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의 대부’ 재일동포 기업가 한창우 마루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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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의 대부’ 재일동포 기업가 한창우 마루한 회장
  • 한겨레
  • 승인 200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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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격적 아이디어로 대부의 꿈 펼친다

최근 일본을 뜨겁게 달군 기업인수전의 먹잇감이던 최대 민영방송 <후지텔레비전>의 2배를 훨씬 넘는 매출을 올리는 기업. 젊은이들이 가장 가보고 싶어 하는 놀이공원 도쿄디즈니랜드 입장객의 4배 가까운 연인원 9천만 명을 끌어들인 기업. 일본 전역에 180여개 점포를 둔 파친코 업계 1위 마루한이다. 마루한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2778억 엔(약 12조7천억 원), 순이익은 210억여 엔이다.

일본 파친코 최초 1조엔 돌파 카페같은 분위기, 서비스 정신
초공격적 경영, 목표 앞당겨
삼천포서 출생 호세이대 졸업
한때 60억 빚지고 자살 생각
도쿄증시상장 꿈 부푼 노익장 “5년뒤 매출 5조엔 이루겠다”

사행성 오락인 파친코 하나로 1조 엔대 매출을 처음 기록한 ‘파친코의 대부’ 한창우(74) 마루한 회장을 6일 도쿄역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는 초현대식 빌딩의 28층에 있는 마루한 도쿄 본사에서 만났다. 반세기 동안 파친코 업계에 몸을 담아온 한 회장은 고령에도 아랑곳 않고 마루한을 부동의 1위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는 의욕으로 넘쳐났다. 그는 “1600여억 엔의 매출을 올리던 10년 전 2010년 1조엔 매출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5년을 앞당겼다”며 “5년 뒤엔 5조엔 매출을 이뤄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해마다 30~40개의 점포를 신설하는 ‘초 공격적 경영’에 나섰다. 현재 파친코 업계의 시장규모는 29조엔 안팎이다. 일본 전체 미디어 광고액의 6배, 복권 산업의 30배 정도다. 과당경쟁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지만 마루한의 현재 점유율이 3%여서 얼마든지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게 한 회장의 주장이다.

고속성장의 비결로 그는 먼저 직원 교육을 꼽았다. 한국에선 물론 일본에서도 파친코라면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사업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뿌리 깊은 만큼 고객중시 정신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 회장은 “예의·윤리·서비스 정신은 물론, 회사의 이념과 비전을 공유하도록 직원 교육에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된다”며 “직원들에게 자신의 아이·손자들을 취직시키고 싶은 회사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직원 6500명 가운데 350명 이상이 대졸자이며, 도쿄대 등 일류대 출신도 적지 않다고 그는 자랑삼아 말했다.

마루한이 오는 22일 지바 국제전시장에서 직원과 손님 등 7천여 명을 불러 매출 1조엔 돌파 초대형 축하행사를 여는 것도 이미지 개선과 함께 직원 사기 진작을 겨냥한 것이다. 오케스트라, 마술, 한·일 성악가 공연과 디스코 파티, 7천명분의 프랑스 요리 등 행사 비용만 150억원이 들며, 모든 점포가 이틀간 문을 닫는 데 따른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와 함께 기존 파친코의 더럽고 음침한 성인오락실 분위기를 바깥에서도 구경하고 싶은 카페처럼 바꿔놓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마루한을 업계 1위로 올려놓았다. 이용객들이 담배 냄새를 지울 수 있도록 샤워시설을 설치하고, 연인을 위한 커플 전용 좌석 등을 들여놓았다. 3년 전부터는 젊은 부부를 위해 어린이를 맡아주는 시설도 갖추기 시작했다. 땅값이 싼 교외로 눈을 돌려 주차장을 갖춘 널찍한 점포를 크게 늘린 것도 주효했다. 한 회장은 “다른 업체들이 금방 따라하긴 하지만 업계의 발전을 위해선 선구자 구실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마루한은 문화재단을 통한 순이익 1%의 사회환원도 빼놓지 않고 있다.

경남 삼천포가 고향인 한 회장은 15살 때 미장일을 하던 형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왔다. 종전의 혼란기에 호세이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기는 했으나 일자리가 없는데다 차별도 심해 매형의 파친코 점에서 일을 도왔다. 1967년 파친코보다 훨씬 그럴 듯한 볼링 업계로 진출했다가 5년 만에 60억 엔의 빚을 지고 주저앉기도 했다. 당시 42살로 날마다 자살을 생각하던 그가 재기의 원점으로 삼은 게 파친코였다.

3년 전 귀화를 하고 젊은 동포들에게 일본 국적을 갖도록 공공연히 주장해 오해도 많이 받는 한 회장은 “국적과 민족은 엄연히 별개”라며 “본명을 사용해 한국인의 정체성은 확고히 하되 일본 주류 사회로 뛰어들어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최근 <포브스>에 의해 억만장자로 선정된 그는 1210억 엔으로 추산되는 미 상장 주식 등을 대부분 마루한의 주축으로 일하는 세 아들에게 넘겼다고 밝혔지만, 5조엔 매출과 업계 최초 도쿄증시 상장의 꿈에 부풀어 일 욕심만은 조금도 버리지 않은 듯이 보였다.

글·사진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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