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징기스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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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징기스칸의 꿈
  • 남종석 세계한인무역협회 부회장
  • 승인 2018.06.19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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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손들이 비단 옷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제국은 멸망한다

▲ 남종석 세계한인무역협회 부회장
폴란드는 서울에서 약 8,276km 떨어져 있습니다. 쇼팽, 퀴리부인, 코페르니쿠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바웬사, 보드카, 축구로도 유명하고,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비행기로 10시간이면 쉽게 오고 가지만, 지금으로부터 850년 전에 동쪽 끝 고려로부터, 머나먼 서쪽 폴란드까지 정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징기스칸’. 저에게 사업적으로 큰 영감을 준 인물로 제 회사이름도 ‘칸’입니다. 그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버림받은 소년가장 테무진

그 당시 그가 속했던 몽골족은 몽골 고원과 바이칼호 근처에서 사냥과 목축을 하며 살았고, 5개 부족 간 종족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금나라의 이간정책, 인종청소로 씨가 마를 위기에 처해 근근이 도망 다니며 목숨을 부지하던 아주 초라한 종족이었다. 그들은 문자도 없고, 농사도 지을 줄 모르고, 제대로 된 건물도 없어 중국인들로부터 소위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13살에 아버지가 독살 당한 후 씨족에게서 버림받아 죽을 지경에 처한 소년가장에 불과했던 테무진은 결코 삶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종족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몽골족을 통일하고자 하는 꿈을 잃지 않았다.

그의 가족은 풀을 먹고 물고기, 들쥐를 잡아먹으면서 살았다. 지금은 샐러드, 생선이 고급음식이지만, 유목민에게 풀만 먹는다는 것은 치욕이자, 절박함의 상징이었다.

전리품 골고루 나누기

이때 테무진에게 한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이복동생을 살해하게 된 일이다. 잡아온 들쥐, 물고기를 가로채거나, 혼자 먹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이복동생을 살해하게 된다. 이는 테무진의 최초의 정치적인 행동이며, 이 사건을 통해 조직의 규율과 공동체의 운영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생각된다.

그는 나중에 전쟁을 통해 얻은 전리품을 장군에서 병사까지, 그리고 전방 및 후방에도 골고루 나누는 정책을 실시하게 됐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지혜를 얻어야 했다. 글도 모르고 책도 없는 몽골족 소년이 지혜를 얻을 다른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의 마음엔 살기 위해, 이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마음의 귀가 열렸다.

▲ 징기스칸

“무슨 새로운 소식없나요?”

몽골사람들이 외지인을 만날 때 하는 인사는 “무슨 새로운 소식없나요?”이다. 정보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래서 유목민들은 처를 내주면서까지 밤새 손님을 붙들어놓고 새로운 소식을 듣고자했는지도 모른다.

타 부족과의 전쟁에서 처절하게 패해 목숨을 부지하고자 몽골 초원 동쪽 끝까지 도주해야만 했던 징기스칸은, 마지막 남은 십여명의 부하들과 흙탕물을 마시며 '권토중래'를 맹서하고 재기해서 마침내 모든 부족을 통일한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 히틀러, 나폴레옹이 정복한 땅보다 더 넓은 업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 비결을 묻는 우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자만심을 누르는 것은 들의 사자를 제압하는 것보다도 어려우며, 분노를 이기는 것은 가장 힘센 씨름꾼을 이기는 것보다 어렵다.”

비단옷 입고 벽돌집에 사는 날, 나의 제국은 멸망한다

개념조차 없던 유목문명이 중국문명, 이슬람문명, 기독교문명을 태풍처럼 휩쓸어 버렸다. 그는 칸이 된 후에도 목동처럼 검소하게 살며 절제했다.

후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 자손들이 비단옷을 입고 벽돌집에서 사는 날, 나의 제국은 멸망할 것이다.”

겸손하게 남의 말을 들으며 절제하고 살았던 징기스칸. 그는 마음의 세계 속에 살면서 마음이 강해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극복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으며, 그래서 세상을 정복할 수 있었다.

