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바이 코리안 운동’에 적극 참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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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바이 코리안 운동’에 적극 참여하겠다”
  • 이종환 기자
  • 승인 2009.05.22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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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 한미동포재단 이사장
▲ 김영태 한미동포재단 이사장
‘내 모자를 찾아서(Finding My Hat)’는 시카고에서 가발가게를 하는 부모를 따라 이사를 다니다 결국 암으로 어머니를 잃는 가족사를 그린 존 선(John Son)의 소설이다. 작가는 한인 2세.

이처럼 가발가게는 우리 미주한인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애환의 상징이다.

“하지만 우리 미주 동포들은 이를 통해서 시드머니(종자돈)를 만들었어요. 이후 세탁소나 수퍼마켓, 주유소 등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 초기자본을 축적한 것이지요”

18일 서울 강남구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만난 김영태 LA 한미동포재단 이사장의 말이다. 그 역시 가발가게에서 출발해 지금 미주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의 한 사람으로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 가발 장사를 한 친구 가게를 갔어요. 한국서 5달러에 가져와서 50달러에 팔더군요”

자신의 한달 봉급을 하루에 벌더라는 것이다.

“당장 가발가게를 시작했지요. 가발 장사 붐이 5년쯤 불었어요. 많은 한국 사람들이 가발을 팔았습니다. 가발 사업 분야에 있어서는 유태인들도 우리를 못따라 왔어요”

그는 가발가게로 축적한 시드머니로 부동산업에 진출했다. 그리고 규모를 차츰 키워서 지금은 LA에서 라마다인호텔, 퀄리티인호텔, 이스트웨스트호텔 등 호텔들과 투자회사를 경영하는 중견기업인으로 뿌리내렸다.

“미국 유학 국가고시를 패스하고 여권 12군데 도장을 어렵게 받아 미국에 건너왔어요. 당시 LA에는 우리 동포들이 불과 700명 정도였어요”

그 해는 나중에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이 ‘미국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라는 유명한 칼럼을 다이제스트지에 기고한 1967년이었다. LA일대 한인이 120만으로 추정되는 지금에 비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김회장은 LA 한인사회와 함께 성장한 ‘엘리트이민’ 1세대 인물이다. 지금 올림피카 한인타운의 중심이 되는 그곳에 이희덕씨가 콩나물과 김치를 파는 ‘올림픽마켓’을 열었을 때의 일도 어제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는 92년 임기 2년의 제21대 LA한인회 회장을 맡았다. 이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이 LA를 방문했을 때 한인회장으로 YS를 맞는 ‘행운’도 가졌다.

그가 한인 커뮤니티 센터 건립을 다짐한 것은 이때였다고 한다. “역대 한인회장들이 이 센터를 짓자고 공약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던 거지요”

결국 이 센터는 그와 이용태, 하기환씨의 처녀 출자로 3년전 시작해, 이제야 공사가 진행중이다.

“우리 세 사람이 5만불씩 돈을 내고 LA 시정부에 로비를 시작했습니다. 한인타운 안에 있는 아드모아 공원 옆 공터에 노인복지회관을 짓겠다, 허락해달라고 해서 승락을 받았지요”

고맙게도 LA 시정부에서 매월 1달러의 임대료로 99년간 임대해줬다고 한다. 총 예산 규모는 250만달러. 이미 130만달러는 모금운동을 통해 모았다. LA시와 동포재단도 출연하기로 해서 이미 돈 문제는 해결이 다 됐다는 게 김회장의 얘기다.

“LA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보내준 30만달러와 현지 동포들이 모금해 모두 40만달러로 세웠던 한인회관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이제 미주 한인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커뮤니티 센터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한꺼번에 4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도 들어서지요”

출발은 노인복지센터로 했으나 이를 한인커뮤니티센터로 바꿀 것이라는 게 김회장의 얘기다.

“미주 동포들의 경제규모도 커졌습니다. 자산가도 많이 나왔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인들도 많이 나왔지요. 이들의 힘을 모아서 이에 걸맞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그는 우리 시민운동단체들이 해외 한인단체들과 손잡고 벌이는 ‘한민족 바이코리안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입니다. 재외동포라고 해서 조국의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지요”

그는 특히 최근 개성공단을 둘러싼 남북간 긴장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우리 동포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을 잘 모르는 것같아요. 통일 정책이 없는 것으로 아는 사람도 많아요” 이렇게 말하는 그는 MB정부의 통일정책은 ‘상생과 공영’이라고 말한다.

“상생하고 공영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조공’이나 ‘퍼주기’를 할 게 아니라 북한을 변화시켜야 하는 거지요”

그는 이를 위해 미국 동포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힘을 모아서 미국 주류사회를 움직이고, 이를 통해 북한이 개방의 길을 걷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입장은 지난 대선 때 그가 MB연대 LA 대표를 맡아 활동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를 아는 분이 대통령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MB 선거운동을 한 것이지 다른 뜻이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나면서 그는 말한다.

“과거 한국이 돈이 없을 때 우리 동포들도 미국에서 험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한국이 이처럼 잘 살고, 우리도 미국에서 자리잡고 있으니 자랑스럽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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