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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동포 성금으로 인하대 설립인하대학교 설립과정에서 하와이 동포의 기여 - 임학성
정리=최선미 기자  |  hynews81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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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9.05.22  12: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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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시장 안상수)와 인하대(총장 이본수)가 ‘2009 세계인의 날’을 기념해 공동으로 개최한 ‘인천 다문화 포럼 워크숍’ 첫날인 21일, ‘인하대학교 설립과정에서 하와이 동포의 기여’를 주제로 임학성(인하대 한국학연구소) 박사가 발제를 진행했다. 이를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인하대(전 인하공과대)는 1952년 하와이 동포 이주 50주년 기념사업을 바탕으로 뒤떨어진 우리나라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의 발의로 출범한다. 사진은 1954년 개교식 때 이 대통령이 교기를 수여하는 모습.  
 
인하대학교의 교명 ‘仁荷(인하)’는 ‘仁川’(인천)과 荷蛙伊(하와이, Hawaii의 한국식 한자 표기)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즉, 인하대학교와 이역만리 태평양 한 가운데의 섬 하와이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그 관계사의 첫 장을 연 것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노동이민을 떠난 하와이 이민자이다. 이후 1905년 4월까지 총 15번에 걸쳐 7천200여명이 하와이로 이주해 하와이 동포사회를 형성했다.

인하대학교 설립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하와이 동포 이민 50주년 기념’ 사업이다. 하와이 동포들은 이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이 성금을 모아 후원·육성한 ‘한인기독학원’의 땅과 건물을 매각한 15만 달러를 조국의 대학 설립기금으로 내놓겠다는 의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이에 1952년 12월 중순경 피난지 부산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김법린 문교부장관에게 M.I.T와 같은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을 설립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제반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함에 따라 인하대학교(인하공과대학)의 설립이 가시화된다.

이후 인하대학교의 설립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하와이 동포와 정부, 인천시, 국민 4자간의 보조와 협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953년 2월 8일 국무총리와 전 국무위원, 사회 각계의 대표가 참가해 ‘인하공과대학설립기성위원회’를 결성한 후, 대학 설립에 필요한 예산으로 3억 930만환(515만 500달러)을 편성한다.

그러나 1954년 6월 20일 조성된 기금은 하와이 동포의 성금(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 15만달러(당시 한화로 900만환 상당)와 정부의 국고보조금 6천만환, 국내의 민간기부금 등 총 9천674만여환이었다.

기금 조성이 편성 예산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까닭은 기대했던 외국기관(UNKRA, UNCAC, 한미협회 등)의 원조금(330만달러·1억 8천만환)이 전무했을 뿐 아니라, 전쟁 직후라 국내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민간기부금이 당초의 목표액에 크게 못 미쳤던 때문이다.

한편, 학교 설립의 부지는 용현동과 학익동에 걸쳐있는 시유지(市有地) 12만 5천여평의 토지를 1954년 2월 1일 인천시로부터 기증받았다.

이러한 각계의 보조와 협조에 힘입어 인하대학교의 전신 ‘인하공과대학’이 1954년 4월 24일에 제1회 신입생 입학식을 거행함으로써 정식 개교한다.

이처럼 인하대학교 설립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 설립 의의가 ‘하와이 이민과 민족운동의 계승’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공과대학’과 ‘인천’으로 결정된 배경으로는 첫째 1950년대 공업을 통한 자립경제의 건설이라는 국가정책에 대한 교육적 대처방향으로서 공과대학 설립의 필요성, 둘째 공업입국을 실현시킬 배후지로서의 경인공업단지의 존재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하와이 이주민이 출항한 항구가 인천에 있었다는 명분도 공과대학의 인천 입지에 주요 배경이 되었던 것 같다.

항간에는 하와이 이민 동포가 자신들의 출항지인 인천에 대학을 설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설도 있으나, 이에 대한 사실 여부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인하대학교 설립 과정에서 하와이 동포의 기여는 ‘15만달러’라는 물질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면도 이에 못지않다 하겠다. 하와이 동포들은 노동으로 어려운 생계를 유지하였지만, 먹고 남은 것을 모아 독립을 위한 민족운동의 자금으로 제공했고 이러한 정신이 인하대학교 설립의 씨앗이 됐던 것이다.

인하대학교 설립의 종자돈 15만달러가 실제 인하대에 ‘정착’한 것은 1973년 10월 30일 ‘하와이교포 기념관’을 준공했을 때이다.

인하대는 처음 이 기금으로 하와이 이민을 영원히 기념할 ‘과학관(Science Hall)’을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본관 건물의 신축공사가 4·19혁명이 일어나 중단되자 미진한 본관 정면부분을 건축하는데 충당하여 ‘하와이교포기념관(Hawaaii Hall)’로 이름 붙이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 계획은 하와이 측에서도 적극 환영받았으나 5·16군사쿠데타로 수포로 돌아갔고, 이후 인하학원의 재단으로 영입된(1968년 8월) 한진그룹의 지원금을 충당하면서 실내체육관으로 사용계획을 변경하고 1972년 6월 착공했던 것이다.

종자돈 15만달러의 인계절차가 우여곡절을 겪는 속에서도 하와이 동포의 물질적 기여는 장학금 기증으로 이어졌다.

1953년 11월 15일 하와이에서 열린 이민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함태영 부통령이 “인하대학을 중심으로 하와이 한인이민역사와 한국 사이를 영원히 기념하자”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뜻임을 알렸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54년 5월 11일 ‘재하와이 인하대학후원회’를 발족해 장학사업이 시작됐다.

1989년 2월 인하대학교는 하와이대와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학교 설립 후 35년 만에 인하대학교 탄생의 역사적 정신적 근원이라 할 수 있는 하와이와 교류를 맺게 된 것이다.

2004년 7월에는 개교 50주년 축하행사로 하와이대 야구부가 주축이 된 미국대학선발팀이 인하대를 방문해 야구부와 친선경기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편, 하와이 동포의 인하대 방문도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 이 모든 일은 ‘仁荷(인하)’(‘仁’+‘荷’)라는 융합적 요소가 영원히 존재하는 이유 때문이겠다.

물론 지금까지 인하대는 하와이 동포의 정신적 물질적 기여를 받아온 바가 크다. 어찌 보면 인하대의 구성원(재단, 교직원, 재학생, 동문)은 하와이 동포사회의 구성원에게 갚아야할 큰 짐을 지고 있는 셈이라 하겠다.<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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