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방의원 최준희! 한인 커뮤니티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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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연방의원 최준희! 한인 커뮤니티 몫이다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1.05.0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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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한인유권자센터 소장)

김동석 소장
2006년 1월, 뉴저지주 두번째 광역도시 에디슨시에 한인시장이 취임했다. 12년 동안 시장 직을 독점해 온 민주당의 거물 ‘조지 스파도로(George Spadoro)’를 꺾은 것은 36세의 1.5세 한인 정치인 최준희(Jun Choi) 시장이었다.

아시안계 정치인으로 인종차별이라는 이슈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최준희는 전국의 아시안계 인권활동가들을 선거판에 끌어들였다. 이어 장기집권 세력의 부패와 무능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까지 선거판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 소속이지만 당내에선 소수에 불과했던 그는 그야말로 에디슨시의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으며 시장에 취임했다. 2009년 1월 변화와 희망을 슬로건으로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전국의 70명의 시장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에 7번째로 최준희 시장을 명단에 올렸다.

최준희 시장은 일찌감치 선출직 정치인으로의 꿈을 꾸면서 2000년도 20대의 나이에 ‘빌 브래들리’ 캠프에 뛰어 들었다. 그때부터 ‘빌 브래들리’는 최준희의 정치 스승이다. 2005년 시장선거 때엔 ‘빌 브래들리’가 발 벗고 나서서 최준희의 선거를 도왔다. 당시 초선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최준희의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것이 2005년 9월이었다.

대중적인 지지를 얻어 시장에 당선된 최준희는 부담 없이 개혁의 칼을 들었다. 만 2년 동안의 경찰노조의 협박과 회유에 아랑곳하지 않고 결국엔 비대해진 경찰조직을 절반으로 감축 했으며 자격 없는 공립학교 교사들을 정리해서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개발사업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 최악의 시 예산을 정상화 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당 권력의 기득권을 봉쇄했다.

당연히 개혁을 가로막는 구세력들이 똘똘 뭉쳤다. 2009년 재선시장에 도전 할 때에 당권파들로 부터의 야합제안이 이어졌지만 최준희는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고 그해 6월, 재선을 위한 예비선거전에 실패했다. 지역신문에서 패자인 최준희를 ‘작게 지고 크게 이기는 최준희 시장’이라고 오히려 크게 보도했다.

2010년 중간선거전에서 처절하게 패한 민주당은 일찌감치 2012년 선거 전략을 짰다. 2012년 선거전의 전략지역을 선정했고 반드시 하원의원으로 당선시켜야 할 후보들을 50명 선정했다. 3월 초순부터 이들을 순서대로 워싱턴으로 불러 들였다. 최준희 시장이 첫 번째 4명 중의 한명으로 발탁이 되었다. ‘낸시 펠로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최준희에게 뉴저지주 제7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권유했다.


4월 29일 미국내 거의 유일한 한인정치참여 풀뿌리 운동단체인 한인유권자센타의 창립 15주년 행사의 초청연사로 참석한 최준희씨는 행사 직전 특별기자회견을 갖고서 2012년 연방하원 선거전에 뉴저지주 제 7지역구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한인2세의 연방의원 도전은 역사상 처음의 일이다. 1990년대 캘리포니아의 김창준 의원은 1세로서의 의원이었지만 이번 최준희의 도전은 스스로 주류정치권에서 훈련받고 도전하는 가장 모범적인 첫 사례가 된다.

하원진입이 성공하면 동부지역에서 아시안계로는 최초의 연방의원이다. 한인인구의 3배가 되는 중국계에 앞서서 연방하원에 한국인이 먼저 진입을 하는 셈이다.

미국의 연방하원의 평균 지역구 인구는 약 70만 명이다. 소수계 활동가들 사이에선 ‘연방의회에 한명이 있으면 90점이고 한명이 없으면 0점이다’란 말이 있다. 한명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535명의 연방의원 중에서 한명의 동료의원의 요청을 거부할 의원은 한명도 없다는 것이 워싱턴 의회의 불문율이다. 한명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다.

한인 연방의원이 눈앞에 와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한인커뮤니티의 몫이다. 2008년 베트남계가 해 낸 것을 우리가 못 하겠는가? 필자는 아시안커커스 의장에게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이제부터 관건(Key)은 한인커뮤니티의 모금이다. 분단국가 출신의 한국인들에겐 더구나 연방의회 이슈가 많다. 아시안 커커스 의장인 ‘마이크 혼다’의원이 모금이 순서라고 말했을 때에 필자는 그것을 무조건 문제없다고 했다.

2008년, 루이지애나에서 베트남계의 ‘조 카오(Joseph Cao)'씨가 공화당 후보로 연방하원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전국의 베트남 출신 이민자들이 흥분했다. 그들은 자국계가 연방의원이 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을 펼쳐서 5개월 만에 2백여만 달러를 모았다. 그러한 지원에 힘입어서 ’조 카오‘는 공화당 후보가 되었고 11월 선거에서 연방하원에 당선되었다. 현재 아시안계 연방의원은 10명이다. 상원이 2명, 하원이 8명인데 일본계는 5명이고 중국계가 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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