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우산’으로 자리 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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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우산’으로 자리 잡겠다”
  • 김민혜 기자
  • 승인 2016.02.1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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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창업기업 육성사업 성공사례 'CLEF INNOVATION LIMITED' 구예림 씨
▲ CLEF INNOVATION LIMITED 대표 구예림(24) 씨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일주일동안 거리에 나가 사람들을 관찰했죠.”

 CLEF INNOVATION LIMITED의 대표 구예림(24) 씨는 영국, 낯선 환경에서 사업의 밑그림부터 다시 그렸던 순간을 회상했다. 구 씨가 처음에 구상한 것은 여행자들을 위한 ‘다기능 렌탈 우산’ 이었다. 국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자신 있게 사업 계획을 발표했지만 현지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중국산 저가형 우산이 시장을 잠식한 상태인데다 남의 것을 빌려 쓰는 ‘렌탈’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영국인들의 습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8개월 동안 공들여 준비해간 사업모델이지만 구예림 씨는 과감하게 백지화를 결정하고 팀원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무작정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 의외로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나’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시장에서 실제로 필요로 하는 부분들을 알기 위해 타깃으로 설정한 사람들에게 직접 문제점을 묻고, 어떤 기능을 원하는지 조사하며 경쟁력을 높여나갔다.


“우산 손잡이에 달릴 전구, ‘라이트(light)’ 이야기를 하는데 자꾸 ‘토치(torch)’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손잡이에 횃불처럼 라이터라도 달자는 얘긴가 했어요.”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져있던 구 씨는 언어 문제도 큰 장벽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단어의 용법 자체가 다른 경우도 많았고, 투자자나 정부 관계자가 함께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격식에 맞는 ‘Queen's English’를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제품 개발과 동시에 영국식 영어 공부도 끊임없이 해야 했다. 추위와 입에 안 맞는 음식 때문에 한 동안 고생했고,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과도 싸워야 했다. 


“어디에 가나 한국 분들이 한두 분은 계시더라고요”

 그녀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했다. 현장학습이나 미팅 등의 과정에서 만나게 됐던 교민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떠올리며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주었다. 현지 엑셀러레이터들 역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강의 조정 등 현지 적응 프로그램 조정 및 숙소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그들에게 맡겨진 역할이었지만, 밤낮 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에 감동한 영국인 엑셀러레이터들은 계약이 끝난 후에도 사비를 들여 사무실 대여까지 신경 쓰며 끊임없이 조언을 해주었다. 

 인큐베이팅 과정은 ‘아이디어 내는 법’ 학습부터 시작됐다. 이어 이론·회계·법률지식을 배웠고, 교육과정에는 프로그램 툴 사용이나 3D렌더링 등을 배우는 개발지식 훈련과정도 포함되어 있다. 6주차부터는 투자자 피칭(투자를 받기 위한 공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투자자와 만나는 자리에 급하게 투입돼서 실전부터 겪으며 배우기도 했다. 이 때, 멘토들은 옆에서 지켜보며 분석 및 코칭을 해 주지만 일단 몸으로 부딪혀 깨닫게 하는 것이다. 셰필드 대학 산하 첨단연구기관인 AMRC(영국 첨단제조기술연구소)에 방문해 제조 과정을 익히는 것도 ‘글로벌창업기업 육성사업’ 인큐베이팅 과정 중 하나였다.

 다양한 교육과정을 거치며 심기일전한 구예림 씨는 다기능 우산의 경쟁력에 대해 영국인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CLEF INNOVATION LIMITED가 사업을 시작한 곳은, 우산이 최초로 개발된 영국의 셰필드(Sheffield)시다. 구 씨는 우산 사업으로는 성공하기 힘들 거라고 회의적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공략했다. “우산으로 번성했던 도시 셰필드를 다시 영국의 우수한 우산으로 번성하게 해 보자”라고 장관 앞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에는 눈앞의 시장성보다 비전을 읽어주는 사람이 많아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한 달 남은 비자가 문제였다.

 

“주관 기관들이 뜻을 모아 비자문제까지 도와주셨을 땐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영국을 찾는 대부분의 외국인 창업자들은 여행비자나 학생 비자로 들어와 창업을 계획한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과 까다로운 절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여행·학생 비자로는 계좌 개설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 씨의 팀을 비롯한 중소기업청 ‘글로벌창업기업 육성사업’ 도전 팀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3~6개월의 기간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는 어렵지만 도전 팀들의 사업 계획을 긍정적으로 판단한 UK-TI(국세청, 비자청, 기업청 등을 컨트롤 하는 기관)에서는 5년의 체류를 보장하는 TIER-1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테크시티(제조·기술 도시 연합)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2015년 11월, CLEF INNOVATION LIMITED는 영국에 법인을 설립하는 데 성공했다. 구예림 씨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는 학교 내 산학협력단 LINC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시제품 제작과 특허 발급 비용을 지원했고 사무실도 제공받았다. 중소기업청과 창업진흥원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고, 경기도 중소기업센터 G-base 캠프의 멘토링 지원도 받았다. 1,2학년 때 벌어서 모아두었던 여행자금은 사업비용으로 투자했다. 우산 브랜드 ‘BAOBAB BROLLY’의 런칭은 선주문 받은 것을 활용해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유로운 관점 때문에 영국을 선택했습니다.”

 국내 창업은 제반시설이 훌륭하다. 어느 지역이라도 창업센터와 설비가 다 돼있고 인터넷과 시스템이 훌륭해 목업 제품도 한 시간이면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까다로운 절차의 영국을 선택한 이유가 비전 때문이라는 구예림 씨에게 CLEF INNOVATION LIMITED의 비전을 물었다.

 우산 외에도 다양한 여행 관련 상품을 계획하고 있다는 구 씨는 일단은 영국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주변의 많은 도움을 통해 여러 장벽들을 뛰어 넘은 만큼, 빨리 자리를 잡고 다른 스타트업 기업들을 영국으로 데려와 시장 진입을 돕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 CLEF INNOVATION LIMITED에서 시판될 다기능 우산 BAOBAB BROLLY

“신사의 나라 영국과 동방예의지국 한국 사이에는 일치하는 코드가 있어요.” 

 영국 사회가 외국인을 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아닌데다 아시안이 사업파트너로 다가서기는 더 힘든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인 특유의 정서가 영국인들을 감동시키는 부분도 있었다고 구 씨는 말한다. 책임감과 예의바름, 겸손함, 위·아래를 지키는 문화 등이 신분제도를 일정부분 유지하고 있는 영국 사람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재외동포 720만 명 시대인 것에 비하면 영국 교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앞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들의 활발한 진출을 기대한다”고 말하며 우리나라가 잘 하는 부분을 살릴 수 있는 기술 단지가 영국에도 조성됐으면 좋겠다는 큰 꿈도 털어놓았다.

 2016년에는 중소기업청의 글로벌창업기업 육성사업이 2배 이상 확대된 규모로 시행된다. 구예림 씨는 “규모가 커진 만큼 활발하게 활용하고, 적극적으로 임해 선배들이 다져놓은 긍정적 이미지를 잘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차기 지원자들에게 남겼다. 
 

[재외동포신문 김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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