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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가 벼랑 끝에 선 고려인의 선한 이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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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누가 벼랑 끝에 선 고려인의 선한 이웃인가?
  • 정균오 러시아 볼고그라드 선교사
  • 승인 2023.08.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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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균오 선교사
정균오 러시아 볼고그라드 선교사

유가이 이고르는 볼고그라드 고려인협회 서기 니나 니꼴라예브나의 사위다. 이고르는 약 5년 전에 한국에 일하러 갔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 우리 부부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고려인 유가이 이고르는 인천공항에 차를 가지고 나와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그는 우리에게 점심을 대접해 주고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때 우리는 고려인들에게 이러한 대접을 받게 됨을 감격해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기간에는 한국에서 이고르를 만나지 못하고 전화로만 몇 차례 안부 인사를 했다. 

2023년 4월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갑자기 이고르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묻지 말고 500만원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500만원이나 되는 돈이 어디에서 나오나? 나는 자초지종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아파서 아주대 병원에서 CT와 MRI 검사를 했는데 폐암 4기 소견이 있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암 조직 검사를 해야 암 확진 판정을 받고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러시아 대사관에서 여권을 2주 만에 받을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여권을 만드는데 두 달 이상 걸린다고 했다. 

이고르는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또한 외국인등록증을 연장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의료보험도 없었다. 의료보험이 없으므로 병원에서 CT와 MRI 검사하는데 약 150만원이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나 이고르는 한국에서 치료를 받지 않고 러시아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조직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외국인노동자를 상대로 의료선교 경험이 많은 새문안교회 안00 장로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안00 장로는 적십자병원과 인천사랑병원 김00 집사를 소개해 주었다. 적십자병원에 전화하여 도움을 요청했지만 외국인등록증이나 여권이 없는 사람은 도울 길이 전혀 없다고 통보해왔다. 다시 인천사랑병원 김00 집사에게 전화를 했다. 집사님은 이고르의 안타까운 사정을 들으시고 자신에게 보내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이고르를 집사님께 보냈다. 집사님은 이고르가 아주대병원에서 이미 CT와 MRI 검사를 했기 때문에 검사를 다시 할 필요가 없다며 아주대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어 달라고 사정하라고 했다. 나는 아주대병원에 전화하여 상황을 설명하며 진단서를 떼어 줄 것을 사정했으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나 간절히 사정하자 며칠 후에 의사에게 외래로 오라고 하였다. 나는 진단서에 암이라는 소견이 있다는 내용을 기록해 달라고 사정했다. 아주대병원에서 조직 검사 없이는 암 몇 기라는 정확은 진단명은 써 줄 수 없으며 암이 있는 것 같다는 소견서는 써 주었다. 이고르는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들고 러시아 대사관에 갔다. 나는 이고르에게 영사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간청하라고 했다. 그러나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진단서에 정확하게 암이라는 글자가 없기 때문에 2주 만에 여권을 만들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고르는 러시아 대사관에 서류를 접수하고 여권이 나오기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러시아로 돌아온 후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2주간을 보냈다. 하루는 고려인협회 서기 니나가 사위 이고르가 위독하다고 전화를 했다. 이고르는 2주간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고 작은 방에서 암으로 고통을 받으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듯했다. 그는 러시아 가족에게 돌아오고자 하는 소망조차 상실하고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를 도울 길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과거에 모스크바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하다 현재 한국에서 고려인 사역을 하고 있는 이준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준 목사는 러시아어가 가능하고 고려인을 향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그가 도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고 이고르를 돕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인천사랑병원 김00 집사님에게 연락하였다. 이고르가 너무 고통 가운데 있으니 그를 인천사랑병원에 입원하여 무통 주사와 수액이라도 놓아줄 수 있는지 상의했다. 집사님은 외래로 오던지 응급실로 와서 자기를 찾으면 돕겠다고 했다. 이준 목사는 이고르를 돕기 위해서 지방에서 자기 일을 멈추고 서둘러서 이고르가 거주하고 있는 인천으로 달려갔다. 이준 목사는 이고르를 데리고 인천사랑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 원무과 직원이 이고르는 의료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첫날 하루 응급실 비용이 1백만원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매일 최소 25만원이 들어간다고 했다. 병원 원무과에서는 이고르가 의료보험이나 아무런 서류가 없어서 그 어떤 혜택도 줄 수 없다고 단호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가슴이 시리도록 서운했지만 그것은 당연한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의사는 이고르가 약 10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혈압이 매우 낮은 상태이고 집에 있으면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고르는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자신의 작은 방구석으로 돌아왔다. 러시아에서 니나와 가족은 돈이 들어도 좋으니 이고르를 병원에 입원시켜서 수액이라고 맞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이고르가 수액을 맞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수액 대신 이준 목사는 자신이 먹던 혈압을 높이는 영양식을 이고르에게 주었는데 먹고 다 토해 버렸다. 나는 전라북도 진안에서 농사를 짓는 김원중 장로님께 전화하여 이고르에게 토마토 주스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주스는 설탕을 조금도 가미하지 않은 100% 자연 주스이기 때문에 환자가 먹기에 좋은 것 같았다. 장로님은 서둘러서 택배로 이고르에게 토마토 주스를 보내주셨다. 그러나 이고르는 처음에는 조금 마셨지만 그것도 다 마시지 못했다. 

