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이름 가진 아들의 뿌리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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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름 가진 아들의 뿌리를 찾아주세요.
  • 이언주
  • 승인 2005.10.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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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베트남 전쟁 때 헤어져

▲ Thu Phung Thi Hoang 베트남 전쟁 때 한국인과 만나 아이를 가졌던 베트남여인이 한국인 피를 가진 아들에게 아버지를 꼭 찾아주고 싶다고 해서 한인봉사회 회의실에서 만났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Thu Phung Thi Hoang(투훵. Thu가 이름이고 Phung은 성씨, Thi Hoang는 미들네임이다) 그녀는 ‘신문에 한번 소개됐으나 아무런 연락도 성과도 없었다’고 하며 이번 10월 20일 출국하기 전에 가능하면 한번 더 인터뷰를 했으면 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녀에겐 아들 3 형제가 있다.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첫째 아들이 한국인 김석호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김진범Kim Jinbum(일간지에 김진분으로 잘못 표기)이고 나머지 두 아들은 베트남과의 사이에 낳은 쌍둥이 아들 둘이다. 이번 방문은 워싱턴에 사는 둘째 아들의 초청으로 미국에 오게 됐다. 이야기는 35년 전으로 돌아간다. 1968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인 김석호씨는 투훵씨와 함께 미 공군기지 내에 있는 미군 매니지먼트사들 중 하나인 콜럼비아 엑스포트 패커스사에 민간인 자격으로 함께 근무 했었다. 그 당시 18세였던 투훵씨에게 10살 차이 나는 28세의 김씨는 첫사랑이었다. “회사 일에도 적극적이었던 그는 무척이나 친절했어요. 곧 그와의 데이트가 시작됐고 저에겐 사랑이란 것을 전해준 첫 남자였습니다. 1년 여간의 동거생활 끝에 아이가 들어섰으나 임신 4개월 때 그가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69년에 아이를 출산했으나 아이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부모가 정해준 여성과 약혼식에 이어 결혼을 하고 말았다. ▲ 김석호씨가 보낸 첫번째 편지
결국 김씨는 한국에서 결혼을 했고 한국아내는 딸을 출산했으나 부부 사이가 그리 좋은 것 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는 편지를 보내와 월남에서 벌어온 돈을 아내가 다 써버렸다고 말하며 결혼을 후회한다고 했다. (투훵씨가 보여준 김씨의 편지에는 김씨의 어머니가 베트남에 있는 손주를 보고 싶다고 편지에서 전했다).

그 결혼 와중에서도 다시 월남에 돌아와서 일년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가겠다며 1년만 기다려달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와이프와 이견이 생겼고 결국 혼자서 형이 있는 LA로 떠났고, 그곳에서 다시 편지를 보내 기다리면 아들을 데려가겠다고 마지막 편지를 보내왔다.

   
▲ 김석호씨가 보낸 두번째 편지
그 때가 1970년 9월이었다. “그 다음달에 답장을 보냈으나 편지가 다시 돌아오고 말았어요. 월남에서는 전쟁으로 제가 거주지를 옮겨야 했으며 그 분도 LA에서 이사를 간 듯 연락이 끊겼고 한국 서울 아현동에 있는 그분의 부모 집에 연락했으나 아현동이 재개발되면서 이사를 가버린 후 모든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녀는 결국 74년 베트남에서 두 번째 결혼을 한 후 쌍둥이 아들을 낳았으나 그 결혼도 3년을 넘지 못했다. 투훵씨는 “그 이후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아왔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방황 했습니다. 혼자서 세 아이를 키워야 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힘이 들 때마다 첫사랑인 그가 생각났습니다. 한편으로는 야속하지만 아들을 볼 때마다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그 동안 그녀는 베트남에 있는 보험회사에서 25년간 일해왔고 지금은 선박 사고 시  보상해 주는 보험회사를 10년 전부터 본인이 경영하고 있다.

그 큰아들 김진범씨는 뉴질랜드에 유학 후 Hospitality Management를 공부하면서 현지에서 결혼해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다. “그 아들은 아버지를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 없이 견뎌내고 자라온 것이 고마울 뿐입니다. 이제 그 아들에게 뿌리를 찾아주고 싶어요.

손주에게도 낳아서 할아버지의 존재를 알려주고 싶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며 눈시울이 젖기 시작한다. “저는 이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더 이상 없습니다.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그 사람 소식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만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 사람도 이 정도 나이면 가정을 갖고 있겠지요. 같이 살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혹 혼자 산다면 선택은 그 사람에게 있습니다. 경제적 사정이 안 좋으면 제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사람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보다도 아들이 문제가 먼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야기가 미국의 여러 한인 신문에 알려졌으면 한다고 안타까워했고 마지막 당부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락처 703-470-5286 (버지니아 둘째 아들)

취재 사진 이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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