문외한 푸틴에게 마트비엔코라는 여성은 매우 필요한 존재였고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 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푸틴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어느 정도 정권이 안정되어 가자 자신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 도시인 페테르부르그에서 자파세력의 공고화를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푸틴은 마트비엔코가 페테르부르그에서 주지사로 출마하도록 했고 주지사 당선을 도왔다. 그리고 마트비엔코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로 인해서 그녀가 페테르부르크주지사직을 사임한 후에도 모스크바로 불러주어 연방상원의장으로까지 중용하게 된다.

현재까지 정치적인 공동운명체로서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이상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 푸틴과 마트비엔코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러시아를 함께 이끌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정치적인 공과를 떠나서 마트비엔코가 러시아 중앙정치무대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활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활동들이 러시아의 사회발전에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기여하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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