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포럼/그 지인은 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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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포럼/그 지인은 떠나고...
  • 김동열
  • 승인 2005.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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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인은 기도와 사랑을 들으면서 슬픔과 고통이 없는 곳으로 떠났다.
헤어질 수 없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교우들을 무심하게 남겨둔 채.

지난 8월 2일 또는 3일로 기억된다. 막 쓴 글씨의 노란편지를 받았다. 누구의 스타일처럼 난필이구나 하며 생각없이 읽다보니 손에 힘이 빠져 들었다.그 지인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암에 걸려 명색이 의사인데 스타일을 꾸겼다고 썼다.


덧붙여 지난주에 기고한 산부인과 글이 아무래도 자신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최후통첩의 서신을 적장 대신 받아든 처절한 느낌이었다.
어떻게 자신이 불치병인 암을 통보받고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떤 치료 방법을 알고 있기에 저토록 태연할 수 있겠지. 그의 말대로 의사니깐.그리고 이틀 후에 전화를 받았다. 편지를 받았냐고 물어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되물으니 편지에 쓴 그대로라며 자신에게 주어진 수명이 아직도 몇 달 남았다며 걱정하는 필자를 꺼꾸로 위로했다.

그의 특유한 웃음을 들으며 저 사람은 죽음의 음산한 꼴짜기에 접어들었는데 저토록 자신의 감정을 자제할 수 있을까. 마치 시공을 넘어선 사람처럼.

치료방법은 있느냐고 물으니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고 이제껏 믿어온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그 동안 사심 없이 자신을 믿어주어 의지할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주위 분들에게도 본인을 위해 꼭 기도를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지인은 항상 직선적이고 투박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그저 그렇게 내려온 관례와 고리타분한 전통을 싫어했다. 그의 가식 없는 파격적인 언행에 다소 오해를 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 동기는 참으로 순수했다.

오늘에 세태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의 말을 믿었다.
그 지인은 자신이 행복과 부를 조금 더 가졌다는 것에 항상 감사했다.
마음이 있어도 가진 것이 없으면 어떻게 나눌 수 있겠냐는 말을 자주했다.

그 지인의 딸은 장례식에서 "아버지는 하나를 달라면 둘을 줄려고 했고 달라지 않으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었다"며 훈훈한 한 단면을 조객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그 지인은 가족이 너무 사회 경험이 적어서 걱정이 된다는 말을 했지만 장례식날 보여준 가족들의 강인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조객들을 안심시키에 충분했다.


그 지인은 아직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동포사회에 “자선과 사랑”이라는 아름다운 정신을 정착시키려 노력했다. 음악이라는 예술을 통해 메마른 동포사회가 더욱 살져지고 자신이 세운 자선합창단이 이 지역사회에 안착되어 동포사회에 윤활유가 되기를 원했다.


또한 그 지인은 항상 자신으로 인해서 타인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다.그는 작은 신음소리에도 가슴이 떨린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그렇게 마음이 약하면서 어떻게 아기를 받고, 또 수술을 했느냐고 물으면 직업과 사랑은 다르다고 했다. 직업은 감정 때문에 좌우될 수 없는데, 인간들의 사랑은 그 이면 세계라서 더욱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이 지인의 숭고했던 뜻을 더욱 오래 오래 기리기 위해선 그의 뜻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선합창단이 더욱 이 지역에서 사랑 받는 합창단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 되겠다.

그렇치 못하면 그 지인은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또다시 걱정할 것이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아마도 그 아름다운 습성은 그곳에서도 버리지 못할 것이다.

서정주의 시 한편을 독자들과 나누며 지인을 오래동안 기억하고 싶다.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하(銀河)ㅅ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샌프란시스코 김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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