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재앙] 한인들도 "부시가 재앙 키웠다" 성토
상태바
[미국의 대재앙] 한인들도 "부시가 재앙 키웠다" 성토
  • 한국일보
  • 승인 2005.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일보 2005-09-05 19:18]     
 
수만 명이 북적이며 인간이하의 생활을 하던 뉴올리언스 수퍼돔과 컨벤션 센터에서는 이제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시내의 거리에서도 이재민의 모습은 드문드문 눈에 띌 뿐이다.

그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시신과 군인, 그리고 강간과 살인이 자행되고 자살로 역겨운 삶을 마감해야 했던 참상에 대한 증언들 만이 남아 있다. 생존자들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슈퍼돔에서 자살을 목격한 30대 이재민은 “한 젊은이가 발코니에서 뛰어 내리면서 이곳 생활은 전쟁 같은 생지옥을 떠올리게 한다고 울부짖었다”고 전했다.

그는 젊은이가 뛰어 내리는 순간을 속수무책으로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강간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매일같이 반복됐다. ‘여자가 화장실에 갈라치면 꼭 남자들이 따라 붙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TV에서는 슈퍼돔에서 치안유지를 맡았던 한 주방위군 병사의 말이 이어진다. 그는 “어린 여자아이가 화장실에서 강간당한 뒤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면서 “하지만 그도 성난 군중의 손에 붙잡혀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한 구조요원의 노모가 아들과 매일 통화하면서 닷새동안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끝내 익사하고 말았다는 얘기는 보다 분명한 사실로 회자됐다. 몸이 불편해 집안에 갇혀 지내야 했던 노모는 전화를 걸어 “아들아, 넌 언제 올 거니?”라고 물었다. 구조요원인 아들은 “예 엄마, 누군가 곧 갑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연방 공무원인 아들은 “오늘은 구하러 올 거니?”라고 채근하는 노모에게 “화요일에 올 겁니다” “수요일에 올 겁니다” 라며 차일피일 할 수밖에 없었다. 노모는 닷새째인 금요일 치료한번 받아 보지 못하고 대재앙 카트리나의 위세에 생명을 앗길 수 밖에 없었다.

운영하던 상점이 약탈당하는 등 자신들이 감내하기 어려운 피해를 본 한인 교포들은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 또다시 충격을 받는 모습이 역력했다.

교포들은 이구동성으로 참상을 막지 못한 책임은 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주방위군 투입 등과 관련해 늑장을 부렸기 때문에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인간성 말살의 분위기가 뉴올리언스를 뒤덮은 재앙을 극도로 키웠다는 얘기다.

뉴올리언스 도심에서 운영하던 3개의 상점을 모두 약탈당한 한 교포는 4일 군인들의 제지로 자신의 상점 앞에서 발길을 돌리면서 “사람 사는 사회에는 악한 자가 있기 마련”이라면서 “부시 대통령이 군병력 투입을 이틀만 앞당겼더라도 이러한 악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교포는 “부시 당국은 이번 재해로 수도 없이 죽은 흑인들의 시체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면서 “흑인들이 이를 본다면 당장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부시 대통령에 대한 깊은 불신감을 드러냈다.

슈퍼돔에서 아스트로돔까지 수 만명을 500여㎞나 옮기는 대수송 작전을 마무리한 군인들은 이제 집에서 집으로, 지붕에서 지붕으로 가가호호 찾아 다니는 구조활동을 펴고 있다.

 군인과 경찰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회복된 모습이다. 이날 오전에는 무장집단에게 총격을 5명을 사살했다는 뉴스도 보도되고 있다. 소요사태와 인종갈등 폭발을 우려해 강경대응을 자제하던 자세에 변화가 읽혀진다.도시에서 힘의 균형이 다시 정부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미 정부는 군인과 경찰, 공무원에게 처음으로 시신을 수습하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허리케인 내습 후 1주일 만이다. 이날 도심에서는 컨벤션 센터 등에 안치돼 있던 흑인들이 시신이 냉동차에 실려 도시 밖으로 빠져 나갔다는 소문이 번지기도 했다.

USA 투데이는 이날 “도시 곳곳에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다”면서 “다락방과 구겨진 휠체어, 물속, 고속도로 주변에 시신들이 널려 있다”고 보도, 사망자가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했다.

24시간 내내 즉석 재즈 연주를 들으며 술을 마실 수 있다는 버번 스트리트는 적막 속에 묻혔다. 도심에 들이찼던 물이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군경의 3차례에 걸친 검문을 뚫고 먼 우회로를 택해 찾아간 ‘재즈의 거리’에서는 어떠한 영감도 묻어 나지 않았다.

뉴올리언스 도심 가운데서도 주도로인 캐널 스트리트에서 바라본 버번 스트리트의 입구쪽은 아직 물이 완전히 빠지기 전이었다. 도로 양 옆에서 시끄러울 정도로 쉴새 없이 재즈의 선율을 내뿜던 재즈바와 댄스바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했고 물이 찼다가 빠지면서 생긴 벽과 기둥의 얼룩은 보는 이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도로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트럭용 쓰레기 컨테이너는 이 곳이 수마가 할퀴고 간 도심의 한 부분임을, 그래서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상기시켰다.

뉴올리언스=고태성특파원 tsgo@hk.co.kr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