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신 '룰라' 브라질을 살렸다] (1) '룰라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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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신 '룰라' 브라질을 살렸다] (1) '룰라는 누구인가'
  • 한국경제신문
  • 승인 2003.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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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1  


좌파의 상징에서 시장친화적으로 방향을 선회한 룰라 브라질 대통령의 인생역정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룰라는 근본적으로 좌파적 분위기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가주의 한 빈민촌에서 8남매중 일곱째로 태어난 그에게는 초등학교 중퇴가 정규교육의 전부다.

그 후 독학으로 고졸자격만을 따냈을 뿐이다.

불우한 환경은 그를 일찍부터 노동현장으로 내몰았다.

불과 12세에 구두닦이와 땅콩팔이를 시작했고, 14세땐 금속공장에 취직했다.

학교에서 한창 '화려한 미래'를 꿈꿀 나이에 살벌한 쇠붙이 소리만을 들어야 했다.

공장에서 밤샘작업을 하다 잘려나간 새끼 손가락은 그의 좌파적 환경을 잘 설명해준다.

첫 부인도 치료비 부족으로 출산 도중 사망했다.

이런 주변환경은 룰라로 하여금 친노동자 성향을 갖게 만들었다.

그는 66년 노조활동에 발을 들여 놓는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젊은 혈기를 충동질한 결과였다.

이 후 그는 강성으로 이름을 날린 철강노조 위원장 당선→70년대 금속노조 파업주도 등의 화려한 경력을 쌓으면서 '노동자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브라질이 부도위기에 몰리고,국제사회가 우려를 표명했음에도 아랑곳없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주장했고, 연일 노동자들의 구미에 맞는 과격한 언어를 쏟아냈다.

노동자들은 이런 그를 영웅시했고, 소외계층의 지지도가 치솟으면서 그의 정치적 욕망도 함께 뜨거워졌다.

결국 그는 80년 노동자당을 만들었고, 그를 발판으로 88년엔 연방하원에 진출했다.

노동운동 시절 소외계층에 들인 공이 약효를 본 것이다.

하원의원 시절에도 줄곧 노동운동때의 기조를 유지했다.

그의 발언은 친노조적 성향으로 일관했다.

외국인들이 룰라에 대해 갖고 있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이미지는 이때 더욱 굳어졌다.

대권의 꿈은 생각만큼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세번이나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지만 번번이 패배했다.

이는 소외계층만으로는 보수세력의 힘을 꺾을 수 없다는 점을 룰라에게 분명히 인식시켜 주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가 가까워 오면서 그의 행보가 친노동자에서 친시장으로 다소 기운 것도 이같은 과거의 실패 때문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구두닦이에서 대통령으로.'

그의 신분은 분명 양극을 다 경험했다.

그리고 이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통해 브라질의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는 인내와 고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신동열 기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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