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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우리 역사 속의 천문대와 천문도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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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1  10: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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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한민족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는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 제단으로 알려져 있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이다. 고려 공민왕 때 이암이 편찬한 단군세기에는 “1세 단군왕검 51년(BC2283)에 단군께서 운사(雲師)인 배달신(倍達臣)에게 명하여 혈구(穴口)에 삼랑성을 축조하고 마리산(摩璃山)에 제천단을 쌓게 하였으니 지금의 참성단(塹城壇)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참성단은 돌로 쌓아서 단의 높이가 10척이며, 위는 모지고 아래는 둥글며, 단 위의 네 면은 각기 6척 6촌이고, 아래의 너비는 각기 15척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석단이라’ 한다. 예로부터 매년 봄, 가을에 대언(代言)을 보내어 하늘의 별들에 제사를 지내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참성단은 천원지방의 고대 우주관을 따라 지은 천문관측대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려 시대 몽골의 침공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 갔을 당시에 천문 관측을 수행했던 점성대로도 추정된다. 또 조선 시대에 편찬된 <서운관지(書雲觀志)>에는 혜성 등의 관측을 위해 관상감 관원이 파견되었던 기록이 있다.

고조선 감성대

또 단군세기는 “10세 단군 노을 35년(BC1916)에 처음으로 별을 관측하는 곳(監星臺)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은 제천단(祭天壇)이 중심 기능이고, 감성대는 단군이 계신 도성 궁궐 근처에 세운 전문 천문대인 것이다.

고구려 첨성대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부에는 “평양성 안에 있는 연못 옆에 첨성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평양전도에는 평양 남쪽의 외성과 내성 사이에 첨성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천문대가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천문대는 대체로 왕궁 가까운 곳에 건축되고 운영하므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 안에 있는 첨성대는 고구려의 천문대인 것이다.

신라 경주 첨성대

경주 반월성 동북쪽에 있는 신라 첨성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천문대이다. 우아한 미와 천문 지식의 용융과 지식의 조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천문 관측대이기도 하다. 음력 한 달의 날수 29층으로 원형 몸통부의 석재를 쌓고, 위에 덮인 판석까지 더하여 모두 365개의 석재가 첨성대 몸통부의 외부를 구성하고 있다.

첨성대는 고려와 조선 시대의 천문대와 마찬가지로 궁궐의 평지에 축조되어 있다. 높이는 9.5m로, 높이가 2~4m 정도인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현존 천문대들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이 경주 첨성대는 백제 점성대(占星臺)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첨성대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는 점성대(675)가, 중국의 당나라에서는 주공측경대(723)가 축조되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에 축조되었다. 세종대왕실록 <지리지> 경주부에는 “첨성대. 당 태종 정관 16년(633) 신라 선덕여왕이 쌓은 것이다. 아래는 원형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의 둘레가 21척 6촌, 아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증보문헌비고>는 의상에서 “선덕왕 16년(647)에 첨성대를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고려 첨성당

개성부 읍지인 <중경지>에는 “첨성당은 만월당 서쪽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 왕궁이었던 만월대의 서쪽에는 지금도 고려 시대 천문대의 축대 부분이 남아 있다. 다섯 개의 사각기둥이 동서남북 네 방위에 맞춰진 네모난 상판을 받치고 있다. 기반석 위에 남아 있는 부분의 높이가 2.8m이며, 축대 상판에는 관측기구를 고정하는데 쓰였다고 생각되는 크고 작은 구멍이 여럿 있다. <고려사>에 기록된 많은 천문 관측이 이와 같은 천문대에서 수행되었다고 추정된다.

조선의 대간의대, 소간의대, 관천대

조선 시대에 들어 세종은 재위 16년(1434)에 대규모의 간의대를 세웠다. 세종실록은 “호조 판서 안순(安純)에게 명하여 후원 경회루 북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높이는 31척(9.5m)이고 길이는 47척(14.4m), 넓이는 32척(9.8m)인데 돌로 난간을 두르고 간의를 엎드려 놓았다”고 설명해 놓았다. 이 경복궁 ‘대간의대’는 혼천의, 혼상, 규표 등 천문 관측 의기가 설치되고 관측이 수행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어 아쉬움을 남긴다.

같은 시기에 북부 광화방 관상감 터에 설치된 ‘소간의대’는 7단으로 되어 있는데, 현재 창덕궁 옆 현대건설 사옥 앞으로 옮겨져 있다. 조선 시대에 설치된 것으로 현존하는 또 하나의 천문대는 숙종 14년(1688)에 세종 대 소간의대의 전통을 이어 받아 축조된 ‘관천대’이다. 현재 창경궁에 있으며 높이 2.2m 5단 화강암 석대로 지어져 있다. 상단부 가운데에는 작은 석대가 위아래로 포개져 있다. 그 위에는 관측기구를 올려놓고 고정하는데 쓰였던 구멍이 있다.

이외에도 조선 시대에 지어진 천문대가 여럿 있었으나 근대 이후 모두 파괴되거나 유실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 태조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4년(1395)에 돌에 새겨 제작한 천문도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는 그 제작 유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이 천문도를 만들 때 조선 초의 대유학자 양촌 권근이 적은 것이다. 그 설명에 따르면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석각 천문도의 인본을 원본으로 삼고, 태조 4년 당시 하늘의 모습을 관측 참조하여 천문도를 일부 고쳐 새긴 것이라고 했다.

천문학자 박창범 교수가 지구 자전축의 세차운동을 이용해서 옛 천문도에 그려진 북극과 적도의 별자리들이 어느 시대의 밤하늘을 나타내는지 밝혀냈다. 측정한 결과는 천문도 중앙부인 북극 주변은 ‘조선 시대 초’ 근처로, 그 바깥에 있는 대부분의 별들은 서기 1세기경인 ‘고구려 시대 초’로 그 시기가 밝혀졌다. 동서를 막론하고 일찍이 이만큼 이른 시기의 온 하늘의 별자리를  한데 모아 그린 성도(星圖)는 없었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관측 연대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천 성도라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세계 최고(最古)의 별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에 새겨진 별들은 실제 별의 밝기 등급에 맞추어 그 크기도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별의 실제 밝기를 반영해 표현한 정도가 ‘보천가’를 포함한 중국의 그 어떤 별지도보다도 더 정확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2천년 전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천문 관측 역량이 뛰어났다는 것이 밝혀졌고, 따라서 세종실록 <지리지> 평양부에 설명된 ‘평양성 안에 있는 연못 옆에 첨성대’를 고구려가 건축한 천문대로 추정해도 어긋남이 없을 것이다.

박창범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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