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인사회-역사와 현황] 시 세탁소 90%차지 ... “워싱턴을 빨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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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한인사회-역사와 현황] 시 세탁소 90%차지 ... “워싱턴을 빨아준다”
  • (워싱턴한국일보) 이종국기자
  • 승인 200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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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타운 ‘애난데일’비즈타운으로 변모

▲ 한인타운 애날데일에서 열린 ‘한인의 날’ 축제 중 한 모습. “뭐라고요? 진짜 그렇게 많이 삽니까.”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찾은 한국인이면 누구나 이곳에 사는 한인 인구를 묻고는 꼭 이렇게 되묻는다. 워싱턴이 LA,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임을 아는 한국인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현재 워싱턴에는 13만~15만 명의 한인들이 살고 있다. 한국의 웬만한 중소도시 버금가는 규모라 하겠다. 1800년에 미 합중국의 공식 수도가 된 D.C.는 일종의 낮의 도시다. 해가 뜨면 이 도시의 건물마다에는 연방 공무원과, 변호사, 연구원, IT 기업 종사자, 상인, 각종 전문직종의 인력들이 바글거린다. 거리에는 싸구려 양복을 입은 수많은 젊은 야심가들이 활보한다. 해가 떨어지면 이들은 D.C. 외곽인 버지니아, 메릴랜드주의 주택들로 사라진다. 이 도시의 밤을 접수하는 건 흑인들이다. 의회에서 도보로 불과 5분 거리면 법이 미치지 않는 흑인들의 세상이 존재한다. 56만의 인구 중 흑인들이 3분의2를 차지할 정도다. 6개 대학 유학생 1 천명이곳 사람들에 워싱턴은 D.C (District Of Columbia)뿐만 아니라 메트로폴리탄을 총칭하는 의미다. 즉 D.C.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40분 거리 이내의 수도권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한인들은 포토맥 강을 경계로 남쪽인 버지니아주에 약 8만명, 북쪽인 메릴랜드주에 5만5천명이 사는 것으로 추산된다. D.C.의 한인은 불과 1천여명. 이밖에도 조지 워싱턴, 아메리칸, 조지타운, 조지 메이슨, 메릴랜드, 존스 홉킨스대등 6개 대학에 약 1천명의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특히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버지니아의 페어팩스 카운티(Fairfax County), 메릴랜드의 몽고메리 카운티(Montgomery County). 가구당 중간소득이 8만여달러로 미국의 대표적인 중산층 거주지다. 인구 100만의 페어팩스에는 한인이 약 4만명이나 거주한다. 워싱턴을 찾은 한국인이 가장 먼저 들를 곳은 애난데일(Annandale)이다. 제대로 된 한식을 먹고싶으면 D.C.에서 남서쪽으로 20분 거리의 교외에 있는 이 한인타운을 찾아야 한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소재하는 이 동네는 80년대 말 이후 한인들의 비즈니스 타운으로 변모했다. 애난데일을 관통하는 236번 도로 좌우에는 큼지막한 한글 간판이 여기저기서 돌출한다. 한의원, 식당, 여행사, 횟집, 떡집…. 한국에 있는 것은 여관 빼고는 다 있다. 식당 25개, 미장원 18개 등, 이 작은 지역에 들어선 전체 한인업소는 3백 개가 넘는다. 90년대 말 들어 한인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대형 식품점만 해도 10여개나 생겼다. 개고기 외에는 모두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없는 게 없다. 대한항공도 주 3일, 직항으로 댈러스 공항에 취항하며 모국과 연결해준다. 여름철에는 주 5~6일 운항할 정도로 붐비고 있다. 한인들을 위한 자치조직으로는 워싱턴한인연합회, 북버지니아 한인회, 수도권 메릴랜드 한인회, 메릴랜드 한인회등 여러 한인회가 활동중이다. 이렇게 성장한 한인사회는 2003년부터 가을이면 애난데일의 한 공원에서 한인의 날 축제를 열고 있다. 전통 혼례식, 어린이 글짓기, 그림, 축구대회, 노래자랑, 청소년 가요제, 주부가요열창 등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이 축제에는 1만명의 한인들과 미 주류 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교육 예산 인프라 뛰어나워싱턴 지역은 한인들이 좋아할 여러 장점을 갖춘 도시다. 우선 서울과 비슷한 날씨, D.C.라는 도시와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교외가 혼합된 지역이란 점이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뛰어난 교육환경을 들 수 있다. 이 지역 공립학교는 타 지역 사립학교보다 수준이 낫다는 평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가 매년 선정하는 전국 최우수 고교 100위안에 이 지역의 14개교가 들어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미국의 강남 8학군이란 소문이 나면서 한국의 기러기 가족들이 연 1천명씩 몰리고 있다. 워싱턴이 이 같은 명문 학군으로 부상한데는 연방 정부, 의회가 밀집한데다 국립보건연구소(NIH) 같은 연구기관, IT 및 유전공학 등 첨단산업의 발달로 기본적으로 우수한 학부모들이 몰려 있는데다 예산 등 교육 인프라가 우수한 점이 꼽힌다. 길을 잃으면 뉴욕에서는 청과상점을 찾으면 되듯 워싱턴에서는 세탁소나 그로서리(수퍼마켓)를 찾으면 된다. 워싱턴의 1천여 세탁소중 한인들이 90%를 차지할 정도다. 그래서 한인들이 미국의 수도를 깨끗하게 빨아준다는 우스갯 소리도 나온다. 한인들의 생업은 자영업과 연방 공무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공무원들은 취업이 비교적 쉬운 우체국과 특허청 등에 집중돼 있다. 자영업은 세탁소, 픽업 스토어, 그로서리, 컨비니언 스토어, 델리, 캐리아웃, 식당, 옷이나 구두 수리점, 자동차 수리, 바디숍, 뉴스 스탠드 등 약간의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거나 단시간에 익힐 수 있는 업종이 주이다. 한인 비즈니스 공간은 버지니아, 메릴랜드 등으로 산재해 있지만 종전에는 D.C.가 대부분이었다. 워싱턴 D.C.에서 스몰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한인 상인들은 한때 D.C.내 자영 소매업자의 65%를 점유할 정도로 막강한 상권을 형성했다. 워싱턴 한인사회는 타 지역과 다른 몇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우선 이민자 중심으로 형성된 다른 지역과 달리 유학생, 주재원 위주의 역사를 지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록상 워싱턴에 한국인이 처음 모습을 보인 것은 1883년 9월15일이었다. 70년대 유학생 . 주재원 주도조미수호 통상조약을 맺은 후 조선의 보빙사절단이 처음 찾은 것이다. 사절단에는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같은 개화기의 쟁쟁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었다. 이민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건 1970년부터였다. 그래도 50~60년대에 이어 70년대까지 한인사회를 주도해온 건 유학생, 주재원들이었다. 그래서 워싱턴은 아직도 하이칼라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으며 일종의 자부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 이종국기자 (워싱턴한국일보) jk21dc@naver.com
또다른 특징은 높은 정치적 관심도이다. 워싱턴에서는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의회등 인접해 있어 자연 관심도가 높은 데다 상하원의원, 고급 관료등 정치인을 고객으로 가진 한인 비즈니스 업소도 상당하다.

서재필 박사, 이승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활동했던 지역인 만큼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특히 주미대사관이 소재한 도시인지라 한국에서 수많은 정치인, 관료들이 찾는다. 그래서 이곳 한인 단체장들은 수시로 한국 정치인들과 식사 모임, 술 좌석을 갖는다. 그 재미에 단체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편으론 국회의원쯤은 우습게 아는 허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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