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금 손대는 외교관이 여태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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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금 손대는 외교관이 여태 있다니
  • 조선일보
  • 승인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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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03-12-20 (오피니언/인물) 사설 35면 40판 882자    
  
    
일선 외교관들이 내부 통신망을 통해 고발한 우리 공관장과 고참 외교관들의 행태는 입에 담기에도 창피스럽고 부끄럽다.
직원 이름으로 출장비를 받아 딸과 함께 여행한 공관장, 친구들과 저녁·술 먹은 것을 법인카드로 계산하는 상사를 보고 부하 직원들도 작당해 공금으로 밥을 먹었다는 이야기, 출장비 늘려 받기, 관저 만찬 때 사람수를 늘려 몇백달러를 챙긴 ‘밥장사’까지,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나서는 외교관들이 정말 이런 일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홍콩 총영사관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비자 장사를 하다 엊그제 검찰에 구속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이번에 드러난 외교관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구조적인 문제다.
일부 젊은 직원들이 이 같은 치부(恥部)를 공개하자, 외교부 내에서 “뭐 그런 것까지” 하는 반응이 다수였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머리로는 이런 ‘예산 도둑질’이 공직자의 금기(禁忌) 사항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이것도 ‘관행’이라고 그길을 그대로 밟아 왔다는 이야기다.
외교부 내에 이런 풍토가 자리잡게 된 가장 큰 이유로는 우리 외교관들의 ‘순수 혈통주의’를 꼽을 수 있다.
외무고시 등 시험을 통해 선발된 외교관들은 지금껏 외부의 감시가 없는 상황 속에서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쳐놓고 어지간한 잘못은 서로 눈감아주는 게 마치 미덕이나 동료애나 된 것처럼 똬리를 튼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교부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일을 외교부 손에만 맡겨놓을 수 없는 만큼 감사원과 총리실 등이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외교관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다.
외교관들이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자신들부터 외교관의 명예와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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