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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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들
  • 오재범 기자
  • 승인 2007.03.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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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특별법 해당 상임위 상정조차 못해
▲ 안산 고향마을에서 지내는 사할린동포들이 장기, 체스를 두며 낮 시간을 소일하고 있다.
사할린 영주귀국자들의 국내 체류 기간이 17년째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관련법률 하나 없을 만큼 제도적 장치가 미흡해 귀국동포들이 이중국적을 취득한 채 생활하거나 정부의 재귀환 불허 방침과 달리 사할린으로 되돌아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정부가 적십자를 통해 지원한 270억원을 투입해 지난 2000년 건설한 경기도 안산시의 ‘고향마을’에는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인 489세대 900여명의 사할린 영주귀국자들이 터전을 마련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상당수는 현재‘이중국적’신분이다.

정부는 이들의 이주 당시 ‘사할린 영구 귀국 동포’라고 대내외에 홍보했지만 이들의 국내정착 정책을 입안할 당시 자격 구비서류에 국내연고자 입증서류와 함께 러시아(당시 소련)에서의 국적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를 필수서류로 규정하는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었다. 이후 정부는 사업 시행 17년이 지나도록 이에 대한 사후 대안 마련을 못해 대다수 동포들이 이중국적 보유자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고향마을 관리를 맡고 있는 조주형 관리소장은 27일 “일부 영주귀국자들이 남아있는 자녀들을 만나러 사할린으로 출국할 때 러시아여권을 사용하는 경우, 누군가 이야기 해주지 않으면 입·출국이 바로 확인되지 않는다”며 “3개월이 넘어서도 계속 사할린에 거주해도 파악할 방법이 없어 지원금이 계속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문제점을 털어놓았다.

조 소장은 “나중에 주변 이웃들이 알려온 이후에야 출입국 확인을 통해 매월 지급되는 약 50만원 가량의 연금과 생활보조비 지급 여부를 확인하는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고창남 안산고향마을 노인회장은 “ 정부가 우리를 한국에 데리고 왔을 때 5년 동안 체류하다가 이곳이 맘에 안들면 다시 사할린에 돌아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고 회장은 이어 “이곳에 있는 귀국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민등록번호증과 여권을 발급받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 여권과 한국 여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당국은 당초 이같은 영주구귀국을 추진할 때부터 이중국적이 초래할 문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추진했으며, ‘영주귀국자의 러시아(소련)로의 귀환은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는 정부지침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도 임의귀환하는 사례가 늘고있음에도 이에  별다른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법무부 한 관계자는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영주귀국 사할린동포가 이중국적일 리가 없다”며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영주귀국 사할린동포들이 “국적판정 절차를 통해서 모두 한국 여권을 받았을 것이다”고 주장한 것.

그러나 사할린동포들을 지원하는 기관 및 단체 관계자들 중 한결같이 정부에서‘인도적인 차원으로 그들에게 이중국적을 예외로 허용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사할린동포들도 이를 사실로 확인해 주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005년 한명숙, 장경수 의원 등이 △사할린동포의 영주귀국을 정부의 의무로 규정하고 △국내정착 및 생활지원 △영주귀국 대상을 1세 뿐만 아니라 직계비속 가족으로 확대 △사할린 잔류 희망자들에 대한 구체적 지원안을 골자로 하는 법안 2건을 내놓았다. 그러나 법안들은 현재 상임위원회에조차 상정되지 못하고 2년째 표류하고 있다.

사할린 동포들과 관련한 법률과 제도들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못한 채 외교부의 ‘사할린교포 영주귀국 업무처리 지침’이라는 단순한 내용의 내부지침에 의해 임시방편으로만 관리 운영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점과 현실 상황을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외교통상부는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자문제는 기본지침에 준하되 ‘사할린 교포 영주귀국 업무처리지침’에 의해 처리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사할린교포 영주귀국 업무처리 지침’은 지난 90년 1월 총 5페이지로 구성된 것으로 혹 발생할 수 있는 외교문제를 피하고, 영주귀국을 돕기 위한 업무지침서일뿐 사할린 영주귀국동포들에 대한 법적인 구속력과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하지 않고 있다.

또 가해자인 일본정부 역시 현재까지 국가적인 보상을 거부한 채 일본적십자사를 통한 민간 차원의 지원만을 하고 있는 상태로 지난해 사할린에‘한인문화센터’를 건립하고, 영주귀국을 원하는 사할린 동포들에게 이전과 일시 모국방문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정부는 사할린동포 문제에 대해 “현재 일본정부에 대해 사할린 한인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고, 사할린 한인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일본 정부의 재정적 기여를 확보해 오고 있다”고 지극히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다.

국회 역시 지난해 9월 소관 상임위에 제출된 사할린동포 지원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사할린동포문제는 일본, 러시아, 한국 3국이 풀어나가야 할 인도적 차원의 과거사 문제”라며 “우리의 일방적 입법조치만으로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법안 처리를 보류시키고 있다.

이처럼 정부와 국회가 모두 일본과 러시아 등 관련 국가의 눈치만 보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사이 지난 94년부터 2006년까지만 모두 56명의 귀국동포들이 사할린으로 되돌아가는 등 사할린동포 영주귀국 정책 시행 18년이 다되도록 큰 진전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