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민족주의 심화, 갈등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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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민족주의 심화, 갈등 해법은?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09.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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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정치적 이용, 이제 그만… NGO 역할 더욱 중요해져"

미-중국이라는 두 개의 큰 지각판이 충돌하는 구조 위에,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 간 해양영토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향후 '동아시아공동체'라는 이상은 실현 가능할까?

▲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 해결책으로 '국제관계 수준'(International level)과 '국가내부 수준'(State-level)로 구분해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며, 특히 국가내부 수준에서 NGO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원장 김형기)이 지난 18일 평화재단 강당에 주최한 '흔들리는 동아시아, 민족주의를 극복할 해법은 없는가'란 주제의 포럼에서 동아시아 민족주의 심화로 인한 갈등 증가는 △냉전 이후 국제체제 변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리즘 확산 △중국의 부상 및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 △지역경제의 발전 △지역 국가들의 다양한 국내정치적 이해관계 등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며,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에 따르면, 갈등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써 먼저 국제관계 수준에서는 기존 동아시아 역내에 형성된 APT(ASEAN+3), EAS(동아시아정상회의) 등과 같은 다자기구들을 통해 국제적인 제도와 기준을 확립하고, 참여국가들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내부 수준에서는 무엇보다 민족주의 이슈를 정권의 정통성을 부여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제고하려는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국가 간 긴장 또는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들을 경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견제 역할을 하는 NGO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연구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사례로 들며, "국민의 83.6%가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지지했지만, 국정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민족주의를 이용하는 포퓰리즘은 (정치적) 효과가 미미하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각국 정부가 국가 간 분쟁이나 이슈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는 것과 민족주의적 이슈들을 정권의 정통성이나 지지율 제고에 사용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시도가 크게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각국 정치지도자들에게 분명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원장 김형기)은 지난 18일 평화재단 3층 강당에서 '흔들리는 동아시아, 민족주의를 극복할 방법은 없는가'라는 주제로 제55차 전문가포럼을 개최했다.

"조정자로서 미국 역할, 여전히 중요하다"
"동북아 영토분쟁, 전후처리 미완결 때문"

▲ 김성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면, 김성철 세종연구소 국제정치경제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 간의 갈등해법으로 미국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즉 갈등 당사국들이 자제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

김 수석연구위원은 미-중 간의 패권전쟁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자국의 경제회복을 위해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가능성이 높고, 미-중-일 간에 경제와 안보의 복합적인 상호의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미-중 간의 전략대화와 정상회담이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그는 "동북아의 영토분쟁은 일본제국이 19세기 말 성장했다가 20세기 중반 패망하면서 발생한 역사적 상황으로, 전쟁의 결과로 규정지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영토분쟁이 21세기 동북아에서 재발하는 원인은 태평양 전쟁 이후 전후처리가 미완결 상태로 남아 있었다는 것과 19세기 말~20세기 중반과 유사한 국제적 상황이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1895년과 1930년대 중-일 간 전쟁 과거사가 되새겨지면서 양국의 민족주의가 재확인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추세는 과거사와 민족주의를 넘어서 '자원에너지'를 위한 영토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족주의는 극복 대상?… 배타적 민족주의가 문제"

이날 포럼에서 토론자로 나선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모든 민족주의를 극복의 대상으로 인식하기 보다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맞서는 과정에서 태동한 '저항적 민족주의'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민족주의가 갖고 있는 긍정과 부정의 앙면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왼쪽), 조양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아시아태평양연구부 조교수.

조양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아시아태평양연구부 조교수는 "탈민족주의, 탈근대(포스트모던) 등을 논의하고 있지만, 한-중-일은 아직도 완전한 근대국가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으며 근대주의 가치를 여전히 지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대만 등과의 관계에 있어 중화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중국, 평화헌법 개정 등을 통해 이른바 '보통국가'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일본, 분단을 넘어 남북통일을 꿈꾸는 한국 등 각자 단일국가에 대한 지향이 강한 상황에서 유럽처럼 초국가적 공동체 실현은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김한권 연구위원이 제시한 국가 내부적 차원에서 의식 성숙과 세계시민주의의 상호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의견을 같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