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종일 대사, 석연찮은 말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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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일 대사, 석연찮은 말바꾸기
  • 한겨레
  • 승인 2004.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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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만찬비로 3천달러 건네”
→“출판비만 3천달러” 보도 나가자
→“만찬비 부족 대사관 직원이 대납”
자신의 책 <동북아공동체적 문화 시각 designtimesp=18971>의 출판기념회 비용 일부를 주중 대사관 쪽에 부담시킨 의혹을 사고 있는 나종일 주일대사의 처신 문제는, 나 대사와는 달리 부인의 책 출판기념회이긴 했지만 한승주 주미대사의 사례와 거의 닮은꼴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안에선 모두 9·11 동시테러 3주년 바로 전날인 10일 열린 출판기념회가 발단이 됐다. 투명하지 못한 출판기념회 비용 처리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져 재외 공관장으로서 적절한 처신을 했는지까지 도마에 오른 것이다. 22일 나 대사 쪽은 이와 관련해 나름대로 해명했으나 결과적으로 말 바꾸기를 계속하고 돈의 액수와 출처도 왔다갔다 하는 등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 있다.

돈 액수·출처 왔다갔다…해명 석연찮아
한국 핵실험 논란와중 처신도 ‘부적절’

◇ 비용 문제=나 대사는 21일 이 문제가 처음 불거졌을 때 출판기념회 당일인 10일 “출판사 사장이 출판과 만찬에 든 비용의 내역을 적은 종이를 보여줘 3000여달러(약 2만4600위안)를 공사를 통해 건네줬다”고 해명했다. 그 다음날에 한 ‘대사 부인이 나중에 돈을 따로 건네줬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 일을 처리하느라 애쓴 사람들의 돈이 더 들었을지도 몰라 돈을 더 준 것”이라며 “출판사에서 요구한 것보다 더 준 것이므로 만찬 등에 든 비용을 충분히 감당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가 불거진 첫날, 출판사를 소개해준 아무개 공사를 통해 인세는 받지 못하겠지만 책의 출판이나 출판기념회 비용은 출판사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공사가 무슨 얘기를 했기에 출판기념회 당일 기념회장에 갈 때까지 자신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까.

문제의 공사는 21일 “나 대사가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약 3000달러(약 2만4600달러)를 주고 갔으며, 이 돈으로 자비 출판비용과 출판기념회 비용을 모두 충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출판기념회 비용은 1000달러(약 8200위안)도 안 들었으며 출판비용은 1만수천위안이므로 3000달러로 다 충당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2일치 <한겨레 designtimesp=18984>에 출판사 사장이 “나 대사의 저서 자비출판 비용으로 대사관 아무개 공사로부터 약 3만위안(약 3650달러)을 받았다”고 진술한 내용이 나가자 나 대사와 아무개 공사의 해명은 다시 변했다. 나 대사가 주고 간 돈 3000달러로는 출판 비용을 충당하는 데 그칠 뿐 출판기념회 비용과 그 출처 문제는 해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공사가 얘기한 ‘출판비용 1만몇천위안’도 사실이 아님이 저절로 드러났다.

나 대사는 22일 다시 새로운 버전의 해명을 내놓았다. 그는 출판기념회를 마친 뒤 일본돈 42만엔(약 3만1500위안) 정도를 주중 대사관 직원에게 전달했으며, 이는 출판사의 예상 출판비 1만1000위안과 번역료 1만5000위안, 그리고 만찬비 5000위안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만찬비가 예상보다 많은 8856위안으로 나와 부족분 3356위안을 대사관 직원이 대신 납부하고 다음날 나 대사 부인이 그 직원에게 3000위안을 지급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사 부부가 냈다는 돈이 모두 3만4000위안 정도가 돼 비로소 돈들의 아귀가 거의 맞아 들어간다. 이런 해명 과정을 일별해 보면, 첫날의 설명이 출판기념회 비용 문제로 아귀가 맞지 않게 되자 전날엔 언급조차 없던 번역료와 부인까지 등장시켜 차액 부분 아귀를 맞추고 나 대사 쪽이 모두 부담한 것으로 짜맞춰 액수와 출처 문제를 비켜가려 한 게 아니냐는 인상을 받는다.

만찬회 비용도 미심쩍다. 공사는 1000달러(약 8200위안) 미만에 그쳤다고 강조했다. 참석자도 15명에 지나지 않으며 “방 하나 빌려서 각각 200위안(약 3만원)짜리 식사를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켐핀스키 호텔 관계자는 ‘200위안짜리’ 코스요리는 점심시간 때 주문 가능한 ‘업무 오찬’으로, 일반적으로 연회장을 빌려서 행사를 열 경우 이를 주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여기에 음료수와 술값은 별도로 계산된다. 호텔 쪽은 또 주최 쪽이 이날 행사 때 800위안에 해당하는 행사 안내문을 따로 설치했으며, 중국 최고의 양금 연주자 부부를 초청해 간단한 연주회도 열었다고 했다. 이 부부는 최근 비슷한 공연에서 5000위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기념회를 연 곳은 간단한 피아노 연주도 가능한 ‘심포니홀’이란 곳이다. “식대와 술값 등이 대략 1000달러(약 8200위안) 미만” 수준이기 어려운 장소다.

◇ 업무관련 처신 문제=한국의 핵 관련 실험에 대한 의혹이 커지고 북핵 6자회담 개최 여부에 국내외 시선이 쏠리고 있던 미묘한 시기에, 게다가 임지인 도쿄에서 한·미·일 3자 협의(9~10일)가 열리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개인적인 일을 위해 휴가를 내고 임지를 벗어났다는 지적에 대해, 나 대사는 “본부의 허가를 받았으며, 중국 인사들과 고구려사 문제 등을 논의해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고구려사 문제는 매우 중요한 현안이고, 대중 외교에선 개인적 채널의 가동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은 주일대사의 소임과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핵 관련 실험이 공개된 뒤 가장 목소리를 높인 것이 일본 정부와 언론이다. 나 대사가 출판기념회를 열기 전날인 9일은 한국의 플루토늄 실험 사실까지 밝혀져 일본 정부가 공개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의 강력한 사찰을 촉구하던 때다.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은 분명하지만, 주일 대사관이 일본 정부나 언론을 상대로 노력한 흔적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다.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그 시기에 도쿄로 건너가 미·일을 상대로 해명에 열중할 때, 정작 그 일에 앞장섰어야 할 주일대사가 임지를 떠난 것을 적절한 처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적인 일에 지나지 않는 책 출간을 위해 다른 나라 주재국 대사관 직원을 동원한 일 또한 적절한 처사로 보아주기 어렵다. 나 대사는 이번의 자비출판을 위해 주중 대사관 아무개 공사를 통해 번역·출간을 의뢰하고 출판기념회를 준비하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중 대사관 주변의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중국 출판사가 책의 가치를 인정해 먼저 출간을 의뢰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중국어판을 내길 원해 자비 출간한 책이면서, 주요 외교대상 국가의 중임을 맡고 있는 대사가 ‘원정 출판기념회’까지 연 처사는 공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도쿄 베이징/박중언 이상수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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