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성 조선족 중학교들의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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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성 조선족 중학교들의 ‘슬픈 현실’
  • 조남철
  • 승인 2009.09.07 12: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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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탐방 - 중국 길림성 조선족 중학교

   
   
훈춘 반석현 조선족중학교의 입구 전경(사진 위)과 시간표(사진 아래)
지난 8월초 중국 길림성의 여러 조선족 중학교를 돌아 볼 기회를 가졌다. 오래 전부터 중국 조선족 중학교들의 실태를 확인하고 싶었던 터라 다소 설레는 마음도 있었다.

마침 길림성 교육학원 민족교연부(소수민족의 교육을 관리하는 정부 기구)의 이동호 주임이 같이 가겠다고 선뜻 나서 주었다.

며칠간 길림성내의 장춘 조선족 중학교(이하 조중), 길림조중, 매하구조중, 유하조중, 통화시조중, 통화현조중, 훈춘의 반석현조중 등을 돌아 보았다.

장춘이나 길림의 큰 학교들은 그런대로 학교시설이 괜찮았고, 학생수도 적지 않았다.

장춘조중의 경우 학생 1천700 여명, 교사 180명 정도, 길림조중도 학생 1천500 여명에 교사는 160명 정도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학교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통화시에서 차로 20여분 걸리는 통화현 조선족 중학교를 찾았을 때는 정말 놀랐다. 도서관에 우리말 책이 한권도 없었던 것이다. 40대 중반의 이 학교 교장선생은 처음 내가 학교도서관을 보고 싶다고 했을 때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결국 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도서관으로 안내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실내에는 거미줄도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서가에는 몇 권의 책이 꽂혀 있었으나 모두 중국어로 된 책이었다. 갑자기 슬픔이랄까 분노랄까,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려 들었다. 도대체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지난 5년 사이에 학생수가 3분의 1로 줄어 들었어요”

몇 년 전만해도 학생수가 300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120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 계속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고 부모가 그런대로 살만한 집의 아이들은 장춘이나 길림 같은 대도시 학교로 옮긴다는 설명이 더해졌다. 조선족 민족교육의 토대가 무너져 내리고 있는 현장이었다.

“저 같은 경우도 조선역사를 잘 몰라 알고 싶은데 읽을 책이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젊은 교사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알고 싶다는 욕망이 있고 학생들에게 잘 설명해주고도 싶지만 교사 자신이 잘 알지 못하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지요. 정말 한글로 된 도서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교장선생은 이러다가는 5년도 지나지 않아 오지의 조선족 중학교는 다 망할 거라고 걱정이 태산 같았다. 같이 간 일행 중의 누군가가 한 마디 거들었다. “우리집 서재만도 못하네.”

갑자기 누구에게인지 모를 분노와 슬픔, 부끄러움이 섞인 감정이 몰려 왔다.

훈춘의 반석현 중학교의 경우는 더 심했다. 방학 중이라 운동장에 잡초가 가득 자라 더 휑한 느낌을 가졌을 수도 있었지만 마치 폐허같은 분위기였다.

그나마 도서관도, 한글로 된 책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더 놀라운 일은 학생의 30%이상이 한족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대다수 조선족들이 도시로 이주하여 조선족 자체의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족 학생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같이 학교를 돌아 본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며 한국어를 제2 외국어로 배우려는 한족 학생들 덕분에 조선족 중학교가 유지되고 있는 형편이니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참 난감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오지 조선족 학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조선족 중학교들이 학교를 유지하기 위해 한족 학생들의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오늘날 조선족 중학교의 슬픈 현실이었다.

독서를 통해 많은 이들이 지식을 얻고 사유와 체험의 폭을 확대할 수 있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책은 지식의 폭을 깊고 넓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조선족 학생들이 학교수업 이외의 한글도서를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족 학생들에 비해 사회적 경쟁력이 뒤떨어진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민족으로서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그들을 그대로 버려 두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남철본지 편집위원장방통대 교수
한국에 돌아 와 오래 전부터 조선족 동포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까페(다음의 ‘연변풍경’)를 통해 책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벌써 10상자 이상의 책이 모였다. 모여지는 대로 오지의 조선족 중학교에 보낼 계획이다. 관심있는 분들의 동참을 기대한다. 얼마 있으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이다. 올 추석 조선족 동포 학생들에게 오래 동안 기억될 뜻깊은 추석선물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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