이고르를 러시아로 무사히 데려오려고 하면 가장 시급한 것이 러시아 여권을 받는 일이었다. 아내 연성숙 선교사는 주한러시아대사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러시아 영사 메일주소와 전화번호를 찾아서 니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니나에게 러시아 대사관 영사에게 간청하는 편지를 쓰라고 했다. 러시아 대사관에서 니나의 간청하는 편지를 받아들여져서 여권은 줄 수 없지만 여권을 대신하는 증명서는 발급해 줄 수 있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고르는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힘이 떨어져서 병원에 입원시켜 수액을 맞게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류가 전혀 없는 그를 그 어떤 병원에서도 받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아내가 새문안교회 박춘필 권사님과 통화하여 청량리 다일천사병원과 연결되었다. 박춘필 권사님과 이준 목사는 자신의 약속을 취소하고 이고르와 함께 다일천사병원으로 갔다. 다일천사병원은 입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일천사병원에서 의사가 면담 후에 진료의뢰서를 써 주어 이고르를 서울의료원으로 보냈다. 서울의료원 응급실에서 그를 받아주었다. 그러나 이고르는 서류가 없어서 치료는 시작할 수 없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서 국가 안전망 프로그램 대상으로 이고르를 받아주었다. 그는 서울의료원에서 17일간 수액을 맞으며 기본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의사는 이고르 몸에 암이 전체로 퍼져 전이되어 있고 치료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의사는 수액이나 영양제를 맞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했다. 의사는 단백질이 아직 있어서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다고 했다. 의사는 이고르가 갑자기 응급상황이 올 수도 있으며 위급해지면 연명치료를 할 것인가를 물었다. 의사는 이고르가 말기암 4기이고 온몸에 암이 퍼져있기 때문에 연명치료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나 가족들의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명 치료비용은 가족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에게 치료비 폭탄만 남길 수 있고 환자에게는 고통만 더할 뿐이라고 했다. 다음날 러시아에 있는 가족과 의논 후에 연명치료는 받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병원에서는 현재 상태에서 위급해져서 한국에서 죽으면 매우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걱정했다. 갑자기 그가 한국에서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도 그것이 매우 걱정됐다.     

