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려인을 한러 외교 채널로 세워가기 위한 길
상태바
[기고] 고려인을 한러 외교 채널로 세워가기 위한 길
  • 정균오 러시아 볼고그라드 선교사
  • 승인 2023.09.04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균오 러시아 볼고그라드 선교사
정균오 러시아 볼고그라드 선교사

한국에서 5년 동안 일하다가 폐암 4기에 걸렸으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고려인 유가이 이고르가 극적으로 러시아로 돌아왔다. 그는 러시아 볼고그라드에 거주하며 농사를 지었으나 열심히 일해도 해마다 빚만 남기는 농사를 청산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한국으로 갔었다. 그는 한국에서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을 분실하였고 불법체류자가 되어 의료보험을 내지 못해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또한 한국에서 도로교통법을 어겨 많은 범칙금과 벌금으로 출국 정지에 걸려 있어서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언어도 통하지 않고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고 법을 어긴 결과 한국을 떠날 수 없었고 작은 골방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쌓였던 벌금을 모두 납부하고 경찰과 검찰과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많은 분의 도움으로 약 3달 만에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그는 치료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에서 러시아에 돌아와서 3주 만에 가족 품에 안겨서 54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정균오, [기고] 누가 벼랑 끝에 선 고려인의 선한 이웃인가? 재외동포신문, 2023.08.02.)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한 고려인 노동자를 바라보며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고려인들에 대한 몇 가지 대책을 한국 정부에 청원하고자 한다.         

고려인은 한국과 러시아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다. 약 10년 전부터 한국 정부에서 고려인들에게 5년짜리 재외동포비자(F4) 비자를 발급해 주어서 고려인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노동을 하고 있다. 특별히 2014년 러시아에 대한 세계경제제재로 인해서 고려인들이 살기가 매우 어려워졌다. 그 후에 많은 고려인이 재외동포비자(F4)를 가지고 한국으로 엑소더스를 했다. 필자 주변에 있는 많은 고려인이 개인 혹은 가족 단위로 한국에 거주하며 노동을 하고 있다. 

고려인들이 한국에 들어가서 노동하는 것은 좋고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는 대부분 고려인은 한국어를 모른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오는 고려인 중 상당수는 한글 자모와 가장 기본적인 언어조차도 모른다. 고려인들은 소련 시대에 한국어를 지킬 수 없는 험한 역사를 살아왔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무시와 냉대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사건이 생기면 대부분 브로커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고려인들은 한국에서 살며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은 언어에 대한 고충이 매우 크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고려인들은 우리와 피부 색깔이 같은 동포인 동시에 러시아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 국민이다. 그러므로 고려인들은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다.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인간으로 대우받고 한국을 좋아하게 되면 한러 관계를 잇는 좋은 외교 채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고 한국을 적대시하면 한러 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외교 채널이 될 것이다.

고려인들이 한국 사회에 더 잘 적응하고 한국사회의 일원이 되고 한러 관계를 잇는 민간 외교 채널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 다음 몇 가지 정책 개선을 제안한다.

첫째: 고려인들이 최소한 한국어를 익힌 후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고려인들은 우리와 얼굴 색깔만 같을 뿐 언어와 세계관은 외국인이다. 외국인이 언어를 모르면 수많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위기에 처하고 불이익을 당해도 언어를 모르면 대처할 수가 없다. 고려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언어 문제다. 고려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게 만들기 위해서 언어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려인들이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최소한 한글 자모와 기초언어를 알고 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주기 바란다. 고려인들이 최소한 한국어를 알아야 수많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안산이나 아산 등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세워지기보다 자기들만의 섬으로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게 하고 한러 관계를 잇는 주역으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언어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러시아에는 재외동포재단과 다양한 기관의 노력으로 많은 한국어 학교가 존재하고 있다. 필자 역시 고려인들을 위해서 ‘세상의 빛 한글학교’를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한국어 학교에는 고려인들보다 러시아 사람들이 더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고려인은 한국에 일하러 가기 전에 조금 한국어를 배우지만 대부분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채 한국에 들어간다. 

현재처럼 한국에 가는 고려인들이 한국어를 할 수 없어도 무조건 재외동포비자(F4) 주고 한국에 보내는 것이 계속된다면 고려인들을 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또한 고려인들이 우리 민족이라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재외동포비자 F4 비자는 아무 조건 없이 5년 동안 한국에서 거주할 수 있는 특혜 비자다. 특혜에는 그만한 기본적인 의무가 따라야 한다. 그 의무는 최소한의 한국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고려인들이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고 진정한 우리 동포로 세워지는 길이 될 것이다. 고려인들에게 재외동포비자 F4 비자를 줄 때 ‘최소한 한국어 공부’를 해야 받을 수 있도록 법을 개선해 주기 바란다.   
       
둘째: 고려인들에게 가장 기초적인 한국 법을 안내해 주는 제도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법을 알고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대부분 한국의 법을 잘 알지 못해서 법을 어기고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고려인들에게 한국의 기본법을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해 주어야 한다.

고려인들은 도로교통법을 잘 몰라서 많이 위반하게 되고 심각한 상황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러시아에서 약 29년을 살았는데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도로교통법을 잘 몰라서 위반하여 범칙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 거주하는 고려인 중에 도로교통법을 잘 몰라서 범칙금을 많이 내는 경우가 많이 있고 범칙금을 어떻게 내는 것인지 잘 몰라서 민사와 형사 소송으로 가는 경우가 있다. 또한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지 않아서 벌금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므로 고려인들에게 한국의 기본법을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 고려인들에게 한국운전면허증을 교체해 줄 때 러시아어로 된 도로교통법에 대한 안내와 쓰레기 분리수거 등에 대한 안내와 홍보를 해 줄 것을 간청한다.
 
고려인들이 안정적으로 한국 체류를 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한국에 도착해서 외국인등록증을 받을 때 한국의 가장 기초적인 법을 안내해 주는 것을 제도화 해 주기 바란다. 

셋째: 5년에 한 번 한국어와 한국의 기초적인 법과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시험 제도를 도입해 주기 바란다.
 
필자는 러시아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5년에 한 번씩 영주권 연장을 위해서 러시아어 시험과 러시아 기본법과 역사 시험을 치렀다. 이러한 제도가 다소 귀찮고 불편했지만 러시아 사회에 적응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인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적응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언어와 기본법과 기본적인 역사 이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고려인들에게 재외동포비자 F4 비자를 연장해줄 때 한국어능력시험 1급(TOPIK) 자격증과 한국의 기본적인 법과 역사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도로 만들어 주기 바란다.

필자가 청원하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 세 가지다.

1. 처음 고려인들에게 재외동포비자인 F4 비자를 줄 때 한글 자모와 한국어 기초언어 시험 제도를 도입해 주시기 바란다. 

2. 한국에 도착해서 외국인등록증을 받을 때 한국의 가장 기초적인 법을 안내해 주는 것을 제도화해 주기 바란다.
 
3. 한국에 거주 후 5년에 한 번 한국어능력시험 1급(TOPIK) 자격증과 한국의 기본적인 법과 역사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제도로 만들어 주시기를 바란다. 

필자가 청원하는 내용은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고려인들이 좀 더 빠르게 한국사회 일원으로 뿌리를 내리고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고려인 윗 세대와 아랫 세대 간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또한 고려인들이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잇는 민간 외교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장차 남북한을 잇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