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에 숨어있는 문화 읽어야 좋은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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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에 숨어있는 문화 읽어야 좋은 지휘자”
  • 이석호 기자
  • 승인 2009.02.09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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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철 볼고그라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최고의 걸작”

▲ 노태철(볼고그라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우리의 ‘한(恨)’과 굴곡을 모르는 외국지휘자가 마치 ‘아리랑’을 지휘하자고 덤비던 것 같았죠”
지휘자하면 카라얀이나 게오르그 솔티 아니면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같은 ‘카리스마’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노태철(48) 볼고그라드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의 첫 도전은 이런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가 헝가리 오케스트라에서 헝가리안 댄스(브람스 작곡)를 처음 지휘할 때, 연주자들은 동양인인 그를 보고 코웃음 쳤다. “어떻게 우리 음악을 알 것이냐”는 반응이었다.

실제 음악은 엉망이었다. 그의 리더십도 바닥을 드러냈다. 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나 오스트리아 브루크너 음악원에서 쌓은 음악 이론도 통하지 않았다.

동양인 처음으로 오스트리아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비엔나 왈츠 오케스트라와 프라하 모짜르트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역임한 그지만, 지휘자로서의 시작은 이렇게 참혹했다. 부산·서울·광주 등 13차례 국내 연주회를 마친 그를 지난달 31일 만나 클래식 본토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먼저 단원들이 내는 소리를 들어야한다, 하나도 놓치지 말고 듣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소리를 모아 다음 소리를 이끌어가자고 했지요”

그가 말하는 ‘성공의 비결’이다. 그러자 단원들의 음악이 들리기 시작했다.
“헝가리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자신들만의 음율을 몸속으로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고유의 꺾임과 두꺼운 음색은 악보에 나오지 않았던 거죠”

그가 단원들을 대하는 방식도 180도 달라졌다.
그는 단원들을 이해하기 위해 작곡가들이 살았던 길을 똑같이 걸어보고, 현지인들의 삶에 파고 들었다.

“비엔나 음악은 사랑하는 연인을 안는 것 같으며, 초코렛을 먹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러시아 음악은 살을 에는 추위, 가난과 수많은 전쟁의 역사가 담겨있고, 헝가리 음악은 겸손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악보라도 다른 음색을 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는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처럼 정형화된 방식을 따라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음악은 간결하고, 강렬하지만 자기만의 독특함이 없어요”

그는 “한국에서는 정명훈 등 세계적 지휘자들이 단원들을 이끌기도 하지만, 꾸준히 단원들과 유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발전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는 “단원들과 정을 나누는 것이 자신의 지휘 방식”이라고 말한다. 한국과 같은 정 문화를 가지고 있는 러시아 타타르스탄의 국립 오페라 지휘자를 맡으면서 이러한 생각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100명이 넘는 타타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신임 지휘자인 저만 위해 무대를 마련한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따뜻한 정감을 느꼈습니다”

러시아 볼고그라드 지방에 있는 4만 5천여 고려인들도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는 매번 공연에 고려인들을 특별 게스트로 수십명 씩 초대하고 있다.

그는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하이든을 가장 좋아한다. “헝가리 에스테르하지 궁에 소속된 피고용인 신분으로 105곡이나 되는 교향곡을 만들었던 하이든의 음악은 정말 재미없고, 단조롭게 보이지만 누구보다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라토리오의 대작 천지창조는 음악의 총결산”이라고 말했다. 헝가리안 심포니, 토론토 필하모니, 모스크바 심포니, 우크라이나 국립 심포니, 야나체크 필하모니, 서울시향, 창원시향, 제주시향 등 세계 70개 이상 오케스트라를 400여회 지휘해온 그는 “한국 클래식도 이제 자신의 음색을 찾아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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