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우리를 ‘진짜 한국인’으로 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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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우리를 ‘진짜 한국인’으로 보지 않아요”
  • 정리=이종환 기자
  • 승인 2009.11.2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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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 보도] 입양아들의 정체성 고민


미국으로 주목받을 만한 수의 입양아를 보낸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1953년부터 2007년까지 16만명이 해외로 입양갔다. 그중 상당수가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들 입양아들은 자신이 한국계임을 알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그들의 정체성 고민을 뉴욕타임즈가 취재했다. 11월 9일자 보도를 요약해 소개한다.


지난 7월 해외입양동포 40명이 해외입양인연대 주최로 열린 ‘2009 First Trip Home’행사를 통해 ‘뿌리 찾기’ 모국방문에 나섰다.
김은미씨는 어릴 때 남들과 달라보이는 것을 싫어했다. 1961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돼온 그녀는 양아버지가 한국 장난감과 사진집과 기념품을 집으로 가져왔을 때 쳐다보지도 않았다.

군부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조지아와 캔사스, 하와이로 집을 옮겨가면서 성장했던 그녀는 주변에 아시아계가 있었지만 백인 아이들과만 사귀었다.

올해 48세. 지금 샌앤토니오에 살고 있는 그녀의 미국성은 영(Young)이다. 그녀는 “내가 백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고 말했다.

그녀가 한국인 혈통임을 찾기 시작한 것은 30대가 되어서였다. 어느날 저녁, 남편과 함께 기념식에 나갔다가 그녀는 감정에 북받쳐 한껏 울었다.

“앉아서 생각했어요. 나를 낳은 엄마는 어디 있나? 왜 나를 버렸나? 왜 나를 지키려고 애쓰지 않았나.”

이렇게 말하는 그녀는 “그때가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여행의 시작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입양돼온 아이들이 대부분 김은미씨와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게 최근 발표된 한 대규모 인종간(트랜스레이셜) 입양 연구기관의 조사결과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첫세대에 초점을 맞춘 이 보고서는 응답자 78%가 자신들이 어렸을 때 스스로 백인이라고 여겼거나 백인이 되고 싶어 했다고 밝혔다.

60%는 그들이 중학교 때부터 인종정체성이 중요해졌다고 밝혔고, 61%는 어른이 되어서 친부모를 찾거나 한국문화를 알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고 답했다.

김은미씨처럼 한국에서 입양된 아이들 대부분이 주로 백인 이웃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자기와 닮은 사람을 거의 보지 못한 채 성장했다.

이들은 종종 학교 선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거나 인종차별을 겪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민족그룹 사람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고 답한 사람은 아주 소수였다.

결론적으로 대부분이 인종적 민족적 정체성과 관련해 혼란을 겪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를 낸 곳은 에반스 도날드슨 입양연구소. 뉴욕에 있는 비영리 입양 조사 및 정책 연구단체다.

1953년 이래 미국에는 50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입양됐다. 대부분은 아시아와 남미의 고아원에서 왔으며, 최근에는 아프리카로부터도 입양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입양이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간헐적으로 이뤄졌을 뿐이다.

미국으로 주목할 만한 수의 아이들이 입양된 나라로는 한국이 처음이다. 1953년에서 2007년까지 16만명으로 추정되는 어린이들이 남한에서 외국으로 입양돼 갔다. 그중 대다수가 미국으로 입양됐다. 이들은 미국에서 인종간 피입양자의 가장 큰 그룹을 이룬다. 그리고 이들은 미국에 있는 한국계 인구의 10%를 차지한다는 추정도 있다.

헤이디 바이츠만(여)씨는 태어난 지 7개월 되었을 때 입양돼 세인트폴에서 자랐다. 주변에는 여러 민족으로 된 이웃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한국인 자녀를 입양한 다른 부모들과도 어울렸으며, 딸이 원한다면 한국 전통을 알 수 있도록 문화캠프에 보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나는 가기 싫었다”고 말하는 바이츠만씨는 지금 세인트폴에서 심리건강치료사로 일하고 있다.

“나는 한국인으로 비치게 하는 어떤 것도 원치 않았다. 금빛 혹은 갈색 머리 사람들한테 둘러싸인 채 나는 마냥 백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한국계라는 것을 받아들인 것은 대학을 마치고 뉴욕으로 옮겼을 때였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는 것은 긴 여정이었어요. 지금도 그 여정에 있지만….”

바이츠만씨의 여정은 179명의 응답자 가운데 전형적이다.

유럽계 부모에게 입양된 사람들 대부분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혹은 어른이 되어서 다른 민족들이 모여사는 이웃들을 가졌을 때 비로소 자신이 한국계라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 고민하는 것은 우리가 양부모에게 감사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우리가 이상해서가 아니지요.”

이렇게 말하는 발렌틴씨는 올해 35세로, 포트 로드레일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 3살 되던 1977년 백인부모에게 입양돼 앨라배마 텍사스 캘리포니아로 이사하며 살았다.

제니퍼 타운(33)씨도 동의한다.

“입양된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들한테 이 문제를 상의하는 것을 꺼려요. 부모들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게 자신들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타운씨는 1979년 입양돼 미네소타의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그는 대학 때 한국으로 가서 자신의 과거를 찾겠다고 선언했을 때 부모가 삐친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발렌틴씨도 그가 한국으로 여행하겠다고 밝혔을 때 부모들의 반응이 비슷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을 찾아도 가슴아픈 경험을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이들은 말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들을 ‘진짜 한국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한국말과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밸렌틴씨는 한국의 외할머니를 찾아냈으나, 외할머니로부터 한국말을 모른다고 꾸중을 들었다.

“외할머니도 나를 입양 보내라고 한 사람이었지요. 그것을 알고 좀 껄끄러웠는데, 떠날 때 내게 계속 당부하더군요. 다음에 올때는 한국말을 좀 배우라고요.”

1977년 백인부모에게 입양돼 미네소타 클레리사에 살고 있는 소냐 윌슨씨의 경험도 비슷하다.

인구 600명의 마을에 유일한 아시아계로 살았던 그녀는 왜 아이들이 입양을 가야 했는지,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에 대해 더 많은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보고서는 이런 분야에 대해 연구가 부족해요”라는 게 윌슨씨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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