러시아 대사관에서 2주짜리 여권을 대신하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이고르에 대한 사고 사건이 접수되어 있어서 출국할 수가 없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도움을 받아서 이고르가 중국 사람들과 싸워서 나온 벌금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나온 범칙금 약 300만원을 경찰청에 냈다. 그리고 무면허 교통사고 범칙금 250만원을 검찰청에 냈다. 이 모든 벌금은 가족에게서 돈을 받아 아내가 인터넷뱅킹을 통해서 냈다. 안산경찰서에서는 사기 사건으로 걸려 있었고 안성경찰서에서는 톨게이트를 반복해서 하이패스 선으로 51회 이상 무단으로 다닌 것이 걸려 있었다. 안성경찰서 경제범죄 수사팀에서 강남순환도로를 불법으로 다닌 범칙금을 더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모든 벌금과 범칙금을 낸 줄 알았는데 강남순환도로는 민자 도로이므로 20만원 정도의 범칙금이 따로 나와 있었다. 안산경찰서에 묶여있는 사건은 조사에 나오라는 통지서에 한 번도 응하지 않아서 죄가 가중된 것 같았다. 벌금을 내는 것으로 사건이 종료되지 않았다. 이준 목사는 안산경찰서에 병원 진단서를 보냈고 이고르가 경찰서에 자진 출두 조사를 받았다. 안성경찰서에도 자진 출두하고 벌금 완납 증명서를 가지고 사건을 종결해 줄 것을 청원하였다. 검찰청에 가서 최종 판결문을 받아야 하는데 안성에서는 판결문을 받지 못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모든 벌금을 내고 조사를 받았으니 한국을 떠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이고르가 병원에 있는 기간에 무면허 운전으로 불법을 저질렀다고 출국 정지가 걸려 있어서 출국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청과 경찰서에 차례로 알아보니 과거에 묶여있던 사건이 범칙금과 벌금을 내며 다시 올라와서 검찰청에서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가 묶인 사건에 대해서 해제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는 휴가를 떠났다. 이 사건들이 언제 풀릴지 알 수 없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이 사면으로 꽉 막혀 있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러시아 대사관에서 해 준 여권 대용 증명서 기간도 끝났다. 다행히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여권 증명서를 다시 발행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이고르의 건강이 한국에서 모든 묶여있는 사건들을 풀고 떠날 때까지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죽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 또한 암담했다.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만 약 3주가 소요되었다. 경찰서에서는 끝났다고 하는데 다시 검찰에서 풀어주지 않아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컴퓨터에 떠올라서 출국을 시켜주지 않았다. 이렇게 지리멸렬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동안 국가 안전망 프로젝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간 2주가 지나서 서울의료원에서 퇴원했다. 국가 안전망 프로젝트로부터 620만원 혜택을 받았다. 이고르 건강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러시아로 출국하기 전 휠체어에 탄 유가이 이고르 씨와 이준 목사
인천공항에서 러시아로 출국하기 전 휠체어에 탄 유가이 이고르 씨와 이준 목사

6월 15일에 시작한 일이 7월 26일에 검찰청에서 모든 문제를 다 해제해 주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법무부 김정도 출입국정책단장과 김지연 주무관의 도움으로 불법체류자 벌금 300만원을 면제받고 출국 명령서를 받았다. 러시아 대사관에서는 여권 증명서를 다시 발급받았다. 한국에서 이준 목사가 고생을 많이 했다. 7월 27일에 드디어 비행기 표를 구입했다. 7월 29일 목요일에 한국에서 중국과 모스크바를 경유해 볼고그라드로 오는 여정이다. 기착지마다 쉬는 시간을 합하면 28시간의 상당히 긴 여정이다. 이고르는 앉아있기도 힘든 상태인데 이 여정을 버텨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항공사에서 그를 비행기에 태워줄지도 의문이었다. 이고르 아들 싸샤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아빠와 함께 돌아오기로 했다. 항공기 기착지마다 휠체어를 통해서 안내를 받으려고 수속을 했다. 다행히 공항에서 비행기를 무사히 탑승했다. 그리고 중국과 모스크바를 경유해서 30일 새벽 1시에 볼고그라드에 도착했다. 오랜 고생 끝에 이고르는 가족의 품에 안겼다. 그는 하루 첫날 가족과 함께 하고 다음 날 바로 러시아 암 병동에 입원했다. 이제 그는 자기 나라에서 자기 가족의 품에서 평안하게 죽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고려인 한 사람을 돕는 긴 여정이 끝났다.

