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망하다’와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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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망하다’와 ‘바쁘다’’
  • 나경민(일본 우에노 한국어 교실)
  • 승인 2007.07.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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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어 및 한국문화 지도체험 수기 - 최우수상
‘분망하다, 오관, 대방, 나절로, 필업, 당날, 반시간….’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어를 말하고 한국문화를 접하며 산 보통의 한국 사람이라면 위에 단어들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한 번도 보지 못한 이상한 글자의 조합과 그것에서 예측할 수 있는 단어의 의미 때문에 박장대소를 터뜨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어들은 소위 ‘한민족의 혈통을 가진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라고 말하는 조선족이 현재 생활 속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의 극히 일부분이다.

위 단어들은 각각 ‘바쁘다, 얼굴, 상대방, 스스로, 졸업, 당일, 삼십분….’의 뜻으로, 내가 2005년 6월부터 DELL KOREA 콜센타 중국대련지사에서 1년간 조선족 직원들을 상대로 한국어 트레이닝을 하면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며 오히려 내 자신이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된 조선족이 사용하는 언어(이하 조선어)이다.

DELL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전에는 조선족과 접한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한국 사람과도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선족 직원들에게 왜 한국어 강사가 필요한지 조금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이러한 의구심은 출근 첫날부터 충분히 해소되긴 하였지만….

첫 출근 날. 나를 처음으로 당황스럽게 만든 것이 바로 ‘선생질’이라는 단어였다. 우연히 나와 입사날짜가 같았던 한 조선족 직원이 나를 보며 너무나 반갑게 웃으면서 예의바르게 건넨 말이 “어떻게 선생질을 하게 되셨어요?”이다.

그것도 공중파를 통해서만 들었던 북한어와 비슷한 억양으로. 그 순간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선생질’, 혹은 한국에서 윗사람이나 동료끼리 부르는 호칭인 ‘나 선생’이라는 말을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조선족 직원들에게 들으며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말들에 귀를 기울이며 그 의미해석과 한국어로의 번역에 힘을 쏟아야 했다.

그런 다음 그것들을 메모하고 정리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직원들에게 전체메일로 이러이러한 단어는 사용하지 말고 이런 표현으로 바꿔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런데 수 십 년 동안 조선어로만 말했던 사람들에게는 단어 하나를 바꿔서 말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트레이닝 시간에 충분히 숙지시켜주고 연습한 표현도 고객과 통화할 때는 언제 배웠냐는 듯 원래 본인이 사용하던 말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 직원들은 고객들에게서 어김없이 ‘고향이 어디냐, 한국 사람이 아니냐?’는 등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고객님 지금 분망하시면 반 시간 후에 전화 드리겠습니다.’라는 표현이나 ‘제품은 당날 배송이 아니라~….’등의 잘못된 어휘 사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한국문화와 사고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원활하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한 조선족 직원이 고객에게 너무 친절하게 열심히 상담을 해 주자 고객이 통화를 끝내면서 ‘이것저것 친절하게 상담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대뜸 ‘아, 고객님 고마워할 것 없구요…’라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고객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전화를 끊었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크게 잘 못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부드러운 대화의 흐름이 약간 끊기게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보통의 한국 사람이었다면 ‘아닙니다, 고객님. 제가 해 드린 상담이 고객님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든지 아니면 ‘아닙니다, 고객님.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전화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정도의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그와 함께 그 단어의 생성과정이라든가 조선어와의 의미의 차이점, 그리고 그 단어나 문장이 사용되는 상황 등을 함께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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