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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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정말 존경합니다
  • 조현용
  • 승인 2014.05.2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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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존경(尊敬)하는’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인사말을 들을 때마다 무척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존경의 마음은 전혀 없는 듯한데 말끝마다 ‘존경’을 달고 있으니 거짓이 느껴지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향해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가식’을 느끼고, ‘표’를 얻기 위한 행위로 치부해 버린다. ‘존경’이라는 말의 가치가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말의 가치 하락’이라고 할 수 있고, ‘말의 타락’이라고 하기도 한다.

‘경(敬)’이라는 말은 동양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라고 한다. 용어라고 하면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에서 쓰이는 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이기도 하니 ‘삶 속의 철학 용어’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할 듯하다. 사실 철학이나 종교나 모두 삶 속에 있는 것이니 이런 설명조차 사족(蛇足)이리라. 헌데 철학 책을 읽어보면 이런 용어에 대한 설명이 대단히 복잡하여 철학을 우리에게서 멀어지게 하는구나 하는 느낌도 갖는다. 학문은 설명이 쉬워야 한다. 설명을 어렵게 하는 사람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은 일리가 있다.

전에 어떤 선생님과 철학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敬)’은 하늘에 대한 마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표현에서도 ‘경’은 하늘에 대한 공경임을 알 수 있다. ‘애(愛)’는 사람에 대한 마음이고, ‘경’은 하늘에 대한 마음인 것이다. 또한 ‘경’은 하늘에 대한 마음인 동시에 하늘처럼 여기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경’이라는 표현을 쓸 때면 ‘하늘’을 동시에 떠올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경’이라는 표현을 사람에게 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경’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무겁게 다가온다. 당신을 존경한다는 말은 당신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의미가 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도 그런 뜻을 담고 있다. 하긴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표현도 있듯이 국민을 하늘처럼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리라. 정치를 잘 하는 방법은 국민만 존경해도 되겠구나 하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깨닫게 된다. 함부로 존경을 말하지 말라. 하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아내가 남편을 존경한다고 하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아이들이 부모를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어색한 감정이 들었다. ‘아마 남편을 잘 몰라서 저러는 것일 거다. 아마 부모를 잘 몰라서 그럴 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아이들을 보면서 존경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자라고 있는 아이들과 나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이라는 단어가 진심으로 다가왔다.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에서 하늘을 본 것이다. 저마다 귀한 존재라는 것,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그러고 나서 둘러본 세상에는 온통 존경의 대상들이었다. 가족뿐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과 제자들, 아이의 선생님들도 모두 존경스러웠다. 주변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하늘이 보였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많은 하늘의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귀해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로를 하늘처럼 생각하라는 말에는 서로의 좋은 점을 보면서 닮아가라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하늘의 모습이 있다. 존경의 마음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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