러시아 볼고그라드에 도착해 공항직원의 도움으로 게이트로 나오고 있는 유가이 이고르 씨(오른쪽 사진)/ 이고르 씨를 마중나온 가족들 (왼쪽 사진)
(왼쪽부터) 러시아 볼고그라드 공항에 이고르 씨를 마중 나온 부인 라리사와 딸 크 슈샤 / 공항직원의 도움으로 게이트로 나오고 있는 이고르 씨 / 공항에 마중 나온 정균오 선교사와 이고르 씨

이고르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 한국의 법을 무시하고 살아간 결과 사건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따라 나와서 사건 해결이 힘들었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분들에게 매우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럼에도 많은 분이 벼랑 끝에 선 이고르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주었다. 이고르는 의료보험이나 서류가 전혀 없어서 어떤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그를 서울의료원에서 받아주었다. 이 병원을 연결해 주기 위해서 종일 수고를 아끼지 않은 박춘필 권사님께 감사드린다. 이번에 다일천사병원이 얼마나 소중한 사역을 하고 있는지 깊이 깨달았다. 또한 서울의료원과 벼랑 끝에 서 있는 외국인 노무자 중 고려인을 위해서 국가 안전망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대한민국에 감사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안산경찰서와 안성경찰서와 외국인 담당 경찰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법무부 김정도 출입국정책단장과 김지연 주무관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은 고려인을 단순 노무자로 보지 않고 피를 나눈 사람으로 생각하고 도우려고 최선을 다했다. 가장 많은 수고를 한 사람은 단연코 이준 목사다. 그는 자기 사역을 중단하고 약 1달 반가량 이 문제 해결에 집중했다. 

이고르의 사건을 해결하며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외국인노동자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는 노동생산인구가 현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우리 사회에 매우 필요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단순 노동자 이전에 인간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제도를 개선하고 그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가 외국인노동자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줄 때 저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외국인노동자가 한국에서 안전하게 거주하며 일한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자기 고국에 돌아갈 수 있도록 다음의 몇 가지를 시행하면 좋겠다.

- 외국인 노무자로 한국에 온 사람은 한국의 법을 잘 지켜야 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 법을 잘 지키지 않는 외국인을 환영하는 나라는 없다. 법을 잘 지켜야 고려인들이 한국에서 환영받을 수 있다. 이고르가 한국의 법만 잘 지켰어도 그를 돕는 것이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 외국인노동자들은 최소한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 언어를 전혀 모르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고 위기에 대처할 수 없다. 한국에 오기 전에 최소한 한글 자모라도 알고 오게 하는 제도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 학교에 등록하여 한국어 능력 토픽 1급이라도 딸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그것이 외국인 노동자를 돕는 길일 것이다.

-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 도착해서 외국인등록증을 받을 때는 한국의 가장 기초적인 법을 안내해 주고 지킬 수 있도록 안내해주면 좋겠다. 그리고 외국인등록증을 연장할 때는 한국의 기본적인 법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간단한 시험을 보게 하는 것도 외국인이 한국에 쉽게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길이 될 것이다.  

- 불법체류자에게 법 테두리 내로 나올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불법체류자는 정상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법을 어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불법체류자는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에 이고르와 같이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약 40만명의 불법체류자가 더 많은 죄를 짓지 않도록 양성화시켜서 그들이 제도권 내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고르는 중국을 경유해서 모스크바에 도착하여 타슈켄트에서 날아온 형과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처형과 조카들을 만났다. 그는 물을 만난 듯이 죽어가던 모습이 살아나고 말을 하였다. 한국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벽만 보고 있던 사람이 러시아에 도착하니 기운이 없음에도 대화를 시작하였다. 집에서는 벽도 돕는다는 러시아 속담이 실감 나는 모습이다. 이고르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5년 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다음날 새벽 2시에 이고르는 볼고그라드에 도착하여 가족의 품이 안겼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러시아 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고려인 이고르의 조국은 한국이 아니라 러시아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현실을 직시해 본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벼랑 끝에 서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있다. 누가 벼랑 끝에 선 외국인노동자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줄 수 있을까? 

유가이 이고르 씨와 정균오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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