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문제, 범동아시아 소수자 차원서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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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문제, 범동아시아 소수자 차원서 접근"
  • 고영민 기자
  • 승인 2012.08.1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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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인권문제·시민사회 성숙 방안 함께 논의해야"
▲ 이성시 와세다대학 문화학술원 교수

재일동포 문제해결을 포함해 한·일관계의 발전적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있어 필요한 것은 양국의 공통적인 인권문제와 시민사회 성숙 방안을 범동아시아 차원에서 함께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성시(사진) 와세다대학 문화학술원 교수는 지난 10일 오전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역사 영상 심포지엄'에서 「재일동포의 삶을 통해 한일관계의 변화를 살피다-'작은오빠'를 단초로」라는 주제를 발표하며, "이주(移住)와 이산(離散)의 시대에는 우선 범동아시아 차원에서 정착 외국인 및 이민자 등 소수자 문제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1950년대 유년기를 보낸, 재일동포 당사자인 이 교수는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의 영화 '작은오빠'(1959년)에는 민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려져 있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서 재일동포는 다수 집단인 일본인과 구별하기 어려운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존재'였다"고 말하며 "전후 일본사회 속에서 재일조선인의 절대적인 빈곤과 더불어 민족차별은 경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고 분석했다.

▲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작품 '작은오빠'(にあんちゃん·1959)

이 교수에 따르면 전후 재일조선인은 식민지 시기의 연장선 상에서 살아가고 있었고, 이른바 2등 국민으로 규정돼 있었다. 식민시대 일본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이광수'처럼 결사적인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 적지 않았고, 이러한 노력은 해방 후에도 재일동포에게 계속됐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써 "자라면서 집 밖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 수록 집안에서 사용되는 말이 정확한 일본어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됐고, 이윽고 일본어에 대한 공포심과 집안에서 쓰는 말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지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프랑스 역사학자, '제라르 누아리엘'이 말한 "부모들의 문화는 저급한 것이며, 그것과 거리를 두려한다"는 경험이 기억 깊은 곳에 침전되어 있었고, 피아(彼我)의 차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 사회 규범에 필사적으로 따르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필사적 순응' 과정이 진행됐다고 분석했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역사박물관 1층 강당에서 동북아역사재단,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서울역사박물관이 주최하는 역사 영상 심포지엄, '격랑 속에 펼친 재일동포의 삶과 꿈'이 열렸다.

재일한국인·조선인의 법적 지위는 1970년대 크게 개선됐지만 본국, 한국에서는 한국인과는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취급받게 된다. 본국 사람들의 이러한 재일동포관은 외국인 노동자 등 한국 내의 또다른 이방인에 대한 차별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이러한 재일동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를 푸는 연결고리로 일본, 한국,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를 하나의 지역으로 해서 공통적인 문제를 찾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예컨대 동아시아 국가들은 외국에서 자국의 동포들이 당하는 수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지만 자국 내에 사는 외국인 마이너리티의 수난에 대해서는 매우 냉담하다"고 비판했다. 즉, 외국인 인권을 짓밟는다 해도 악영향이 없다고 보는 경향이 현저하다는 것.

이 교수는 재일동포를 통한 한일관계와 관련해 "양국의 공통적인 인권문제와 시민사회를 성숙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그 사회에 사는 소수민족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신뢰와 상호인정이 무엇보다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양국의 시민사회가 성숙된다면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