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문학상 시부문 대상작
남자 미용사 J 는 한국에 살 적 강력계 형사였다고 한다 강도들의 손에 수갑을
채웠던 매서운 손이 여자의 윤기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거울에 비추어진 제 모습 때문일까 힘차게 가위를 빼어들어 사각 사각 무언가를 잘라 내기
시작한다 잘려진 세월들은 길고 가는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털어 버리며 과거를 지우는 일. 손님의 머리에 염색을 할 때면 호주머니 깊숙한
곳 그리다 만 그림을 꺼내 내어 그림을 그린다 답동 신작로 한 복판에서 강도를 잡아, 냅다 메어치고, 잽싸게 범인을 타고 앉아 지지 밟았던 시절
우두둑 우두둑 누구의 뼈가 부러져도 통쾌하기만 했던 밤 하늘, 그날 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힘껏 걷어 찬 축구공이 십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
오질 않았다고 한다 검은 머리의 여인에게는 깊은 강을 건널 금빛 돌다리를 놓아주고 금발머리 아가씨의 머리에는 칠흑같은 밤을 만들어 선사하는 남자
미용사 J. ‘언니! 눈빛만 고치는데 십 년이 걸렸어요.’ 하며 웃고 미국지도 처럼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 노오란 물감을 들인 자신의 머리는
막다른 골목에서 길을 잃어 버린 양 손님의 머리에 희끗희끗한 브릿지를 염색 한다 촛불처럼 떠오르는 얼굴에 물줄기를 세차게 틀어 손님의 머리를
감긴다 떠 내려가는 촛농 속 뽀얀 아메리칸 드림이 피어 오르면 다시 가위를 힘차게 빼어들고 사각 사각 가위질을 시작하는 남자 미용사 J.
또하나의 환상이 만들어 졌다 ‘언니! 너무 멋져요’ 하자 거울 속 손님이 웃는다 머리를 자르고 난 후 그는 늘 슬며시 가게 뒷방으로 들어간다
둥둥둥둥 기타를 치며 잘려나간 세월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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