‘지난 1,000년간 인류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1995.12.31일자 위싱턴포스트지가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지난 1,000년간 인류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징기스칸을 선정했다.

동양과 서양이 연결되고, 서로를 인식하고 활발하게 교류를 시작하게 되면서 나침반, 화약, 인쇄술이 서양에 전파됐다. 몽골의 침략이후 유럽은 본격적으로 해양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그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이 신대륙을 발견하고 유럽이 부강해지게 됐다.

몽골의 유럽 침략과정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유럽에 자본주의를 등장하게 만들었고, 유럽인구의 1/3에 해당하는 2,500만 명이 죽게 됨에 따라, 1인당 노동가치가 높아져,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를 등장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몽골제국이 성공한 요인

1. 군대조직의 혁신적인 편성
전통적 씨족중심 군대를 철저하게 능력위주로 10명, 100명, 1천 명, 1만 명 등 십진법 기준으로 군대를 편성했고, 이는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재편성이 가능하게 했다.

2. 정보전, 심리전에 철저한 몽골군
몽골에 저항하는 도시는 본보기로 철저하게 응징했다. 생존자를 방패로 하여 공격 및 수비했으며, 밤에 말과 병사를 검정색으로 입게 하고 공격했다. 이동하는 상인들을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여론을 주도적으로 관리했다.
기술자 및 하급관리, 백성들은 살려준다고 해서, 적의 지도세력과 대중의 내부 갈등을 유발시키고 궁극적으로 친몽골세력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3. 신뢰를 바탕으로 한 푸른 군대
전쟁 중 야간경비를 서던 몽골병사가 졸았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대장에게 자진 신고했다. 어떻게 처리했을까?  '병사 자신이 잠들었을 때 적군이 쳐들어왔다면, 우리 군대에 치명적인 위험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병사의 대답을 듣고, 지휘관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병사의 군인정신을 높이 사면서도 정상참작 없이 처형시킨다. 

이것은 순도 100% 신용사회, 상대에 대한 신용과 믿음을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회, 자기의 공동체를 위해 서로가 서로에게 목숨을 맡길 수 있는 몽골군대 만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몽골군대의 경쟁력의 원천이다.

4. 열린사회의 다국적 군대
몽골군은 무수한 정복을 거치면서 다국적 군대가 됐다. 그러나 먹는 음식이나 잠을 자는 숙소도 장교와 사병간의 차별이 없다. 포로로 잡힌 적군까지도 능력이 있으면 지휘관으로 발탁했다. 거란인 학자 야율초재, 천민 출신 대장군 모칼리, 이슬람 상인 출신 아산 등이 유명한 지휘관들이다. 

소속 부족이나 담당 업무에 무관하게 차별이 없는 인간적인 대우를 했고, 전쟁이 끝나면 공적에 따라 전방과 물자를 담당하는 후방이 평등하게 전리품을 분배했다. 그들은 자신이 왜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싸우고,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했다.

5. 속도에 미친 사람들
몽골군의 침공을 방어하는 유럽군의 군장 무게는 70kg이고, 몽골 침공군의 군장 무게는 10kg이다. 갑옷은 쇠가죽을 여러 번 눌러 만들어 경량화했고, 말안장은 나무로 무게를 줄이고,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안장과 발걸이를 개발했다. 군화도 버선처럼 치켜세워 말 옆과 밑으로 몸을 숨길 수 있도록 했다.

전투식량은 말린 쇠고기 육포, 버터, 미숫가루 등 장거리 행군을 하면서도 식량 해결이 가능하다. 몽골인들은 걸음마를 하자마자 화살을 가지고 놀고, 염소를 타다가 소년이 되면 말을 자유롭게 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현재도 몽골최대의 축제인 나담축제에는 씨름, 말 타기, 활 쏘기가 있는데 이중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종마경기다. 몽골초원을 시속 30km로 달리는 경기인데, 기수는 대부분 15세 이하의 아이들이며, 주로 6~8세 아이들이 참가한다. 우승자에 대한 시상은 대통령이 직접 한다.

