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불발된 37년만의 심포지엄 기조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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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불발된 37년만의 심포지엄 기조 발제
  • dongpo
  • 승인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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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브리핑 www.news.go.kr 9월 30일자
9월30일 오전 9시30분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학술단체협의회가 공동주최하는 2003년 학술 심포지엄 대회장은 발디딜틈 없이 많은 청중들로 가득 찼다. 독일 뮌스터 대학의 송두율 교수가 기조발제를 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송교수는 사법적인 조사절차가 진행중인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고, 결국 2003년 심포지엄은 기조발제 없는 맥빠진 대회가 되고 말았다. 토론자로 나섰던 서울대 정치학과의 김세균 교수는 송교수 불참에 항의하며 퇴장했다.

역시 냉전이데올로기의 벽은 쉽게 허물 수 없었던 것이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에도 불구하고 귀국을 강행했지만 국정원의 조사 앞에서 한국 실정법의 무서운 위력을 뼈져리게 절감해야만 했다. 준국가기관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했던 송두율 교수를, 그것도 독일국적인 사람을 공안당국이 출국정지 시켜놓고 삼엄한 분위기와 반북 규탄분위기 속에서 사법적으로 재단한다는 것은 도리에도 맞지 않고, 세계적인 탈냉전 분위기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심포지엄 개회 인사말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형규 이사장은 “민주화와 민족화해를 위해 오랜 시절 고뇌해 온 송교수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것은 한국민주주의가 초보적인 수준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또한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공동대표인 안병욱 교수는 학단협 명의의 긴급 성명서를 통해 “37년 만의 귀국이 좋지 않은 일로 얼룩져 송교수에게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힌 뒤 “탈냉전이라는 세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는 반공이데올로기를 넘어서지 못했다”며 공식적으로 초청을 해놓고 기조발제자를 참석치 못하게 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엄중히 항의했다.

학술단체협의회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사상학문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며, 이를 위해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실정법과 관계없이 학자의 학문적 사상, 견해는 존중되어야 하며, 송교수의 기조발제취소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라고 주장했다.

송교수 파동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한국사회의 금기영역인 이데올로기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조그만 관용도 허용하지 않는 냉전적 사고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민족화해와 항구적인 평화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송두율 교수는 이번 심포지엄의 기조발제에서 “한국민주화운동-과연 성공적이었는가”라는 내용을 발표하기로 돼 있었다.

그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배포된 자료집에서 송교수는 “한국의 강렬한 민주화운동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나는 이를 <보수적 진보주의>라고 부르고 싶다“라고 썼다. 하지만 공안당국의 엄중한 조사와 냉전적인 한국실정법 앞에서 지식인으로서 좌절과 패배를 맛봐야 했던 송두율 교수는 한국민주주의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

국정넷포터 최연구 / 서울대대학원 강사 choi@kbs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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