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전성기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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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전성기를 꿈꾸다"
  • 이현아 기자
  • 승인 2007.07.19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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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극장 최태지 극장장

지난 2004년 문화관광부는 동포 예술가 최태지씨를 재단법인 정동극장장에 임명했다. 일본 교토 출신으로 가이타니 발레학교를 나와 9년부터 2001년까지 국립발레단장과 예술감독 등을 역임한 최태지 씨가 극장장으로 취임한 것은 당시 최태지 씨의 높은 인기로 말미암아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취임 이후 전통문화 예찬론을 펼치며 ‘전통예술무대’를 상설화하는 등 정동극장을 명실상부 전통문화공연의 메카로 자리매김하는 주역으로 활약해 온 최태지 정동극장 극장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2004년 정동극장에 입성한 이래 언론을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여왔는데 극장 경영에도 이것이 반영되고 있는가.
전통문화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극장장이 된 후 어떻게 무대에 세우고 국내에 알릴 것인지 늘 고민하죠.

현재는 홍보나 무대 기획을 위해 기업 등의 후원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이런 공연을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 놀랐습니다. 그리고 많이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국을 알게 되고, 여전히 알고 싶어 하는 해외동포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일본학교 다녀 한국말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미자’를 즐겨 듣고, 제사를 지내고, 김치를 담그던 어머니를 보며 부모님의 조국을 알아야 한다는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 한국에 와 국립발레단에 입단한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자부심이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한 향수는 상상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나는 발레를 전공했고, 나름대로 서구적인 것들에 매진하며 자랐지만, 오히려 한국적인 것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정동극장장을 맡아, 지금은 모국을 위해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이프만 발레단’에 딸 최리나씨가 입단해 화제가 됐는데 어린 시절 모습이 본인과 비슷할 수도 있겠다. 어떤 조언들을 해 주나.

매일 통화를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여러 나라들을 오가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외롭지만 한국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되 최고만이 좋은 길이라고 여기는 것을 경계하도록 조언합니다.

오히려 본인이 그런 경향이 있어 말릴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너무 좋아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 속에 자기 자신을 던질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극장장이 된 이후, 대학이나 성공에 매달리는 한국의 풍토에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문화는 마음으로 즐기는 것이지 공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위를 따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있고, 그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공연을 무대에 올리고 많이 알려 많이 보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본인도 유명한 발레리나였는데, 다시 무대에 오를 계획은 없는지.
나의 경우, 다시 무대에 오를 계획은 없습니다. 지금은 임기가 허락하는 한 전통문화공연에 대해 더 널리 알리고 정동극장 식구들과 함께 계획한 일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보다 수준 있는 전통공연을 국내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 전의 두 분 극장장님이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들을 하셨고, 나 역시 그렇게 발전해 가는 공연문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직 여성동포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처음 한국 와 부모님이 계신 친정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고, 당시 내게 친정은 일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우울해 보이면 “얼굴이 안 좋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데, 그런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그런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식사시간 무렵에는 같이 밥 먹으로 가자고 할까봐 약속하는 것조차 꺼렸죠. 가정집에서 밥이나 반찬을 함께 두고 먹는 것, 밥을 수북이 떠놓고 먹는 것도 내게는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생활이 20년이 가까워지니까 어느덧 나도 변했습니다.

어쩌다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할 때면, 오히려 적게 덜어낸 밥 때문에 은근히 서운한 기분까지 듭니다. 사람들과 만나면 친해지고 싶어 내가 먼저 밥 먹으러 가자고 합니다. 내성적이던 성격이 진취적으로 변했습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한 것도 적응한 것이지만, 40여 명의 식구를 이끄는 극장장의 자리도 나 자신을 변하게 했을 것입니다.

일본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일본에서 알고 지내던 친구들은 “어떻게 이렇게 변하는가” 놀라곤 합니다. 길이 열리는 대로 살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동포사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우리 또래의 동포들은 어려운 시기에 조국을 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오히려 제사나 전통문화를 더욱 굳건하게 지켜나가며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동포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바뀌었고 봉사활동이나 높은 교육수준 등으로 현지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동포사회가 많습니다. 글로벌시대로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고, 더욱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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