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시단> 남자 미용사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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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시단> 남자 미용사 J.
  • 김은자
  • 승인 2011.12.1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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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미용사 J.

                                                                        김은자/ 미국, 제7회 재외동포문학상 대상

남자 미용사 J는 한국에 살 적 강력계 형사였다고 한다 강도들의 손에 수갑을 채웠던 손이 여자들의 윤기 있는 머리를 쓰다듬을 때면 거울에 비추인 모습 때문일까 힘차게 가위를 빼어들어 사각 사각 세월을 잘라 내기 시작한다 잘려나간 머리칼 길고 가는 빗자루로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털어 버리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일, 손님의 머리에 염색을 하며 호주머니 깊숙이 그리다 만 그림을 꺼내 본다 답동 신작로 한복판에서 강도를 잡아 냅다 메어치고, 잽싸게 범인을 타고 앉아 지지 밟았던 시절 우두둑 우두둑 누구의 뼈가 부러져도 통쾌하기만 했던 밤 하늘, 그날 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는 힘을 다해 걷어찬 축구공이 십 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검은 머리의 여인에게는 깊은 강 건널 금빛 돌다리 놓아주고 금발머리 아가씨의 머리에는 칠흑 같은 어둠 선사하는 남자 미용사J. ‘언니! 눈빛만 고치는 데 십 년이 걸렸어요’ 미국지도처럼 꼬불꼬불한 자신의 머리에 샛노란 물감을 들이다 길을 잃어버린 양 손님 머리에 희끗희끗 브리지를 놓는다 촛불처럼 그리운 얼굴들 세찬 물줄기로 씻어내고 떠내려가는 촛농 속 뽀얀 아메리칸 드림 피어나면 다시 힘차게 가위를 빼어 든다 ‘언니! 너무 멋져요’ 또 하나의 환상이 만들어진다 거울 속 사람들 웃다가 사라지면 슬그머니 가게 뒷방으로 들어가 둥둥둥둥 기타 치며 세월 부르는 남자 미용사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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