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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칼럼
[역사산책] 북부여 창건자 ‘천왕랑 해모수’
이형모 발행인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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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2  17: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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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환단고기는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 4권의 책으로 이루어졌다. 단군세기를 쓴 문정공 이암과 북부여기를 쓴 휴애거사 범장은 고려 말에 살았던 동시대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일찌기 천보산에 함께 유람할 때 태소암이라는 절에서 묵으며 여러 권의 서책을 얻게 되었는데, 모두 환단(桓檀)시대로부터 내려온 진결(眞訣)이었다. 후일 이 자료를 토대로 편찬한 책이 단군세기와 북부여기이다.

휴애거사 범장은 ‘북부여기’ 서두에 해모수의 출현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임술 원년(BC239년) 해모수 단제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天王郞)이라 할 만하였다. 이는 47세 고열가단군 57년으로 임술 4월 8일이라. 웅심산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龍光)의 칼을 차시고 오룡(五龍)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시더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해모수와 북부여의 역사적 사명

천왕랑이란 칭호는 BC2700년 치우천왕 이후로 해모수단군이 유일하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신(軍神)으로 존경받는 치우천왕의 후계자로 백성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보인 것이다. 황제만 탈 수 있는 오룡(五龍)의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오르내리며 출퇴근했다는 표현은 해모수단군을 신격화해 백성의 신망을 모으려는 노력이었다.

천왕랑 해모수는 BC261년에 태어나 23세 되는 BC239년 4월 8일에 북부여를 창건했다. 당시는 대부여 4대 단군 고열가 57년이었다. 해모수가 군대를 일으키자 이듬해 3월 고열가단군께서 천제를 마치시고 오가(내각의 다섯 장관)와 더불어 선위의 뜻을 밝히시고 이튿날 제위에서 물러나셨다. ‘단군세기’와 함께 ‘북부여기’도 고열가단군을 고조선 47대 단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후 대부여는 임금 없이 오가의 집단책임 ‘공화정치’로 6년 동안 나라가 운영됐다. 해모수가 꾸준히 대부여의 오가를 회유하여 ‘공화정치’를 폐지하고, 마침내 BC232년에 백성들의 추대를 받아 단군에 즉위했다.

연나라와의 80년 전쟁(BC380~BC303)으로 피폐해진 대부여는 BC296년 ‘한개의 난’으로 더욱 쇠약해졌다. 한개의 내란을 평정한 상장군 고열가가 단군으로 즉위했지만, 대부여는 더 이상 나라를 지킬 힘이 없이 고갈된 상태였다. 이러한 격동기에 출현한 천왕랑 해모수가 창건한 북부여는 6대 단군이 181년간을 이어가면서 중국대륙의 통일제국인 한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고구려의 삼국시대로 한민족 역사를 잇는 기념비적 역할을 담당했다.
 

격동의 시대 - 진시황의 통일제국 출현

2096년간의 단군조선이 끝나고 해모수가 북부여를 창건한 때는 동북아시아의 격동기였다. 북부여가 인질로 잡고 있던 연나라 장수 진개를 풀어주자, 진개는 연나라로 돌아가 군대를 이끌고 북부여 서쪽 번조선의 변경을 침입해 만번한(양평)까지 차지했다.

BC221년에는 중국에서 진시황이 6나라와 통일전쟁을 하던 중에 마지막으로 연나라를 정복하고 통일제국을 세웠다. 같은 해, 해모수단군이 북부여 휘하의 제후국인 번조선의 왕으로 임명한 기비가 죽고 그 아들 ‘기준’이 번조선 왕을 물려받았다. BC207년에는 한나라 유방이 진나라 자영의 항복을 받아 통일제국을 계승했다.(해모수 33년)
 

번조선의 패배와 위만조선의 출현

북부여기에 연나라 사람 ‘위만’의 귀순에 관해 기록하기를, “BC209년에는 진나라에 농민 반란이 일어나 불안해진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 백성들이 도망해서 수만 명이 번조선에 귀순해왔다. BC195년 유방과 가까왔던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였던 위만이 북부여에 망명을 요구했으나 해모수단제께서는 허락하지 않았다. 나이 많아 병든 해모수단제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번조선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의 땅을 떼어서 위만에게 봉해 주었다. 이해 겨울에 해모수단제께서 붕어하시고 웅심산 동쪽 기슭에 장사지내니 태자인 모수리가 즉위했다.”

해모수45년 단군이 늙고 병든 재위 말년에, 연나라 사람 위만은 번조선 왕 기준에게 서쪽 변경을 지켜 주겠노라고 속여 귀순을 허락받고 ‘상하 운장’ 지역을 차지했다. 이후 중국 여러 나라에서 도망치는 귀순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군대를 키웠다.

북부여 2대 모수리단군 원년(BC194년), 서쪽 국경의 수비를 위만에게 의존하던 번조선 왕 기준은 위만 군대의 침공을 받아 번조선을 빼앗겼다. 위만에게 패한 기준은 “뒤에 도적떼들에게 패하여 망한 뒤 바다로 들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고 기록되고 있다. 못난 번조선 왕 기준 탓에 북부여 서쪽지역에 위만조선 3대 86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역사에서는 북부여의 지방정권에 불과한 위만조선의 출현을 고조선의 종말이라고 왜곡 조작하고 있다.
 

북부여 창건이 고구려 역사의 원년

“모수리 3년(BC192년) 모수리단제는 해성을 평양도에 속하게 하고 황제의 동생 고진을 시켜 이를 수비케 했다.” 2대 모수리 단군의 동생 ‘고진’의 손자 불리지의 아들이 고주몽이다. 따라서 고구려를 창건한 고주몽은 해모수의 고손자이다.

통일신라시대 승려 안함로가 편찬한 ‘삼성기전 하편’ 끝부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계해(BC58)년에 이르러 봄철 정월에 역시 천제의 아들인 고추모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났다. 단군의 옛 법을 되찾고 해모수를 제사하여 태조로 삼고, 처음으로 연호를 정하여 ‘다물’이라 하니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고추모대왕은 자신의 ‘고조부’ 북부여의 해모수단군을 고구려의 태조로 모심으로 고구려 역사의 출발점을 삼은 것이다.

광개토태왕은 고구려 19대 임금이고, 20대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태왕비에는 17세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13세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광개토태왕은 고추모대왕(고주몽)으로부터 13세손이 맞다. 그렇다면 비문에는 왜 ‘17세손’으로 기록했을까? 해모수단군으로부터 고추모대왕 이전까지 4세대를 더해 17세손이 된 것이다.

고구려를 창건한 고추모대왕 뿐만 아니라 광개토태왕이나 20대 장수왕까지도 북부여 해모수단군이 즉위한 BC232년에 고구려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기록에 남긴 것이다. BC232년 해모수단군의 즉위로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역사는 27대 보장왕의 종말(668년)까지 합산하면 90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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