6. 글로벌 네트워크 경영
처음 출발하는 병사들은 빈말을 한 마리씩 더 끌고 가서, 타고 온 말이 지칠 거리인 200km에서 끌고 온 빈 말을 바꿔타고 바로 진격한다. 다음에 온 병사들은 그동안 쉬고 있던 말로 갈아 타고 또 바로 진격한다. 200km마다 세워진 역참을 통해 보급물자 조달과 신속한 정보 전달체계를 구축한다. 몽골인들은 인터넷이 발명되기 전에 이미 전 세계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7. 철저한 현지화
몽골제국은 정복지역의 문화, 언어, 종교를 인정했다. 몽골제국은 처음부터 “종교는 개인의 문제이지 국가가 관여할 성질이 아니다”라고 선포했다.

▲ 13세기 몽골제국

징기스칸, 몽골제국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현대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두개의 마인드가 충돌해 왔다. 강을 중심으로 정착해서 터를 잡고 살려는 ‘수직적 마인드’와 물과 풀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 다니는 ‘수평적 마인드’. 속도와 정보가 지배하는 21세기 글로벌 사회는 더 이상 혈연이나 지역 중심적으로 작동되는 폐쇄적이고 단절된 ‘수직적 마인드’의 정착문명이 허용되지 않는다.

기득권 안주 Vs. 창조적 미래 개척

특히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에 정착마인드가 팽배해지면 소유의식만 강해진다. 소유전쟁은 부동산 투기, 졸업장 따기, 자리 차지하기, 다른 사람 배척하기 등으로 확산된다. 수직사회에서는 창의력이 필요 없다.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대신 기억력이 존중되고 발달해 모든 경쟁은 기억력 겨루기가 핵심이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시험제도는 과거에 있었던 것을 얼마나 잘 기억하느냐하는 기억력테스트이다.

기억력이 중요시되는 사회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를 사는 사회다. ‘사서삼경’을 외워야하는 시대보다 지금은 외워야할 것이 몇만 배 늘어나서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미래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유목민들은 항상 옆을 바라보아야만 살 수 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더 뛰어난 이동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그들에게 고향이 없고 한번 떠나면 그만이다. 따라서 무덤이라는 흔적도 남겨놓지 않는다. 오늘날 징기스칸의 무덤을 찾을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존을 위한 협력과 개방

초원에는 주인이 없다.
실력만으로 주인자리를 겨룰 뿐이다.
기회는 항상 열려있다.
한 번의 패배로 포기할 수는 없다.

유목사회는 살기 위해 위가 아니라 옆을 봐야하는 수평마인드의 사회, 살기 위해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회다. 그곳에서는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이 소중해진다. 동료와의 협력이 생존의 절대적인 힘이 된다. 민족이 다르다는 것도, 종교가 다르다는 것도, 국적이 다르다는 것도 무시해버려야 한다. 아니 그런 사람일수록 더 끌어들여야 한다. 완전 개방만이 무한한 가능성을 보장해준다.

효율과 정보를 추구하는 시스템

유목사회에서는 효율과 정보가 무척 중요하다. 이동과 효율과 정보의 개념 속에서 시스템이 태어난다. 최고의 자리에 앉은 사람은 군림하는 통치자가 아니라 리더이고, 그 자리에 누가 앉느냐가 부족의 생사와 직결되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철저한 검증을 거쳐 리더를 선출했고, 선출된 리더에게는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조직원들은 그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따르게 된다.

우리는 태어날 때 엉덩이에 푸른반점(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다. 다들 잊고 살지만, 우리 몸에는 징기스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세계는 항상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꾼다. 징기스칸은 850년 전에 자신의 세계를 꿈꿨고, 그 꿈을 이루었다.

우리에게도 이제 그것을 가능하게 한 가치, 즉 속도와 이동과 수평마인드로 이루어진 또 다른 패러다임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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